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가장 아름다운 여자애들.
예의 바르고 순종적인 여자애들.

거기까지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재기 발랄함까지 갖춘 여자애들.


그런 여자애들을 양성하는 학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가 이 소설의 주 무대이다.

철조망과 수풀로 뒤덮여 세상과 격리된 학교는 소녀들이 완벽한 숙녀가 되길 바라는 학부모와 후원자들의 돈으로 운영된다.
이 학교의 선생들 업무는 소녀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교장.
소녀들의 행동을 관리하는 사감.
소녀들의 정신을 관리하는 분석가.
소녀들의 신체를 관리하는 의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동을 하고 정해진 식사와 정해진 색깔의 비타민 알약을 먹어야 하는 그녀들.

완벽하게 관리되는 그녀들은
학교에서 정해준 성공을 위해 교수들에게 수업을 받는다.
사교법, 교양, 원예 같은 것들.


그런데.
학생 중 한 명이 이상행동을 보인다. 그녀의 이상행동은 필로미나와 다른 학생들에게 번진다. 그리고 학교 버스를 타고 현장학습은 나갔다가 주유소 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잭슨.
잭슨의 질문과 행동으로 필로미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만 있는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이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학교의 소녀들처럼 나도 의문을 가져본다.


이 학교의 고객들은 왜 인형을 필요로 하는가.
남성은 왜 여성을 필요로 하는가.
당신은 왜 나를 필요로 하는가.
남자에게 아름다운 여자는 어떤 의미인가.
검은 수트를 입은 남성 사업가 옆에서 반짝이 드레스를 걸치고 미소 띤 얼굴로 서 있는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머리 속으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을만큼 장면의 묘사가 잘 되어있고 책장을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실제 행해졌던 끔찍한 의료시술의 묘사에 경악하고 후반부의 반전에 충격을 받아 멘탈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했다.

흩어진 정신을 다시 주워담아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
폭로하고 싶은 것.
경고하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은유 작가는 자신이 가사노동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어서 '시'를 읽었다.
_출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은유
남권 사회에서 순치된 가축처럼 고분고분 살아야 했던 조선소 사대부 여인들은 '시'가 짓기를 금지당했다.
_출처: 달아 높이곰 돋아사/이영희
에밀리 브론테는 밤마다 '시'를 쓰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눌린 자기의 삶을 위로했다.
_출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장영희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의 장미 인형들 역시 한 편의 '시' 로 인해 깨어난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소녀들에게 나도 시 한 편을 적어보내며 서평을 마친다.

이 책이 모든 여자애들에게 널리 읽히길 바란다.





여자애들에게
_EK

아름다워지길 원한다면,

"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너희가 아름다워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네 행위의 목적을 의심해라.
머리를 틀어올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목적.
다리에 오일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목적.

남친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당장 집어치워라.

너희는 타인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갖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움은 버려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녀라.

지키고 싶게 하라.
고유한 너만의 아름다움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