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 내 인생의 셀프 심리학
캐럴 피어슨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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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이야기 구조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가 시작된다.”(p.32)
대부분의 문제는 내 마음의 언어와 세상의 언어가 달라 겪는 충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의 힘들고 부정적인 면들을 피하고 싶었다. 주변에 다른 기쁨들도 있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보고 지나치는지 살짝 의아해 하다가도 내가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맞지 않다는 느낌에 설 자리를 잃은 기분이었다. 내게는 힘이 없다는 느낌이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지나치거나 가려져 있어 보지 못한다. 세상이 무섭다가도 그것들의 잔재를 보면 이상하게 아름다워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캐럴 피어슨 지음, 류시화 옮김/연금술사)는 우리 안에 있는 심리적 원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수많은 원형 중에 우리의 인생 여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여섯 가지 원형인 고아/방랑자/전사/이타주의자/순수주의자/마법사 원형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원형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원형이 깨어난 사람일 수도 있고,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원형을 꽃 피우기 위해 이제 막 ‘영웅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일 수도 있다.
원형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 체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심리 구조’인데, ‘어떤 원형의 이야기 구조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려면 며칠 동안 자신이 하는 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학의 딱지를 달고 딱딱하게 풀 수 있는 이야기를 동화처럼 풀어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삶이 성장을 위한 영웅의 여정이라니, 고통과 불평등함이 분명 존재하는 세상을 한 인간이 ‘영웅’이 되기 위해 거쳐야할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각각의 원형들은 우리가 책임감 있게 그 과정을 받아들일 때 인생에 ‘지혜’라는 선물을 준다. 신화 속 영웅이 역경과 고난의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 나가는 것처럼. 삶을 회피하며 즐거운 면만을 보던 나에게는 부드러운 권유로 느껴졌다.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에둘러서 듣는 사람이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삶에서 영웅의 고난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과정을 뚫고 지나가지 않는다면,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의 설명으로 풀이하자면, 그 상황에서 배울 점이 있기에 다 배우고 깨우치기 전까지는 삶이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아’의 원형을 가지고 계속 살아왔는데, ‘고아 원형’ 챕터의 글마다 내 인생의 되짚어 주거나 내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이 수두룩해 뜨끔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그들은 분노를 쏟아내면서 자신이 희생자라는 것을 구실로 삶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생략) 추방은 절대로 삶의 전부가 아니다. 고아는 그저 우리가 거쳐 가야 하는 많은 원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p.65)
최근 1~2년은 ‘방랑자 원형’이 깨어나기 시작하는지 지난 과거에 비해 적극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가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것은 저 깊숙이 잠들어 있던 ‘전사 원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겐 세상을 살아낼 힘이 부족하고 능력이 안돼.’라며 자포자기했던 생각들을 제치고 껄끄럽게만 느껴지는 ‘투쟁’이 필요한 시기이다. 방치해 둔 나를 관리하고, 게임으로 치자면 ‘전투력’을 키워야 한다.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싫어서 자기기만을 하며 참았는데, 그건 나를 깎아내리는 짓이었다. 올바른 ‘분노’도 낼 줄 알아야 하며, 정당히 자신을 변호할 말을 할 줄 알아야 됐다. 경계를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경계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아직도 주춤 주춤 거리다 평소처럼 지나갈 때도 많다. 어떤 분이 말하길 내가 나를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고 만만하게 본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무던하게 지내려는 삶의 패턴을 수정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이 책 앞부분에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여인이 나온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모든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목적을 이루었다. 인생에서 하고자 했던 일은 모두 시도해 봤으니까. 떠돌이 노동자, 급진주의자, 매춘부, 도둑, 개혁가, 사회운동가, 혁명가가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고, 또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전율했다. 그것들 모두 가치 있는 일이었고, 내 삶에 비극은 없었다. 그렇다, 내 기도는 응답받았다."(p. 24)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도 있구나. 단순하게 보면 탄생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인데, 참으로 마음을 복잡다단하게 하는 것이 삶이지 싶다. 모두가 자신의 삶의 영웅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길을 존중해야 한다고 책의 끝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 자신의 길에 ‘진실하게 행동’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이며, ‘상호 의존성을 존중’하라고. “당신은 나에게 배우고 나는 당신에게 배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당신 개인의 삶은 인류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나의 물줄기이다.”(p.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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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헌의 사주 강의 : 상 이동헌의 사주 강의
