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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지음 / 읻다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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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인터뷰는 나에게 안전을 보장해준다. 2인 이상의 타인이 모였을 때 생길만한 불편한 감정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 좋거나 나쁜 감정 모두에 대해 이입을 잘하는 나는 그런면에서 그녀가 하는 인터뷰라면 모든 걱정은 내려놓고 편하게 읽어내려간다. 마음 편한 독자가 되는 것이 나에게는 흔한일이 아니다.
그녀는 상대의 보호막을 뚫으려 하지 않는다. 질문하는 이로 존재하는 것 대신 어느새 함께 감응하는 사람이 되어 내 옆자리에 앉는다. 부담스럽게 파고들고 다급하게 묻는 대신 찬찬히 대상을 읽고 바라본다.
은유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3번의 인터뷰 과제를 했다. 나는 매번 적확하고 아름다운 질문을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를 누구보다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무의식 또는 의식적으로 나를 위한 질문과 녹취를 다듬고 흐름을 가공해왔던 것 같다. 완성된 인터뷰 과제를 읽고 또 읽으며 내가 해낸 질문에, 만들어낸 흐름에 만족스러워하기도 했다. 결국 나의 인터뷰는 상대를 잃어버리고 결승점에 혼자 도착한 우스운 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유의 질문이 어디에 있지?’ 이 책을 읽으며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순간순간 흐름과 감응을 만들어내는 질문은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은유는 어느새 뒤로 살짝 빠져있는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는데. 덕분에 나는 번역가와 시에 대해, 번역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돌봄에 대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되었다. 그 기분들을 모아보니 어느새 마구 읽고 쓰고 싶어졌다.
“현장에서 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울 수 있어서 나에게 인터뷰는 인생 수업이다.”라고 말하는 은유는 나의 소중한 르포 작가이며 미더운 인터뷰어다. 은유의 신작이 이제 막 나왔을 뿐인데, 다음 책이 너무 기대된다. 그녀와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어서 너무너무너무너무 든든하다.
🌱 ‘시’ 읽기가 어려워 이 책 또한 망설여지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안내하고 싶다. 당신은 이 책 하나로 ‘힙’한 이 시대의 번역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시는 나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사례로 접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책을 읽고 나면 엄청나게 시를 읽고 싶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과한 후 안심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계속 나여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덧붙이자면, 나는 한국어 공부에 시 읽기와 한자 공부가 도움이 된다는 안톤 허의 말을 참고하여 ‘구몬 한자’를 등록했다. 이번 주 목요일부터 구몬 학습지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하신다.(무려 10분!) 그렇다 나는 타인의 말에 영향을 잘 받는 사람이다. 그나저나 멋진 서평을 쓰고 싶었는데 러브레터가 되어버린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시는 나를 나로 돌려놓는 마법이다.(6쪽) - P6
시는 낮은 곳을 살피는 언어이고, 르포는 가리어진 존재를 드러내고 인간의 고통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내겐 뿌리가 같은 일이다.(11쪽)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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