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 나의 첫 영화 이야기
김상혁 외 지음 / 테오리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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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 영화는 무엇입니까?

첫 영화는 말 그대로 첫 영화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던 시간과 공간, 영화를 볼 때 함께 했던 사람, 그리고 어떤 순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희경 시인의 추천사처럼 열 명의 작가가 쓴 '첫 영화 이야기'는 나의 기억과 맞닿은 부분들이 꼭 하나씩은 있어서 이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졸린 눈을 부비며 기다리던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의 기억부터, 가족이 함께 처음으로 갔던 동시상영극장에서의 첫 영화, 인생 최초로 혼자 보았던 영화, 분명 내용도 다 알고 명장면과 명대사는 외울만큼 알고 있지만 사실은 본 적이 없는 영화들까지 차례차례 떠올랐다. 영화에 나왔던 음악을 우연히 들었을 때 그 영화 내용보다도 함께 봤던 사람과, 영화가 끝나고 함께 걷던 길과 그 날의 바람과 공기가 떠오르는 것처럼. 영화로 시작되는 열 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꾸자꾸 내 기억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찾아 굳이 내 얘기까지 보태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덧칠된 그림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최초의 스케치처럼"
-그날 만났던 괴물들을 또다시 만나다|박사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어렸던 우리 남매를 데리고 극장에 가셨다. 내 인생 첫 극장의 기억. 아마도 아이를 맡겨둘 곳은 딱히 없고 큰맘을 먹고 결단을 내리셨던 모양인데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첫번째 로맨스영화는 발을 배배 꼬거나 졸거나 하며 어찌어찌 버텼지만, 두 번째 영화였던 '나이트메어2'를 보고 동생이 기겁을 하고 기절 직전으로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부랴부랴 나와야했던 것. 무서워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보지 못한 결말이 어찌나 궁금하던지. 호러영화 매니아로 성장한 먼 훗날 기어이 찾아보고는 '이게 그렇게 무서웠던 그 영화 맞던가?'하며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디가 내 마음 속 넘버1인 것은 그 강렬한 첫인상때문이겠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가족이 함께 극장에 가서 본 영화는 김민종 주연의 <귀천도애>였고...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때는 먼저 앉은 사람이 그 좌석의 임자가 되었다.
상영관 문이 열리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종종걸음을 하거나 뛰고,심지어 가방을 던졌다."
-처음 본 것들의 꼬리를 잡고 | 서효인
라떼는 말이죠. 정말 그랬다.
좌석이 모자라서 바닥에 가방을 깔고 앉아 '쥬라기공원'을 보았던 그 날의 기억.
맨 바닥에서 진동으로 전해지던 티라노사우르스의 발걸음과 포효.

"죽을 위기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보물을 놓을 때 삶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냥 나쁜 것도 마냥 좋은 것도 없다.
세상 최고의 해피엔딩은?
'다음 기회'다."
-모험이 날 그렇게 했다 | 이다혜

"읽는 이가 자신의 경험으로 빈자리를 채워 넣을 때
비로소 말은 읽는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
완성이 된다.
그러므로 말은 의도를 실어 나르는 수레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교류룰 나누는 쉼터에 가깝다."
-영화를 '말한다'는 것. 그 기분 좋은 무력감에 관하여 | 송경원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를 읽는 내내 나의 경험을 채워 넣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나의 경험은 이렇게 두서없이 끄적일 뿐이지만 첫 영화관의 기억부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들과 영화에 얽힌 기억들이 감자 캐듯 우르르 떠올라 아련해졌다.
마음이 일렁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잊었지만 머물고 있었구나.

"우리가 본 영화들은 우리를 통과해 지나가지만, 모두 다 지나가는 건 아니다.
어떤 장면, 어떤 대사, 인물의 눈빛, 목소리, 배경, 음악,
그리고 그 영화를 보던 시간이나 장소,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문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든다."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드는 것들 | 박연준

영화를 좋아하든 아니든 영화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화에 대해 기억하며 떠올리는 감정은 그 영화에 대한 감상보다는 영화를 보던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로 인한 것이리라. 영화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해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렇게 문득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오래 묵혀둔 기억을 꺼내 볼 수 있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하게 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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