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깊은 집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은 내가 진영에서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 대구로 옮겨오는 1954년 4월 부터 이듬해 4월10일, 마당깊은 집에 세든 가구가 모두 약속 된 기간을 채우고 뿔뿔히 흩어지기 까지 1년간의 기록이다. 내가 삶에 대하여 우울해 하듯이, 4월 하순의 어느날 마당 깊은 집의 그 깊은 안마당을 화물 트럭에 싣고온 새 흙으로 가득 채우는 공사를 목격하면서 내 대구 생활 첫 1년이 저렇게 묻히고 마는구나 하는 슬픔이 가득찬 회한과 함께 마무리 된다.

봄에서 부터 시작 된 1954년의 기억은 어머니의 삵 바느질을 통한 신산한 삶으로 부터 전쟁이 낳은 24명의 아래채 윗채 그리고 바깥채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인생의 역정이 한국 근대사의 굴곡된 단면을 노정하고 있다. 가장의 월북으로 결손 된 가정의 가족사를 포함하여, 일제 시대부터 양지에서 살았던 가족이 해방, 전쟁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가세를 유지하면서 주류 사회를 형성하는 가족사까지 이들은 1954년 한해 동안에도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성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생활의 불안정은 극단적으로 가족의 해체를 궁극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대로 결핍된 가정을 모두어 지키려는 한국 사회의 끈끈한 가족사를 잉태하고 있다. 삶의 노정에서 나타나는 가족 구성원간의 반목과 갈등 혹은 화합은 마당깊은 집의 가족 구성원의 인생 행로와 무관하지 않게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전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은 분단상황에 기인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 중 우리,김천댁네와 평양댁네가 직접적으로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갈등하고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상이군인 가족, 주인집까지 동일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나의 가족은 다행이 아버지의 부재가 월북이 아닌 죽음으로 가장되어 갈등에서 옆으로 비켜나 있으나 잠재적으로 이로인한 갈등이 내재 되어 있고, 김천댁은 아예 월북을 택하였고, 평양댁 네는 정태의 비전향으로 장기 복역함으로써 가족 구조는 해체되고 있다. 이것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사에 유례없는 이산 가족을 양산하였고 그 이산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이와 같은 굴절된 사회상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가족사는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54년 한해 동안 이들은 무엇을 방편으로 살아 왔는가. 나의 어머니는 요리집 기생의 삯 바느질로 가족을 부양하고 교육까지 시켰으며, 퇴역 상이군인은 만물상 장사부터 시장 좌판, 그리고 풀빵에 고구마 장수까지 하여 기어코 칠성시장에서 경북대로가는 길목의 서점을 하고 이층 집 주인이 되었으며, 평양댁네 민이는 내과의원을 개업하였고, 나는 신문 배달 고학생으로 부터 시작하여 지방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

항상 김원일의 소설을 읽으면서 결론이 희망을 잃지 않는 다는데 주목하게 된다. 비록 작가가 거쳐온 삶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갖은 역경을 헤쳐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분단 현실, 결핍 된 가족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가족사를 형성하며 원만한 해결을 모색한다.

굶주림과 설움이 그렇게 묻혀 내 눈에 자취를 남기지 않게 된게 달가웠으나, 곧 이층 양옥집이 초라한 내 생활의 발자취를 딛듯 그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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