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길 찾기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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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생 아이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함께 읽기를 해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강렬하게 든 생각이다.

 

온라인 독서모임을 몇 년 째 운영해오면서 '이야기'가 가진 힘을 실감한다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감정이 이입된 독자는 그를 친밀하게 느끼고 그의 생각을 자연스레 경청하게 된다. 그의 생각이 평소의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독자는 그 인물에게 닥친 상황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기에, 인물의 입장에서 이해심을 발휘하기가 쉽다.

 

그런 점이 중학생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창구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매개로 아이와 부모가 평소 나누기 어려운 깊은 내면의 대화를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팀을 짜서 해볼까? (과연 아이가 동참해줄지 의문이지만;;)

 

생각만으로 두근두근하다.

책이 매개가 되었을 때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수차례 경험해보았기에...

 

<숨은 길 찾기>는 그런 면에서 나를 설레게 했다.

각자의 꿈을 찾고 지켜내는 세 주인공, 미르와 바우와 재이가 우리 아이들의 진짜 마음 속 숨은 이야기를 꺼내도록 도와줄 것 같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부모는 나와 같은 부모의 입장을 대변해 줄 것 같다.

 

미르는 자존심이 센 아이다. 그러나 시골 학교에 다니는 현재 상황,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자신감이 꺾여있는 중이다. 학원이 아니라 개인과외를 받고 방학엔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에게 꿀리기 싫어서 자신의 꿈은 뮤지컬 배우라고 말해버린다. 그리고 뮤지컬 학원에 등록을 한다. 꿈을 이런 식으로 시작해도 되는 걸까?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고 지기 싫은 오기로 말이다. 나는 내 아이와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세 아이 중 유일하게 양친과 함께 사는 재이. 서울에서 달밭마을로 온 가족이 이사를 온 재이에겐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에 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상처가 있다. 그럼에도 밝고 씩씩하고 사교적인 재이는 현재 달밭마을 중학교 연극부의 부장이다. 없는 동아리를 만들어내 학교의 지원을 받을 만큼 리더십도 있는 재이는 바우를 좋아한다. 하지만 쉽게 고백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신중히 들여다보고, 가까이에서 바우를 차차 알아간다. 자신이 잡아당길 경우 어쩔 수 없이 끌려올 것 같은 바우의 성격을 존중한다. 결국 바우는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갖고 용기를 내어 진심을 표현한다. "나는 네가 재이와 바우같은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 자기 마음을 좀 더 신중히 살펴보고 상대방이 마음을 여는 속도와 상대방의 성격을 존중하는 사랑. 그리고 상대방이 삶을 대하는 방식과 꿈을 지지하는 사랑."

내 아이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는 내 아이가 한 순간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보다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과 천천히 사랑이란 감정에 녹아들기를 바란다. 재이와 바우는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의 마음을 대변해줄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조용하다 못해 답답한 바우지만, 확실하고 뜨겁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 바로 정원을 가꾸는 것.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우는 식물이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줄 때 바우는 뿌듯하다. 문제는 그 일이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도 내 아이의 의견을 듣고 싶다. 너는 보편적 성공과 개인적 만족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니? 묻고 싶다. 둘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에 대한 답은 없다. 그것 역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니까. 나는 다만 내 아이가 가진 생각이 궁금하고,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바우 지지자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달리 보편적인 성공을 중요하게 여긴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 가겠다는 길을 막아설 생각은 없다. 다만 질문은 계속해서 던지고 싶다. 그 길이 왜 좋은지. 그 길에서 궁극적으로 네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바우는 그 질문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가진 아이다. 나도 내 아이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자기만의 답을 갖기를 바란다.

 

소신을 갖기를 바란다.

신중에 가장 만나기 어려운 신이 소신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내 아이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다른 부모들과도 함께 나눈다면 어떨까. 좀 더 다양한 가치관과 다양한 입장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느티나무 기둥에서 뻗어나간 가지 같은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아이들과 부모들과의 대화는 소신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희망에 젖어 본다.

 

 

얼마 전 직장동료의 차를 내 아이와 함께 탄 적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내 아이를 보며 "이것도 한 때다. 사춘기 되 봐라. 문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아. 나는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다니깐." 한다.

