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치은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우선 독자에게 매우 불 친절하다. 아주 주의 깊게 집중하여 읽지 않는다면 자칫 책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게다가 다양한 실험적 기법을 동원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2번 이상은 읽어야 이해되는 난해한 구조를 띠고 있다. 따라서 여느 추리 소설에서 보듯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명확히 결말이 지어지는 과정을 기대한다면 불만은 더욱 증폭 될 것이다. 날카로운 직관과 추리력을 가진 형사가 명쾌하고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하여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추리소설의 주된 목적에는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소설의 전개에 사용한 몇가지 모티프를 발견 할 수 있는데, 우선 책의 내용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추리소설의 문제 해결 방식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의 해결 방법을 차용한 점이 발견된다. 즉, 홈즈가 친구인 왓슨과의 대화를 통하여 추리를 전개하고, 혹은 몇가지 단서를 왓슨에게 제공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의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점이다. 특히, 특정 사물-여기서는 그림-에 집착하는 것은 도일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두번째는 흔히, 미국 스릴러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증인보호프로그램의 변형이다. 차이점은 말소를 통한 재생 뿐아니라 삭제 프로그램까지 포괄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확대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아주 교묘하게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 현실 세계를 조금은 단순하게 차용하였다. 즉, 지극히 일상적으로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짐빔을 즐겨 마시며,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한경과 증권정보 단말기로 주식 투자에 적극적이며 너바나나 케미컬 브라더즈,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즐겨 듯는 셀러리맨 유대리가 한 여름 주차요원으로 차출 된데 불만을 갖고, 담배를 피우며 증권 시황을 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시스템 밖으로 벗어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현실이 아닌 다른 시스템속에서 말소/재생 혹은 말소/삭제 프로그램이 작동 된다.

이제 단순한 추리 소설로 들어가서 왜 유대리이고 강과장이며 민형사인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평범한 앤더슨이 네오가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결여 되어 있듯이 누가 강과장을 살해 하였으며, 민형사는 왜 말소/삭제 되어야하는 지 명쾌하게 설명 되지 않는다. 매트릭스 속에서 존재하듯 박 변호사와 진 반장 그리고 여인중은 갑자기 한 어머니를 가진 형태로 인과관계가 설정 된다. 반면, 이 매트릭스 밖에 있는 강과장, 유대리, 민형사는 각각 살해, 말소/재생, 말소/삭제의 시스템을 강요 당한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말 중에서 동감 되는 단어가 결핍된 실재, 모호하게 지워져 버린 가느다란 줄, 모호함을 위한, 도로를 위한, 의미 심장하지 않음을 위한,....만리장성 축조의 도로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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