이동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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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강의를 들을 때, 운칠기삼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꿀 수 없는 부분이 7,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3이란 의미이다. 젊어서 그런지 ‘극복하면 되는 것이지 왜 운명이라는 말을 쓰나. 자기 합리화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일견 맞는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인생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근거를 제시해 준다. 수용함으로써 ‘불평/불만’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가정, 부모와 형제,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부분, 기질..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요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것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삼라만상 세상을 음양오행의 상호작용(상생, 상극)으로 보는데, 이를 인간이 태어난 생일(생년/월/일/시)에 대입한 것이 사주팔자이다. 사주명리학의 표현 방식인 간지22자(천간 10자, 지지 12자)의 결합 60갑자 중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 4개의 기둥(사주-년/월/일/시)이고, 8개의 글자(팔자)이다. 당연히 어떤 부분은 없거나 부족하고 어떤 부분은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이동헌의 사주 강의>에서는 “당신 사주에 뭐가 없다고 뭐를 못하고, 뭐는 안 되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 사주에 없는 건 남들보다 비어 있는 것이니... 다른 걸로 채우는 노력을 하면 더 가득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p. 370)라고 말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사주에 기웃거린 것도 저자의 말마따나 비어 있는 부분이 무엇이고 이를 어떤 식으로 채울지 힌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2020년 트랜드에 맞게 한자 한자 다시 쓴 사주명리학 교과서’라는 설명에 맞게 <이동헌의 사주 강의(상)(하)>(이동헌, 지식과감성)는 어마무시한 두께를 자랑하며, 아주 기초적인 음양과 오행, 간지, 십십부터 시작해 합충형파해, 대운, 용신 등을 설명하고 있다. 책 뒷표지에 ‘이 책 상하권을 모두 읽고 나면 당신은 이제 명리학도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어떤식으로 사주명리학이 흘러가는지 맥을 잡는다면 충분히 ‘명리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 좀 더 풍요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치킨 몇 마리 희생해서 사주를 잘 보시는 분께 볼 수 있지만 이왕이면 ‘스스로 사주’를 풀이해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초보이기에 거칠고 엉성할 순 있겠지만, 사주도 자신과 남을 이해하는 도구이지 않은가.
저자는 책의 첫 부분에 사주명리학의 발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뒷부분을 훑어보니 꽤나 재미있다. 저 옛날 농경사회는 자연 관찰이 중요했는데, 사주명리학도 그러한 자연 관찰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인류는 이러한 열기와 습도의 관찰을 통해 60년에 한 번 태양과 지구의 순환을 읽어냈고, 12년마다의 지구의 변화를 읽어 냈으며, 12달의 습도 변화와 1시의 열기변화가 60일주의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해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주명리학이다.”(p. 23)
전문적으로 타인의 사주를 볼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사주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기에 내 사주팔자의 천간/지간과 도움이 될 만한 부분만 살펴보았다. 겉만 훑는 식이지만, 일견 내 성격과 주변 상황과 맞는 부분과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어 흥미로웠다.
“자기 사주를 알려 하는 사람이 자꾸 년에 있는 인자를 따져서 현재를 판단하려고 하면 사주 판단이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일주와 월지에 집중했는데, 자신이 아닌 것 같으면, 주변에 물어라, 내가 그런지, 안 그런지, 어떤지...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사주명리학 공부의 시작이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p. 205)
저처럼 자기 사주 풀이가 궁금해 직접 알아보고 싶은데, 당최 알 수 없는 개념과 단어에 혼란을 겪으신 분들, 사주명리학 기본 개념을 다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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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문 메디치 3 - 프랑스를 지배한 여인
마테오 스트루쿨 지음, 이현경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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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문 메디치3: 프랑스를 지배한 여인>은 구교와 신교의 대립하던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왕비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상인 가문의 딸인 카테리나가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프랑스의 왕가로 시집을 가게 되고, 왕의 어머니인 왕태후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전개가 빠르고 생각보다 흡입력 있어 평소 느릿느릿 읽던 나를 한 시간에 70~100p가량 읽게 만들었다.