웃으면서 "그러려나요?" 하면서 속으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사춘기는 오히려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은 사춘기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와 어떤 관계이냐, 집 안의 사정이 어떤가, 또 각자가 속한 학급의 분위기나 친구 관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간혹 같거나.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그것을 아는 것에서 소신은 시작된다. 타인의 입장이나 타인의 생각을 모르는 채로 나 혼자만의 생각을 믿는 것은 소신이 아니다. 책을 매개로 여러 갈래의 다른 생각을 알고 그 중 나와 뜻이 맞는 길을 택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칠수록 각자의 소신은 그 모양을 제대로 갖춰나갈 것이다. 나는 그 일을 돕고 싶다. 바우가 식물이 자라는 일을 돕듯이. 그러고 보니 보육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 독서모임을 꾸리고 이끄는 나, 블로그에 서평을 쓰는 나, 작가가 되고 싶은 나가 결국 하나의 몸통에서 나온 부캐들이다. 목적이 같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들의 생각이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그러니까 옳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바우와 이금이 작가님의 닮은 면도 보인다.

바우는 식물을 잘 자라게 하는 일을 하고, 작가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잘 자라게 하는 글을 쓴다.

 

어쩌면 소설가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소설 속 인물의 입을 통해 세상에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서모임에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슬로리딩한 인연으로 작가님을 만났고, 그 연이 계속 이어져 내가 속한 카페 회원들과 이 책의 서평단도 꾸리게 되었다. 비록 무료로 받은 책이나 우리 서평단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읽고 진심을 다해 서평을 썼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2021103, 서평단과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전에 바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아동청소년 문학가로서 작가님의 위업을 느끼게 되어 기쁘다.

 

싹에 물을 주듯 아이들에게 좋은 글, 옳은 글을 주시는 작가님.

세월이 지나 달라진 세태를 반영해, 그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이미 쓴 책을 고쳐 쓰시는 개정판 작업에도 정성을 들이시는 작가님.

 

작가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자꾸 더해진다.

 

 

<마음이 동한 문장들>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꽃과 나무들 앞에서 바우는 그동안 애지중지하며 식물을 가꾸었던 일이 허탈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여기 있는 것들은 영원히 시들거나 죽지 않는, 이별도 소멸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꽃은 지니까 예쁜 것이고 벌 나비가 날아들어야 진짠 거지, 천년만년 피어 있고 벌 나비도 못 받는 게 암만 예쁘면 뭔 소용이야."

 

 

+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잖아. 어떤 사람들 눈엔 엄마가 여기에서 썩고 있는 걸로 보일지 몰라도 엄마는 서울 병원에 근무할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보람 있어. 그런 것처럼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보다 무엇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 미르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하려면 먼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함을 깨달았다.

 

 

+ 어른들은 아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믿을 필요가 있다. 자기에게 닥친 일인데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결정이나 판단에서 소외되고 제외되는 것, 진짜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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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해마 그림 / 밤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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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미르, 소희, 바우

 

"우리 사촌오빠 있잖아요, 엄마랑 아빠가 이혼했대요. 그래서 오빠는 엄마랑 산대요."

 

 

여름방학이라 집에 놀러온 조카 아이가 과일을 깎는 내게 다가와 대뜸 이야기한다. 왜? 물으니 몰라요. 하더니 잠시 있다 덧붙인다. 중국 사람이라 말이 안 통했나?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말이 안 통하니 마음도 안 통했을 지도.

 

이제 열살인 그 아이는 부모님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얼마 전에는 아내 없이 아이를 키우던 50대 후반 남성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암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이제 중학생인데 혼자가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울지도 않고 멍하니 있었다던 아이. 남겨진 재산보다 채무가 많아 상속 포기까지 해야 했다던데. 이제 어디에서 누구와 지내게 될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처음 이사온 날, 앞집 아주머니 아저씨의 초대를 받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한 아이가 들어오며 인사를 하는데 두 분의 아이라기엔 많이 어려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눈으로 쫓으며 살폈던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주머니가 먼저 말씀하셨다. 조카인데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있다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계단에서 만나도 언제나 고개를 숙인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어깨를 움츠리던 아이. 어느날 부턴가 보이지 않는데, 부모님께 간 걸까. 잘 지내고 있을까.

 

 

달밭마을에서 소희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덮은 뒤 남아있는 여운을 가슴에 담아둔 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미르, 소희, 바우가 떠올랐다. 그 아이들의 마음을 미르와 소희와 바우라면 위로해줄 수 있을덴데. 부모를 이해하기 힘든 아이도, 이해할 부모조차 없는 아이도, 늘 움츠린 채로 있던 아이도 미르와 소희와 바우를 만나면 흙바닥에서 엉덩이 툴툴 털고 일어나 걸어나갈 힘을 얻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이겨낸다.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르가 엄마와 함께 달밭마을로 이사온 후의 이야기가 1장 미르의 관점, 2장 소희의 관점, 3장 바우의 관점에서 시간순으로 전개되고 4장은 모두의 이야기이다.

