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문학동네 청소년 27
유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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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중심, 변두리에게

 소설을 펼치니 내지에 들어 있는 이 한 문장. 으레,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족에게 바치는 문장이 놓이는 이 자리에 "내 삶의 중심, 변두리에게" 글을 바치는 이 작가는 누구인가. 표지의 날개를 보니, 그 어느 작가의 약력보다도 간략하지만 강렬한 약력. "1974년생. 서울 변두리에서 자랐다." 유은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일수의 탄생> 등 우리에겐 동화 작가로 친근한 그 이름. 그녀가 첫 청소년 소설을 냈다. 게다가 작가 유은실의 근간을 이루는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소설.

 80년대 초 도살장이 있던 서울의 변두리 황룡동을 배경으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수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란 어떠할까. 평론가 유영진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이쯤에서 멈추겠지 싶은 순간 예상을 깨고 수면 밑으로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깊고 어둡고 황량한 심연을 마주하기 두려워 제발 이 정도에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에도 작가는 고도의 수압을 감내하며 더 깊이 침잠한다." 유년기의 어둠을 있는 그대로 눈 앞에서 대면하고자 하는 작가의 힘에 이끌려 <변두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근래 이처럼 강렬하고 서글픈 도입부를 보지 못했다.


 동생 꿈은 카우보이였다. 도살장 초원을 누비면서 새끼 돼지랑 송아지를 돌봐 줄 거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곤 했다. 소랑 돼지가 늙어서 죽으면 도살장으로 실려 와. 죽을 때가 된 소랑 돼지도 도살장에 와서 평화롭게 눈을 감지. 그러면 도살장 카우보이들이 죽은 동물에게 묵념을 해. 그러고 나서 부위별로 나눠 파는 거야. 죽은 동물도 기쁠 거야.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니까. 아빠가 밥상머리에서 동생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엄마랑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중략)

 "누나. 같이 가."
 뒤쪽에서 수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못 들은 척 계속 뛰었다.
 "같이 가자니까!"
 수길은 소리를 지르며 뒤쫓아 오더니 들통 손잡이를 확 잡아 당겼다.
 "앗!"
 나는 들통이랑 같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횡단보도 위로 선지 덩어리가 널브러지고, 그 위에 내가 널브러졌다. 덤으로 받은 양은 길 한복판에 빈대떡처럼 달라붙었다. 간 덩어리는 급정거한 차바퀴에 깔려 피를 튀기며 으깨지고 있었다.
 "어어 뭐여? 아침부터 재수 없게."
 "애들이 저런 걸 사다 먹나 봐, 불쌍해라."
 "동네가 후지니까 출근길에 별걸 다 보네."
 사람들은 선지, 양, 부서진 간 덩어리, 들통, 그리고 나를 피해 바삐 길을 건넜다.
 "선, 선지, 내 선지."
 나는 널브러져 있을 새가 없었다. 양에다 간까지, 일 년에 한 번도 얻기 힘든 귀한 덤이었다. 나는 흙 범벅이 된 선지 덩어리들을 그러모아 들통에 담았다. 바닥에 빈대떡처럼 달라붙은 양도 떼어 담았다.
 "수원아, 다친 데 없니?"
 영미는 들통 뚜껑을 주워 들고 뛰어왔다. 나는 영미 손에서 뚜껑을 뺏어 들고는, 흙 묻은 선지 덩이처럼 주저앉은 동생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켰다.
 "에이 썅!"
 나는 동생 머리채를 잡고 길을 건넜다. 수길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버르적댔다. 그럴수록 내 손아귀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병신 새끼가 뛰지도 못해!"
 나는 길을 건너자마자 동생 뺨에 따귀를 날렸다. 동생 얼굴은 금세 피범벅이 되었다.
 "씨발 새끼, 이 좆같은 놈! 야이 거지발싸개 같은 세상 빌어먹을 개자식아!"
 내 입에선 아빠가 술김에 뱉어 내던 지긋지긋한 욕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말을 더듬어 보지 않은 사람처럼 빠르게 터져 나왔다. 
 "신발이 커서 그랬어."
 수길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동생 입에서 침에 섞인 풀빵 조각이 나와 발께로 떨어졌다. 나는 동생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작년까지 내가 신던 오로라 공주 운동화였다. 후룩후룩. 교통경찰이 저벅저벅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테두리만 남은 오로라 공주의 왕관 위로 선홍빛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떤 유년의 기억은 그저 순진하고 아름답기만 할 지 모르나, 유은실이 <변두리>에서 이끌어내고자 하는, 아니 돌파하고자 하는 기억들은 피냄새와 구린내로 가득한 도살장과 부속시장을 매일같이 오가던 수원과 그만그만한 살림살이를 한 이웃들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시인 김진경이 말하듯 "창작자는 세상과의 근원적인 불화 관계의 경험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 창작자는 이른바 '원체험'이라 하는 자신과 세계 간의 불화의 기억을, 회귀를 통해 다시 대면하고 끊임없이 넘어서는 지난한 창작의 과정을 통해 이야기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변두리, 이것은 80년대 초 황룡동에 살았던 수원이라는 아이 개별의 삶이나 창작자가 불화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끌어안는 회귀를 감행할 때, 독자는 누구나 수원이 되고 수원의 어미와 아비가 되며 친구가 된다. 저 들통을 쥐느라 빨개진 손아귀가 아려 가만히 내 손을 쥐었다 펴보게 된다.