소설의 첫 도입부는 어린 카테리나가 그녀의 고모와 함께 메디치가문이 후원하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이 대성당 돔의 건축에 얽힌 두 건축가의 경쟁을 다룬 적이 있어 기억이 난다. 선명한 붉은 색 돔이 압력에 의해 무너져 내리지 않게 돔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었다는 데, 책 앞부분에 사진이 실려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도입부에서는 자신의 집안이 메디치 가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카테리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이 왕태후가 되어 죽음을 맞이할 때 카테리나가 환상처럼 바라보는 장면이어서 울림을 준다.
이탈리아 상인 가문 출신이지만 프랑스의 정점인 왕족으로 살았던 카테리나의 운명과 나라의 상황은 여느 사극 못지않게 재미있다. 프랑스의 왕자 앙리와 결혼한 카테리나는 이방인에 대한 배척, 남편의 외도 때문에 젊은 시절 대부분을 고통 속에서 보낸다. 애첩에 푹 빠져 카테리나를 돌아보지 않는 남편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카테리나. 이런 카테리나에게 의지가 되는 것은 남편 앙리의 아버지이자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지지 때문이다.
어느 날 왕세자 프랑수아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앙리는 왕세자가 된다. 정황상 카테리나가 의심을 받지만, 프랑수아 1세만은 그녀를 믿어 준다. 남편이 왕세자가 된 상황에서 카테리나는 이혼당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가져야 했다. 그녀는 점성술의 힘을 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스트라다무스를 찾는다.
아이만 태어나면 그녀에게 순탄한 상황이 펼쳐질 줄 알았건만, 그녀의 남편이 왕위에 오르고도 애첩 디안에게 휘둘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디안이 교묘하게 상황을 이끌어 ‘카테리나-앙리-디안’의 기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디안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 궁전에서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카테리나. 자신을 견제할 새로운 왕비를 원하지 않는 디안. 여기에 한 술 더떠서 디안은 카테리나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앙리를 부추겨 긴 시간 ‘빵을 굽는 오븐’이 되게 만든다.
보통 사극 드라마에서 대왕대비, 태황후, 왕태후까지 오른 여인은 그들의 권력을 누리던데, 카테리나가 살았던 시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빌어보자면, ‘불행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상인 가문 출신 이방인으로 프랑스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외모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디안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상인으로, 이단자로, 악마의 숭배자, 부패를 일삼는 여자, 살인자로 묘사했다.’(p. 431)
'카테리나에게는 일종의 검은 전설과 음산한 악명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과거에 그녀는 저주받은 왕비, 검은 왕비, 독살을 자행하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악의 상징 같은 여자로 정의되었다. 악은 그녀에게 뿌리 박혀 있다가 위그노 대학살 때 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을지도 모른다.'(p.447)
역사는 그녀를 악녀로 지칭하지만 소설로 접한 카테리나는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대하사극으로 제작된다면 찾아보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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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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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유치원 졸업 때 내 이름을 가진 아기 공룡이 주인공인 그림을 책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 이후 초등학생 때의 독서는 내게 지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 처음 집 주변에 있는 공립도서관 회원이 되었다. 주위 어른들의 칭찬을 받는 것이 좋아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었었다. 책이라는 세상 속에 빠져들게 된 것은 빼곡이 들어찬 서가를 거닐며 현실과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맘껏 탐험하며 공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였다. 실제로 중학생 때 대출 기록을 보면, 판타지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책을 읽는다면,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르게 어른들 특히 부모님은 너그럽게 봐주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1년 동안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취향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기꺼이 감금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책의 표지, 새 책의 냄새, 종이의 질감, 책을 넘기는 느낌이 좋았다. 독서에 집중하면 어느 공간에 있든(복작 거리는 카페, 지하철 속에서라도)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 저자가 서술하는 세계 속을 거닐며 정신적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의 역사: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알베르토 망구엘, 세종)는 꽤나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읽는 행위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중세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시인 휘트먼 등의 독서가를 넘나들며 은밀한 독서(묵독), 소리내어 읽기와 책 암송, 빅토리아 시대의 여행 필수품 책 꾸러미, 고금의 다양한 책의 판형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서양의 독서 역사로 제한되어 있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경탄하게 된다. 