 

세 아이 중 나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긴 것은 소희였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던 아이.

 

소희는 일기장이 두 개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검사받는 일기장 외에 비밀 일기장이 하나 더 있었고, 그 곳에 소희의 진짜 마음을 써내려갔다. 미르에 대한 첫인상부터 질투심. 자신에게는 없는 것과도 같은 부모님에 대한 생각. 건강이 악화된 할머니에 대한 걱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 남겨질 것을 더 무서워하는 마음. 그에 따른 죄책감까지.

 

솔직하면서도 깊은 그 아이의 속이 무척이나 어른스러웠고, 그 점이 안타깝고 애처로워 마음이 갔다.

 

 

⌜모범생, 우등생, 부모가 없어도 반듯하게 자란 아이. 철든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소희를 따라다니는 말들이다. 아주 어렸을 때를 빼놓고 소희는 선생님이나 할머니에게 자기 잘못으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다. 어른들이 어떤 아이를 좋아하는지 알았기에 스스로 그 틀에 맞추어서 살았다.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다 울음을 터뜨리던 미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소희는 살면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_ 너도 하늘말나리야 p.111

 

 

이 글이 담긴 장의 소제목은 <울고 싶은 아이> 이다.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희가 주질러 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게 해주고 싶었다. 작은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긴 것들 다 쏟아질 때까지.

 

그러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니, 소희에게 그런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무엇보다 소희 스스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용납하지 못할 거야.

 

 

미르와 소희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다. 바우도 그렇다. 바우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소통과 꽃 그림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미르는 자기감정을 밖으로 표출해 버리는 반면에 소희는 자기 안에 담아 태워 사그라뜨린다. 

소리 내어 우는 행동이 미르의 속을 후련하게 할 수는 있어도 소희의 속에는 오히려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장면 하나를 추가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비밀 일기장을 가져본 사람은 안다.

 

말하고 싶은 것이 글이 되는 것을.

 

울고 싶은 아이는, 눈물이 글이 되지 않을까.

 

 

소희는 자신의 눈물로 빽빽히 비밀 일기장을 채우면서 실컷 글을 흘리고 속이 후련해졌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이 나와 닮아 애정이 가는 아이.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후속 작으로 소희의 이야기가 담긴 <소희의 방>이 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방이 궁금하다.




#개정판 이후 14년 만의 재개정판, 어떻게 다르지?

 

이 책은 1999년에 발행된 이금이 작가님의 <너도 하늘말나리야>가 20년이 지나 두번째 새 옷을 입고 나온 것이다.

 

변화한 시대의 감각에 맞게 내용을 고치고 문장도 하나 하나 손 보아 다시 선보인다니, 재개정판과 개정판 이전의 1999년도 작품은 어떻게 쓰였을지 궁금해졌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는데 현재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내용인데 어째서 중학교 교과서로 옮겨진 걸까? 어쨌든, 교과서에는 전문이 아닌 일부 문단이 발췌되어 수록되었을텐데 어느 부분이 어떤 식으로 담긴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미래엔, 중학교 국어 1-1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니, '마음이의 독서 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즐겁게 책만 읽을 거에요." 도서실 국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이 수업 시간에 주인공 마음이가 읽는 책이 바로 <너도 하늘말나리야>였다. 마음이의 독서 일기를 따라서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책 선정하기 - 참고 자료를 찾고 메모하며 읽기 - 독서의 즐거움 알기]

 

라는 책 읽는 법을 익히게 된다.

 

마음이가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 발췌되어 교과서에 실려있다. '하늘말나리' 꽃에 대해 주인공 바우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뭔지 아세요? 하늘말나리에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뿐만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빙 둘러 난 잎도 참 예뻐요. 다른 나리꽃 종류들은 꽃은 화려하지만, 땅을 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 핀대요. 어쩐지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모양 같아요.”

