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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 내 인생의 셀프 심리학
캐럴 피어슨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20년 5월
평점 :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이야기 구조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가 시작된다.”(p.32)
대부분의 문제는 내 마음의 언어와 세상의 언어가 달라 겪는 충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의 힘들고 부정적인 면들을 피하고 싶었다. 주변에 다른 기쁨들도 있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보고 지나치는지 살짝 의아해 하다가도 내가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맞지 않다는 느낌에 설 자리를 잃은 기분이었다. 내게는 힘이 없다는 느낌이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지나치거나 가려져 있어 보지 못한다. 세상이 무섭다가도 그것들의 잔재를 보면 이상하게 아름다워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캐럴 피어슨 지음, 류시화 옮김/연금술사)는 우리 안에 있는 심리적 원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수많은 원형 중에 우리의 인생 여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여섯 가지 원형인 고아/방랑자/전사/이타주의자/순수주의자/마법사 원형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원형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원형이 깨어난 사람일 수도 있고,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원형을 꽃 피우기 위해 이제 막 ‘영웅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일 수도 있다.
원형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 체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심리 구조’인데, ‘어떤 원형의 이야기 구조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려면 며칠 동안 자신이 하는 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학의 딱지를 달고 딱딱하게 풀 수 있는 이야기를 동화처럼 풀어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삶이 성장을 위한 영웅의 여정이라니, 고통과 불평등함이 분명 존재하는 세상을 한 인간이 ‘영웅’이 되기 위해 거쳐야할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각각의 원형들은 우리가 책임감 있게 그 과정을 받아들일 때 인생에 ‘지혜’라는 선물을 준다. 신화 속 영웅이 역경과 고난의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 나가는 것처럼. 삶을 회피하며 즐거운 면만을 보던 나에게는 부드러운 권유로 느껴졌다.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에둘러서 듣는 사람이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삶에서 영웅의 고난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과정을 뚫고 지나가지 않는다면,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의 설명으로 풀이하자면, 그 상황에서 배울 점이 있기에 다 배우고 깨우치기 전까지는 삶이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아’의 원형을 가지고 계속 살아왔는데, ‘고아 원형’ 챕터의 글마다 내 인생의 되짚어 주거나 내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이 수두룩해 뜨끔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그들은 분노를 쏟아내면서 자신이 희생자라는 것을 구실로 삶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생략) 추방은 절대로 삶의 전부가 아니다. 고아는 그저 우리가 거쳐 가야 하는 많은 원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p.65)
최근 1~2년은 ‘방랑자 원형’이 깨어나기 시작하는지 지난 과거에 비해 적극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가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것은 저 깊숙이 잠들어 있던 ‘전사 원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겐 세상을 살아낼 힘이 부족하고 능력이 안돼.’라며 자포자기했던 생각들을 제치고 껄끄럽게만 느껴지는 ‘투쟁’이 필요한 시기이다. 방치해 둔 나를 관리하고, 게임으로 치자면 ‘전투력’을 키워야 한다.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싫어서 자기기만을 하며 참았는데, 그건 나를 깎아내리는 짓이었다. 올바른 ‘분노’도 낼 줄 알아야 하며, 정당히 자신을 변호할 말을 할 줄 알아야 됐다. 경계를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경계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아직도 주춤 주춤 거리다 평소처럼 지나갈 때도 많다. 어떤 분이 말하길 내가 나를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고 만만하게 본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무던하게 지내려는 삶의 패턴을 수정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이 책 앞부분에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여인이 나온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모든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목적을 이루었다. 인생에서 하고자 했던 일은 모두 시도해 봤으니까. 떠돌이 노동자, 급진주의자, 매춘부, 도둑, 개혁가, 사회운동가, 혁명가가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고, 또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전율했다. 그것들 모두 가치 있는 일이었고, 내 삶에 비극은 없었다. 그렇다, 내 기도는 응답받았다."(p. 24)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도 있구나. 단순하게 보면 탄생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인데, 참으로 마음을 복잡다단하게 하는 것이 삶이지 싶다. 모두가 자신의 삶의 영웅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길을 존중해야 한다고 책의 끝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 자신의 길에 ‘진실하게 행동’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이며, ‘상호 의존성을 존중’하라고. “당신은 나에게 배우고 나는 당신에게 배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당신 개인의 삶은 인류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나의 물줄기이다.”(p.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