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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본 서평은 인플루엔셜 서평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를 읽으면서
여러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사회학적, 철학적 개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공유하는 경험적 동질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도출한 결론도 유사하고 -
동질의 경험(선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함)을 하기 전까지 완전한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지지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만약 자신이 ‘동일한 사건을 시간을 역행해서 반복하여 경험하게 될 지라도
경험 당시에 '내적 상태'와 외적인 '환경배열'의 변화로 인해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반복한다고 할 지라도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한 없이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독서경험을 통해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담담하게 써내려 간 작가 고유의 경험이 제 일화기억을 상기시키는 트리거(유발인)로 작동했고
작가분과 유사한 사건을 상기할 수 있었고 당시의 감정을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개체 간의 독립된 경험에서도
공통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공감할 수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더불어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에서는
인간 중심의 회복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발딛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를 유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시간 축을 다시금 ‘현재’에 공간 축을 ‘여기’에 재조정시켜서 인간중심의 가치관을 회복하자고 말이죠.
단순히 부모님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영혼의 닭고기 수프같은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가치와 역할을 북돋워주는 실용적인 인문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느 시공간의 축에서 살고 계신가요?
그래서 행복하신가요?
자신의 행복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으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공유하고 싶은 문장]
p.6
아무리 인간관계가 불행의 근원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가는 기쁨이나 행복 또한 느낄 수 없습니다.
→ 인간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면경입니다. 대인관계 속에서 상호작용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자아)를 확인하게 되죠. 기존의 정체성이론은 물론이고 아들러 심리학의 전제인 열등감도 대인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죠. 인간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란 '눈물을 머금고 미끄러질 수 밖에 없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18
"우리 애가 하는 일은 다 옳아요. 그러니까 지켜봅시다."
[중략]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지는 아이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지 부모가 정할일은 아니라고 판단하셨던 겁니다. 그런 일에 부모가 개입하면, 만약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겨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자식은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릴 겁니다.
p.38
죽은 사람의 꿈을 꾸는 것은 그 사람과 아직 해야 할일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p.39~40
[중략]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용기를 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네 인생이란 가끔은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p.45
서울에서 강연할 때,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효도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장 큰 효도는 불효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p.48~p.49
인생에 되돌이표는 없습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관리해도 결코 젊었을 때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중략] 삶의 가치를 '젊음'에 두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늙었다'는 사실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해도요.
p.50
생산성으로 부모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p.62~65
죽음 앞에서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니, 죽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든 지금까지 살아온 긴 인생이 있음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중략] 설사 죽음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나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행히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목숨을 살려준 것보다 더 고마운 일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병원의 스태프들이 저를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p.80
치매가 회복된다는 건 이런저런 일을 기억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이나 자신이 이 세계에서 어떤 인간관계 안에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p.109
어린 시절 그토록 무섭고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존경하는 별개의 가인(歌人)으로 변모했다. 나는 돌변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고......
p.125
행복이란 결혼한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협력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행복을 준다거나 어느 한쪽이 만들어진 행복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내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p.159
[중략] 아버지 집에 가지 않으려면 저는 누구나 인정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필요했습니다. 그게 '화'라는 감정이었지요. 저는 아버지의 행동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이렇게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원망할 바에야 가지 않는게 낫다'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자 했던 겁니다.
p.180~181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상대의 표면적인 말과 행동만 받아들이지 말고 좋은 의도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중략] 어쩌면 저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식으로 기억을 짜 맞추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 남겨두었던 이 기억이 꼭 진실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p.197
"만약 자네 후학 중에 그리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있거든, 그때 그 사람들에게 자네가 가르쳐주면 되는 거라네."
p.199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수많은 연결고리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중략] 내가 준 것이 내가 준 사람으로부터 바로 내게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돌고 돌아서 내게 돌아올 수도 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돌아오지 않겠지요.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고, 혹은 돌려주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저 하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포함해서 돌아올 것 따위는 기대하지 않으면서요.
p.210
아버지가 함께 웃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의식이 같은 쪽을 향해 '지금, 여기'를 공유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순간을 함께할 수는 없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p.233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또한 내 경험을 들려줌으로써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p.240
시작과 끝이 있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때는 시작지점에서 끝나는 지점까지 가능한 효율적으로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도중에 어떤 형태로든 중단된다면, 그 움직임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불완전한 것이 됩니다. 한편 두 사람이 춤을 출 때처럼 그때그때 움직임이 완전한 형태도 있습니다. 춤이라는 움직임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p.242
사람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과거를 돌이킬 수도 없고, 바로 내일조차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실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일이 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p.248~p.249
인생을 그때그때 완성하는 움직임이라고 보면, 비록 몇 살이 되었든 수술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여생' 따위란 없습니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자포자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분리된 인격은 없다'
p.255
인생을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을 때에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숨이 막힐 것 같은 현실의 긴박한 상황을 이겨내며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소설 속 남자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표현에 현실이 있습니다. 시간을 하나하나 계산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복입니다.
→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한데 보통 사람들은 그 둘사이에 절대적인 경계가 있고 죽음에는 어떤 규칙이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아직 죽기에는 젊은 나이다' '아직 자식을 놔두고 죽을 수는 없다'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있다' 같이 말이죠. 이런 사고방식은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인 구조와도 관련있을 것입니다. 사회의 불확실성과 급격한 사회변동이 개인에게 '지금 그리고 여기'에 머물지 못하게 하고 쫓기는 삶의 족쇄가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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