_미래엔, 중학교 국어 1-1에 실린 <너도 하늘말나리야>

 

응? 수레바퀴라는 표현이 있었나? 싶어 재개정판의 같은 부분을 찾아보았다. 아. 이 부분의 문장이 다듬어져 있었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뭔 줄 아세요? 하늘말나리예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도 예쁘지만 잎도 예쁘게 났어요. 빙 둘러 난 게 바퀴 모양 같아요. 백합이나 원추리 같은 다른 백합과 꽃들은 꽃이 땅을 내려다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서 핀대요. 그 모습이 뭔가 소원을 비는 것 같아요.”

_<너도 하늘말나리야> 2021재개정판

 

 

아래 문장을 읽으니 꽃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바우가 꽃에 대한 전문적 지식 또한 풍부한 아이라는 것이 더 와닿는다. 아. 이렇게 섬세하게 다듬으셨구나.

 

 

인터넷 서점에서 이금이 작가님의 책을 검색해보니 동화부터 청소년소설까지 무려 5페이지에 걸쳐 작품이 나열되는데 개정판이 아닌 책은 최신간 정도이다. 그만큼 작가님의 여러 작품이 오랜 시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을 내놓는 것 뿐 아니라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그 책의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 작가님, 어린이 독자에 대한 작가님의 성의에 따스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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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현상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오승민 그림 / 밤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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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처음 우리집 열쇠가 주어진 후, 문은 누가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때 나는 열네살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의 씽크대에 서서 쌀을 씻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무언지.

외로움은 공허한 것이고, 서운한 것이고, 불안한 것이고, 맥빠지는 것이고, 느즈러지는 것이고, 시린 것이다.
그걸 온몸으로 느낀 열네살의 아이가 생각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동화집 속 다섯 이야기의 다섯 아이들은 모두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다. 벌이의 의미가 대가성 노동을 넘어 자아 실현인 부모도 있지만, 개중에는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들을 내몬 부모의 자녀도 있다. 우리 부모 또한 그랬다. 아파트는 샀고, 대출금은 갚아야 하고. 모든 게 새 것인 그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은 행복했나? 내 대답은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니." 다.
택시 운전을 하시던 아빠는 더 많은 시간 운전을 해야 했고, 장사를 시작한 엄마는 더 많은 시간 가게 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위해서였고, 자식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만 중요했지, 자식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뭘 알겠나, 나중에 크면 다 감사하다고 할 거다. 여겼을까?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간들은 새 아파트에 살던 때에 모여 있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지? 무엇으로 이겨냈지? 이야기 속 다섯 명의 아이들처럼 담대했더라면...

이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겨운 상황들에 각자의 방법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인다.  그 시간을 스스로 견디고 이겨내는 모습들이 대견하다. 강한 녀석들. 가슴 한 켠에 뜨뜻한 것이 뭉클거린다. 모양과 색이 다 다른 그들 각자의 뚝심이 부럽기도 하다.

ㅡ ㅡ ㅡ ㅡ

'새 아파트에 살게 되면 엄마 아빠는 또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계속 바쁘게 구두쇠로 살 테지.'

_<꽃이 진 자리> 중

어차피 부술 집. 재건축이 확정되어 낡은 것을 낡은 대로 두는데다 엄마, 아빠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기 싫은 소녀. 벚꽃 가지가 늘어진 놀이터 시소 옆 자리에서 열두 살 아이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 한 분과 만난다.

ㅡ ㅡ ㅡ ㅡ

'컴퓨터만 좋은 걸로 바꿔 줘 봐. 누가 피시방에 가나.'
-<한판 붙어 볼래?>중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자식 하나 잘 키우려고' 도시로 이사온 후 부모님 얼굴을 보기도 힘든 영훈이. 학원이 끝나고 게임을 하기 위해 향한 피시방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다. 자신을 이름 대신 '촌놈' 이라 부르는 같은 반 실세다.

ㅡ ㅡ ㅡ ㅡ

현기는 거의 날마다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왔다. 말을 하는 사람은 주로 나였다. 나는 현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신이 났다. 어느새 인터넷 금단 현상도 사라지고 다시 오후 시간이 즐거워졌다.

-<금단현상>중

시험을 망치고도 온라인 게임에만 빠진 오빠에게 화가 난 엄마는 인터넷을 끊어버린다. 오빠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효은이는 매일 같은 시간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ㅡ ㅡ ㅡ ㅡ

"어쩌다 오시는 어머니 비위 하나 못 맞춰 드려서 저렇게 가시게 해야 돼?" 아빠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무슨 남자가 그렇게 비겁하냐? 선재만도 못해. 집안일 하는 게 무슨 잘못이야? 왜 날 못된 마누라로 만들어!" 엄마 목소리가 더 컸다.
-<십자수>중

평소엔 집안일을 잘 분담하던 선재네 가족은 남존여비적 사고방식을 가진 할머니의 예고 없는 방문으로 싸늘한 기운이 돈다. 그 와중에 선재는 여친의 생일에 선물할 십자수 완성에 급급하다.