우리가 글자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초의 독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두루마리에 띄어쓰기 없이 기록되었던 텍스트가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가 발명되면서 독서가에게 미쳤던 영향, 나만의 기억 궁전에 수많은 책을 넣어두었던 고대/중세인들과 정보의 홍수 속에 독서를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설명, 다수의 사람들이 청각으로 받아들이던 독서와 개인적인 시각으로 읽어 내리는 독서,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했던 중세의 ‘그림 읽기’ 등을 읽어나가며 “독서의 역사는 아마도 독서가들 각자의 역사일 것이다. 심지어 독서의 역사의 출발점까지도 우연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가는 텍스트에 정성을 기울인다. 그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와 언어의 형태적 변화까지 창조해 낸다. 너무나 감동적이게도, 독서가들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과 글로 쓰여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 낸다.”(p.61)
고전이 세월의 흐름에 스러지지 않고 꾸준히 그 존재를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시대의 독자라도 고전 속에서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삶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가는 독서를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고 이것이 새로운 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말한 ‘끝나지 않은 독서의 역사’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중략)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프란츠 카프카(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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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문 메디치3: 프랑스를 지배한 여인>은 구교와 신교의 대립하던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왕비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상인 가문의 딸인 카테리나가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프랑스의 왕가로 시집을 가게 되고, 왕의 어머니인 왕태후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전개가 빠르고 생각보다 흡입력 있어 평소 느릿느릿 읽던 나를 한 시간에 70~100p가량 읽게 만들었다.
소설의 첫 도입부는 어린 카테리나가 그녀의 고모와 함께 메디치가문이 후원하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이 대성당 돔의 건축에 얽힌 두 건축가의 경쟁을 다룬 적이 있어 기억이 난다. 선명한 붉은 색 돔이 압력에 의해 무너져 내리지 않게 돔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었다는 데, 책 앞부분에 사진이 실려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도입부에서는 자신의 집안이 메디치 가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카테리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이 왕태후가 되어 죽음을 맞이할 때 카테리나가 환상처럼 바라보는 장면이어서 울림을 준다.
이탈리아 상인 가문 출신이지만 프랑스의 정점인 왕족으로 살았던 카테리나의 운명과 나라의 상황은 여느 사극 못지않게 재미있다. 프랑스의 왕자 앙리와 결혼한 카테리나는 이방인에 대한 배척, 남편의 외도 때문에 젊은 시절 대부분을 고통 속에서 보낸다. 애첩에 푹 빠져 카테리나를 돌아보지 않는 남편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카테리나. 이런 카테리나에게 의지가 되는 것은 남편 앙리의 아버지이자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지지 때문이다.
어느 날 왕세자 프랑수아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앙리는 왕세자가 된다. 정황상 카테리나가 의심을 받지만, 프랑수아 1세만은 그녀를 믿어 준다. 남편이 왕세자가 된 상황에서 카테리나는 이혼당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가져야 했다. 그녀는 점성술의 힘을 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스트라다무스를 찾는다.
아이만 태어나면 그녀에게 순탄한 상황이 펼쳐질 줄 알았건만, 그녀의 남편이 왕위에 오르고도 애첩 디안에게 휘둘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디안이 교묘하게 상황을 이끌어 ‘카테리나-앙리-디안’의 기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디안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 궁전에서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카테리나. 자신을 견제할 새로운 왕비를 원하지 않는 디안. 여기에 한 술 더떠서 디안은 카테리나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앙리를 부추겨 긴 시간 ‘빵을 굽는 오븐’이 되게 만든다.
보통 사극 드라마에서 대왕대비, 태황후, 왕태후까지 오른 여인은 그들의 권력을 누리던데, 카테리나가 살았던 시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빌어보자면, ‘불행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상인 가문 출신 이방인으로 프랑스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외모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디안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상인으로, 이단자로, 악마의 숭배자, 부패를 일삼는 여자, 살인자로 묘사했다.’(p. 431)
'카테리나에게는 일종의 검은 전설과 음산한 악명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과거에 그녀는 저주받은 왕비, 검은 왕비, 독살을 자행하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악의 상징 같은 여자로 정의되었다. 악은 그녀에게 뿌리 박혀 있다가 위그노 대학살 때 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을지도 모른다.'(p.447)
역사는 그녀를 악녀로 지칭하지만 소설로 접한 카테리나는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대하사극으로 제작된다면 찾아보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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