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다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66
스노리 스툴루손 지음, 이민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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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이야기가 내게 말을 걸다.

 

에다 이야기는 게르만 신화 이야기이다. 우리가 접한 그리스·로마 신화와 다르게 게르만 신화는 웅장하고 크고 박진감이 넘친다. 아마도 게르만 민족의 성향이 묻어나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이 책의 오딘과 토르 이야기를 흥미진지하다. 만물의 아버지인 오딘과 모든 신과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한 토르.

특히, 토르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많이 등장해서 친숙하고 익숙했다. 망치를 든 토르, 그 망치를 들기 위해서는 장갑을 껴야 한다. 그리고 파워 허리띠까지 차야 비로소 토르의 힘의 근원이 생기는 것이다.

책의 도입부에 방문자가 더 현명하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란 말이 나온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지 그 상황만 보고는 판단하면 안 된다. 그 상활이나 일의 이면을 보고 두로 보고 넓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내용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안의 진정한 의미는 눈앞에 두고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토르가 자기 자신과 겨루는 대목이다. 힘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스스로를 마주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이긴다는 것은 싸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기기 위해 나의 존재조차 망각하다보면 결국 싸움은 싸움으로 끝나고 만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그 사람의 이면을 바로 보고 지켜봐 주고 이해해주며 공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에다이야기에서의 게르만 신화는 영적인 지혜가 담긴 이야기라고 한다. 영적인 것이라는 것은 대지에서 불타서 재가 되어도 죽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영적인 지혜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겹겹이 쌓이는 것이다. 그것이 책일 수도 있고 업적일 수도 있고 이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오딘과 토르 같은 존재가 아니지만 그네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삶을 누린다. 이 삶은 시간도 생명의 길이도 아닌 살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삶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나를 얼마만큼 알고 나아가는 것이다. 오딘이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삶의 긴 여정을 따라 나아간다. 마치 우리네 삶은 순례자의 길과 같은 것이다. 황폐한 자연에 내던져져 낮과 밤의 깊이만큼 걷고 먹고 잠을 자며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의 답은 이미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묻고 걷는다. 그 대답이 정답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묻고 답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순례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다보면 영적인 지혜가 된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딘의 여행길에 동반자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르처럼 힘으로 제압을 하거나 싸우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비다르처럼 침묵할 때도 로키처럼 중상모략을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에다이야기는 게르만신화이면서도 우리의 이야기가 축소되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가 한다. 책장을 덮고 나서, 흥미진진한 영화 한편을 본 것처럼 재미있고 그 재미 뒤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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