ㅡ ㅡ ㅡ ㅡ

꽉 막힌 고속 도로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같았다. 앞으로도 6년 넘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교 수의학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수의학과에 붙지 못하면 수의사도 될 수 없다. -(중략)-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솔직히 걱정스럽기보다 두려웠다. 내가 공부를 못해도,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걸 이루지 못해도 나를 사랑해 줄까.
-<임시보호>중

하은이와 부모님은 미래의 하은이 직업을 수의사로 정한 10살부터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학군이 좋은 동네로의 이사, 경시대회 출전, 영재 교육원 지원, 유기견 임시 보호까지. 모두 하은이를 위한 것이지만, 하은이의 마음은 불안하다.  

ㅡ ㅡ ㅡ ㅡ

이금이 작가님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린다.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다.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가며 나는 울고 웃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각각의 상황은 아이들이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 결핍, 단절은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어른들이, 그러한 사회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판단한 부모들이 끌어들였다. 그 후 아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던져졌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억울해 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과 숙제를 앞에 두고 그저 꿋꿋하다. 기특하다 못해 미안하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 흠뻑 빠져 읽으면서 한 번, 서평을 쓰기 위해 훑으면서 또 한 번,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군데 군데 또 찾아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을 여러 번 만났다. 정이 들었나보다. 내 직업 외에 엄마라는 직종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신이 이 어린이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전해주겠노라 하면, 나는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달라 하고 싶다. 그 시간이 부모들에게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 매일 잠시라도.

맞벌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아이가 클 동안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와중에도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여유를 부모 개인이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것은 부모를 노동자로 모시고 있는 회사의 숙제다. 사회의 숙제다. 한 사회의 어른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안정감을 갖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할 수있게 도울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금의 어른들도 그들이 어린이였을 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애쓴 더 어른들의 덕을 보고 있지 않나.

모든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세상, 누구나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꿈을 찾을 수 있는 세상. 그것을 바라는 건 산 꼭대기에 올라 손톱만큼의 땅을 거저 얻기를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허황된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가정.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꿈을 찾게 해주는 가정.
바로 우리 집부터, 노력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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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 이 시대를 사는 40대 여성들을 위한 위로 공감 에세이
한혜진 지음 / 체인지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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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쓰는 편지/ 한혜진 작가님께



지극히 사적인,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저 멀리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당신을 따라서-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나의 유년기로, 방황했던 청소년기로, 일에 미쳤었던 미혼 시절로,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엄마로 태어났던 2016년으로.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세대가 같으면 삶도 비슷한 걸까요.

맞아. 그랬어. 우리 부모님도 그랬는데. 아, 그래서 나도 그랬나봐.

문장마다 공감을 했더랬습니다.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기억의 바닥에 침전되어 있던 유년의 감정들이 되살아납니다.

그 감정을 작은 가슴에 안은 채 참고, 또 참고만 있던 작은 아이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안아주었습니다. 말해주었습니다.

작가님이 그랬듯이.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도 괜찮아.


책으로부터의 여운 때문인지, 책을 덮고서도 울컥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로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주책맞게 떨어지다 옷에 부딪히고 바닥에 부딪혀 더 작은 알갱이가 되어 사방으로 튀는 눈물방울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겠는 것은 이 여행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여행하며 한바탕 눈물을 쏟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였습니다.

이상하지요.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는 집부터 정리하고 싶으니 말입니다.


책상 위에 언제 놓였는지도 모를, 콧물이 말라비틀어진 물티슈와 마스크 비닐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인형의 집 부자재와 공주치마, 색연필, 물감이 칠해진 도화지, 색종이 등등을 버리거나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치우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아이의 흔적이라는 것을요. 더불어 또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아이에게 자기 물건을 사용 후 제자리에 놓는 습관을 들인다면 내 일과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겠구나.


