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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그러나 1900년경 철학 속으로 막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던 활달한 기운은 싹이 트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마치 플라톤이 수학에서 ‘철학적 사유’를 창안하기 위한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진지한 정신을 가진 철학자들은 그들의 비판자들의 신랄한 풍자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 수리논리학에 눈을 돌렸다.” - 리차드 로티, 박지수 옮김 (까치글방, 1998) 철학과 자연의 거울, 185
철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절망이었죠. 리차드 파인만의 독설과 앨런 소칼의 신랄함은 철학을 궤멸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적어도 그때 당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적 저작이 사기라고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그리고 과학이 '제일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주의하지 않으면 과학이 '제일지식'이라고 금새 생각해버리지만 말입니다.
제게 이 책은 마치 "우리들(과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너희(철학자들)가 쓰는 글 같은 건 얼마든지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그리고 이건 전혀 허풍이라고 할 수도 없었죠. 그리고 철학자들은 뭐가 장난이고 뭐가 진지한지 구별도 못하는 '병신'들의 집합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오일러가 디드로에게, 현대에는 소칼이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비롯한 여러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그런 신랄한 풍자를 합니다. 이 유서깊은(?) 과학자·수학자 연합의 풍자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논리실증주의'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리차드 로티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모든 철학자들이 '논리실증주의자'가 되지 않았던 덕택(?)인지 여전히 이러한 풍자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멋대로 과학의 언어게임을 차용한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을 옹호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철학을 과학의 아류나 사이비 과학의 교묘한 술수 정도로 치부하는 소칼과 그 일당(?)도 곱지만은 않습니다. 한쪽이 지적 불만족감을 과학으로 대치하면 될꺼라는 안이한 오류를 범했다면 다른 한쪽은 그러한 차용이 '과학계를 위협'하거나 '과학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쉽게 생각해서 누군가 "남녀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긴다. 1+1=2라는 공식은 여기서 1+1=3이라는 공식으로 재탄생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진지하게 '수학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포스트 모더니즘이 과학의 언어게임을 차용할 때 비록 난해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제한점을 염두하지 않는다면 그건 저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독자들의 잘못이겠죠. 딱히 그들(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사기'를 치려고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그들을 비판하고 싶다면 '사기'가 아니라 '경솔'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낫겠죠.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거는 없겠습니다만.
이 책은 철학을 과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여 그들의 언어게임을 과학적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중단'시킬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걸 주의하지 않으면 이 책은 포스트 모더니즘 책들보다 더 해로워요 ㅋㅋ. 아마 어린 철학자들은 자살까지 생각할 겁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ㅋㅋㅋㅋ. 이 책은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과학보다 철학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해롭기 짝이 없습니다. 이 책은 '비판서'입니다. 공격하는 책이지요. 전문과학서가 아닙니다. 이 책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나치게 융성한 다른 나라에서 재판된다면 크게 환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지식이지메'일 따름입니다. 여러분, 사지 말고 도서관에서 읽으세요. 저는 정말 이 책이 크게 성공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 책이 가치 없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철학이 망할 것' 혹은 '철학은 망했다'고 섣불리 예단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질 않길 바라면서 리차드 로티의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철학이 '종말을 맞게 될' 위험은 없다. 계몽주의 시대에도 종교는 종말을 맞지 않았으며 회화 역시 인상주의 시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는 시기가 묻혀버리거나 (하이데거의 제안대로) '소원해진다'고 해도, 또한 20세기 철학이 (마치 16세기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보이듯이) 이리저리 어색하게 흔들리는 단계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 흔들림의 저편에는 여전히 '철학'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질료형상론이 그렇듯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표상작용에 대한 문제가 시대에 뒤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등의 책을 읽을 것이다……." - 리차드 로티, 박지수 옮김 (까치글방, 1998) 철학과 자연의 거울,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