 어쩌면 문학에서 절실한 공감이란 오히려 아주 개별적이고 진솔한 개인 서사의 환기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는 선지와 덤으로 얻은 내장을 담은 들통을 쏟은 수원 남매의 저 장면을, 무릎이 깨진지도 모르고 땅에 뒹구는 양을 허겁지겁 들통에 다시 넣는 수원의 모습을 선연히 떠올리며 내 가슴이 깨진 마냥, 한참 숨을 골라야했다. 불현듯 안녕을 고했다고 믿었던 나의 옛동네들이 되살아났고, 숨죽여 울어야 했던 밤들도 떠올렸던 것 같다. 유년의 기억이 양분을 삼는 것은 가족과 이웃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안온함이 아니라 그 테두리 밖에서 그들이 대면해야했던 세계의 흉포함이 아니었을까. 그 흉포함을 그들이 대신 막아주었다면 어린 내가 감당했어야 하는 것은 그네들이 세계와 대면하느라 미처 추리지 못한 수치심들이 아니었을까. 돌이켜 보니 따뜻하다 생각했던 내 유년의 기억은 부끄러움과 욕됨으로 번져 있다.

 넘어져 피범벅이 된 수원의 이야기는 이제 수길과 함께 하는 이산가족놀이, 초경과 몽정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첫 아카시아꽃을 따먹는 첫꽃날 행사로 이어지면서 황룡동 곳곳을 함께 따라 걷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작가 유은실이 대면하고 응시하고 있는 변두리는 비록 넉넉하지 못하고 상처로 가득한 남루한 기억일지 모르나, 그 안에서 말 그대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갔던 생들은 결코 남루하지 않다. 그들이 '없이 사는 사람', '피를 먹는 사람'이란 비난을 받는다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끈끈한 연대감은 적어도 사람, 적어도 우리는 사람이라는 그 별것아닌 마음이 있기에, 그들은 인면수심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고귀한 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쉽게 '따뜻한 이야기'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문득 돌이켜보건데, 따뜻한 이야기란 무엇일까. 그저 이야기를 통해 안심하고 위로 받고 마는 것이라면, 그것을 정말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변두리>를 따뜻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가 아무리 따뜻한 무엇을 표명하고 떠들어 댄다 한들, 그 온도의 전이는 오롯이 읽는 이의 몫일 것이다. 아프게, 정말 아프게 변두리의 생을 응시하는 이 소설은 섣부른 위로나 석연치 않은 안심을 주고자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장을 덮었을 때 몸에 마음에 감도는 이 따뜻한 온도를, 피가 도는 온도를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 나 역시 변두리에서 자랐고 지금 내 삶의 중심이 변두리이기에, 사람, 적어도 우리는 사람이라는 그 마음 때문에 이토록 뜨거운 것은 아닌지.


 "천하장사 강수원, 빨리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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