퇴근 후 정신없이 치울 때는 몰랐는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니, 아이의 입장에서 정리하기 쉽게 아이 물건의 위치를 재배치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 역할의 우선순위 또한 재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삼십대 중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방감을 맛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의 통해 인정받으려 했던 과거의 제 자신을 버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던 적이요. 그런데 이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를 읽으면서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인정을 구하는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다짐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한 채,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채 살고 있는 마흔의 나를 발견했습니다.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내면의 아이의 여전히 인정을 바라고 있었나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지만, 그 일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마치 거울에 비친 저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일을 하는 제 자신의 즐거움보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기준에 비친 제 모습이 어떨지를 우선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마흔앓이 여정에 동참한 덕분에 이제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것을 찾는 여행이요.

'다음에' 가 아닌 바로 '지금부터'요.



추신:

도브 캠페인 광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을 찾아보고 소리내어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광고 자체보다, 이 광고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작가님의 메시지가, 그 마음이 감사해서요.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합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 '온리원'입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쓰면 됩니다.

"



<공감구절>


77

마흔이 되고보니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것은 나이와 노화뿐인 것 같다. 일부러 살아야 한다.


111

나를 지키려면 간절함을 조절하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간절함을 비롯한 모든 감정 조절은 나를 지켜주는 백신이다. 그 방법에 밖에 없을 것 같을 때 다른 방법이 있고, 지금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것 같을 때 또 다른 길이 열린다.


144

타인은 피하면 피할 수 있지만, 나는 피할 수가 없다. 한여름에 피서는 가능하지만, 생에서 피아는 불가능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 떠날 수도 도망갈 수도 못 본척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다.


152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자기 존재를 확인받지 못했을 경우 그 상처로 인해 어른이 되면 가만히 쉬는 일을 못 하게 된다고 한다. 가만히 쉬는 순간 자신이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한심한 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일할 때만 자기 존재가 가치 있다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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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가장 아름다운 여자애들.
예의 바르고 순종적인 여자애들.

거기까지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재기 발랄함까지 갖춘 여자애들.


그런 여자애들을 양성하는 학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가 이 소설의 주 무대이다.

철조망과 수풀로 뒤덮여 세상과 격리된 학교는 소녀들이 완벽한 숙녀가 되길 바라는 학부모와 후원자들의 돈으로 운영된다.
이 학교의 선생들 업무는 소녀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교장.
소녀들의 행동을 관리하는 사감.
소녀들의 정신을 관리하는 분석가.
소녀들의 신체를 관리하는 의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동을 하고 정해진 식사와 정해진 색깔의 비타민 알약을 먹어야 하는 그녀들.

완벽하게 관리되는 그녀들은
학교에서 정해준 성공을 위해 교수들에게 수업을 받는다.
사교법, 교양, 원예 같은 것들.


그런데.
학생 중 한 명이 이상행동을 보인다. 그녀의 이상행동은 필로미나와 다른 학생들에게 번진다. 그리고 학교 버스를 타고 현장학습은 나갔다가 주유소 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잭슨.
잭슨의 질문과 행동으로 필로미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만 있는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이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학교의 소녀들처럼 나도 의문을 가져본다.


이 학교의 고객들은 왜 인형을 필요로 하는가.
남성은 왜 여성을 필요로 하는가.
당신은 왜 나를 필요로 하는가.
남자에게 아름다운 여자는 어떤 의미인가.
검은 수트를 입은 남성 사업가 옆에서 반짝이 드레스를 걸치고 미소 띤 얼굴로 서 있는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머리 속으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을만큼 장면의 묘사가 잘 되어있고 책장을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실제 행해졌던 끔찍한 의료시술의 묘사에 경악하고 후반부의 반전에 충격을 받아 멘탈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했다.

흩어진 정신을 다시 주워담아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
폭로하고 싶은 것.
경고하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은유 작가는 자신이 가사노동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어서 '시'를 읽었다.
_출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은유
남권 사회에서 순치된 가축처럼 고분고분 살아야 했던 조선소 사대부 여인들은 '시'가 짓기를 금지당했다.
_출처: 달아 높이곰 돋아사/이영희
에밀리 브론테는 밤마다 '시'를 쓰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눌린 자기의 삶을 위로했다.
_출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장영희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의 장미 인형들 역시 한 편의 '시' 로 인해 깨어난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소녀들에게 나도 시 한 편을 적어보내며 서평을 마친다.

이 책이 모든 여자애들에게 널리 읽히길 바란다.





여자애들에게
_EK

아름다워지길 원한다면,

"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너희가 아름다워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네 행위의 목적을 의심해라.
머리를 틀어올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목적.
다리에 오일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목적.

남친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당장 집어치워라.

너희는 타인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갖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움은 버려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녀라.

지키고 싶게 하라.
고유한 너만의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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