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보람을 얻었고, 닫혀 있던 세계가 조금씩 열렸다. 혼란스럽기만 하던 나나의 우주가 마침내 질서를 회복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아무 감정도 함부로 배설되지 않았다.”(145쪽, 행성봉쇄령)화성에서의 노동과 삶화성에서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간의 글들을 떠올려본다.SF에 대한 긴 독서 경험은 없으나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눈에 띄게 발전한 기술, 달라진 환경 말고 내 기억에 남는 진짜 삶이 있었던가. 배명훈 작가의 <화성과 나>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SF 소설임에 틀림없다. 노동, 사랑, 음식, 상실, 두려움 등을 촘촘하게 적어놓은 이 작품들은 화성에서의 삶을 미리 경험한 이의 노동 일지 같기도 하고 일기장 같기도 하다. 살아남는 것이 기적이 되는 곳, 아는 맛을 포기해야 하는 곳. 화성 그곳에서의 사람들을 크게 확대해 그리는 이 책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우주를 가깝게 내 옆에 데려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