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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 - 제10판
장영수 지음 / 홍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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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자체는 여러 번 읽어도 좋을 만큼 나쁘지 않다. 다만, 저자의 사상에 의문이 갈 뿐. 이번 100분토론 782회를 보고 얼마나 상아탑 안에 갇혀 사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 헌법 개정안조차도 미확정된 것을 가져와 망신을 당하고.. 결론적으로, 다른 교과서를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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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상속법 - 가족법, 제14판
김주수.김상용 지음 / 법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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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법학교과서가 아니다. 동종계열의 다른 교과서들 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의 법학교과서들과 비교하여도 놀랍도록 훌륭하다. 학자의 지혜와 마음까지 담긴 완벽한 법학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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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바트 어만 지음, 강창헌 옮김, 오강남 해제 / 갈라파고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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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연경 교수는 바트어만더러 신학계의 도킨스라고 부당하게 폄하했다. 기독교를 몹시도 사랑하는 바트 어만은
반기독교인이긴커녕 무시무시한 호교론자이다. 예수의 존재조차 의문스러웠던 내게 어만은 강력한 설득력을 그의 여러 책에서 보여줬고, 나는 이 사람의 정직함에 완전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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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1 - 초월과 변형을 위한 오쇼의 쿤달리니 이야기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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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내게 자신이 최악의 장소에 갔다 왔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판단할 권리가 전혀 없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 거기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우월한 지혜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안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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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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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1900년경 철학 속으로 막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던 활달한 기운은 싹이 트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마치 플라톤이 수학에서 ‘철학적 사유’를 창안하기 위한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진지한 정신을 가진 철학자들은 그들의 비판자들의 신랄한 풍자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 수리논리학에 눈을 돌렸다.” - 리차드 로티, 박지수 옮김 (까치글방, 1998) 철학과 자연의 거울, 185


 철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절망이었죠. 리차드 파인만의 독설과 앨런 소칼의 신랄함은 철학을 궤멸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적어도 그때 당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적 저작이 사기라고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그리고 과학이 '제일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주의하지 않으면 과학이 '제일지식'이라고 금새 생각해버리지만 말입니다. 

 제게 이 책은 마치 "우리들(과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너희(철학자들)가 쓰는 글 같은 건 얼마든지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그리고 이건 전혀 허풍이라고 할 수도 없었죠. 그리고 철학자들은 뭐가 장난이고 뭐가 진지한지 구별도 못하는 '병신'들의 집합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오일러가 디드로에게, 현대에는 소칼이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비롯한 여러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그런 신랄한 풍자를 합니다. 이 유서깊은(?) 과학자·수학자 연합의 풍자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논리실증주의'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리차드 로티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모든 철학자들이 '논리실증주의자'가 되지 않았던 덕택(?)인지 여전히 이러한 풍자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멋대로 과학의 언어게임을 차용한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을 옹호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철학을 과학의 아류나 사이비 과학의 교묘한 술수 정도로 치부하는 소칼과 그 일당(?)도 곱지만은 않습니다. 한쪽이 지적 불만족감을 과학으로 대치하면 될꺼라는 안이한 오류를 범했다면 다른 한쪽은 그러한 차용이 '과학계를 위협'하거나 '과학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쉽게 생각해서 누군가 "남녀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긴다. 1+1=2라는 공식은 여기서 1+1=3이라는 공식으로 재탄생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진지하게 '수학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포스트 모더니즘이 과학의 언어게임을 차용할 때 비록 난해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제한점을 염두하지 않는다면 그건 저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독자들의 잘못이겠죠. 딱히 그들(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사기'를 치려고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그들을 비판하고 싶다면 '사기'가 아니라 '경솔'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낫겠죠.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거는 없겠습니다만.

 이 책은 철학을 과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여 그들의 언어게임을 과학적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중단'시킬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걸 주의하지 않으면 이 책은 포스트 모더니즘 책들보다 더 해로워요 ㅋㅋ. 아마 어린 철학자들은 자살까지 생각할 겁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ㅋㅋㅋㅋ. 이 책은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과학보다 철학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해롭기 짝이 없습니다. 이 책은 '비판서'입니다. 공격하는 책이지요. 전문과학서가 아닙니다. 이 책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나치게 융성한 다른 나라에서 재판된다면 크게 환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지식이지메'일 따름입니다. 여러분, 사지 말고 도서관에서 읽으세요. 저는 정말 이 책이 크게 성공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 책이 가치 없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철학이 망할 것' 혹은 '철학은 망했다'고 섣불리 예단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질 않길 바라면서 리차드 로티의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철학이 '종말을 맞게 될' 위험은 없다. 계몽주의 시대에도 종교는 종말을 맞지 않았으며 회화 역시 인상주의 시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는 시기가 묻혀버리거나 (하이데거의 제안대로) '소원해진다'고 해도, 또한 20세기 철학이 (마치 16세기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보이듯이) 이리저리 어색하게 흔들리는 단계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 흔들림의 저편에는 여전히 '철학'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질료형상론이 그렇듯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표상작용에 대한 문제가 시대에 뒤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등의 책을 읽을 것이다……." 리차드 로티, 박지수 옮김 (까치글방, 1998) 철학과 자연의 거울,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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