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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마 이야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76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6월
평점 :
우리 삶의 콜리마.
우리네 삶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뒤섞여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마주보고 있다.
콜리마 이야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등장인물은 모두, 스탈린 체제하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강제 노동 수용소인 콜리마에서 수용 생활을 한다. 그들은 금광, 도로건설, 벌목 등의 강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가 추위와 배고픔에 내던져 진다. 이들의 죄목은 정치범 또는 인민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수용된다. 이들을 신고한 사람은 가족이나 주변인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죽음이라는 공포 아래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고 만다. 결국 진정한 적은 자기 자신이다.
이들의 죄명은 정당한가. 누가 그들을 죄인이라고 얼굴을 마주하고 부를 수 있을까.
콜리마에서 수용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즉 식욕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다. 빵을 먹기 위해, 더 많이 먹기 위해서가 아닌 무엇이라도 먹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산을 하고 도둑질을 한다. 파손된 소포 상자에서의 설탕은 달콤한 욕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임에도 내가 취할 수 없는 짐짝이 된다. 펄펄 끊는 냄비의 내용물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결국 누가 먹고 누가 쟁취하느냐가 그 날 밤을 지배한다.
너무나 혹독한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어떤 이는 장애인이 되려고 스스로를 해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나음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이미 수용소 안에서는 소용이 없다. 생각은 망상이고 행동은 지나친 이기심일 뿐이다. 지금, 여기는 죽음보다 더 한 삶이기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밤, 굶주림, 오랜 중노동, 얼음물 속의 금광, 겨울의 추위, 호송병의 구타,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오래토록 생채기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뼛속 깊이 차오르는 기억의 조각이 그네들의 밤을 타고 때론 고통으로 때론 아픔으로 때론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갈증처럼 남은 삶을 채워 나갈 것이다.
연중 9개월이 겨울이며 북극권에 속하는 콜리마 지역은 러시아 북동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어느 지점은 겨울의 냉기가 부는 빙하지대가 있다. 소소한 일상의 부분을 차지하는 아픔 혹은 고통이 밀집되어 있는 곳, 그곳이 콜리마 지역이다. 내 삶에 격리 시킨 사람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 실연당한 아픔 등등 콜리마 지역은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쓰라림이 가득 쌓인 곳이다.
인간의 뇌는 힘들고 아픔 기억을 조각처럼 나누어서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같은 경험이 왔을 때, 대비하기 위해서 기억을 작게 작게 쪼개서 그 시간은 더 더디고 느리게 간다. 그러나 시간은 같은 비율로 나누어져 있고 항상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처럼 지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 느림의 시간을 견디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더 단단해 진다.
작가는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최악의 삶이라 해도 그것이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의 교대로 이루어지며 실패가 성공보다 많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커다란 삶의 그림에서 우리의 콜리마 지역은 그 그림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부분이며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모습이자, 나 자신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의 삶도 녹녹치 않다. 그 안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자세만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의 작업량을 했든지, 우리는 끊임없이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줍고 침대에 모로 누워 배고픔을 달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