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의 아이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
김재홍 지음 / 길벗어린이 / 200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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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남매

 

  엄마가 오지 않는다아이는 둘한창 장난꾸러기일 나이건만 의젓하게 동생을 보살피는 오빠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시종일관 보채는 어린 여동생두 아이는 동강을 마주한 채 지루하고 외로운 기다림을 견디고 있다어딘지 아기 곰 같은 바위그리운 아빠의 등 같은 바위....... 자연이 만들어낸 기묘한 바위들만이 아이들의 기나긴 시간 유일한 유희거리가 되어준다때로 공룡처럼 무서운 바위가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도 와불처럼우리를 향해 웃는 엄마처럼 곁을 지켜주는 동강의 바위들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집이기도 하다.


유려한 그림 속에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바위들

 

  아이들이 무료함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동강의 자연이 요즘 아이들의 컴퓨터게임이자 장난감이었기 때문이다저자 김재홍의 유려한 그림들은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상상의 나래를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지나가는 구름만 보고도 돛단배며 천사를 찾아내는 아이들이 아니던가장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쓸쓸함은 바위 속에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두 남매에 의해서 조금은 애틋하지만 유쾌한 한 낮의 정경으로 변모한다. 


그 시절 내 유년의 동강

 

  아이에게 읽힐 그림책을 선택할 때 드는 의문 중 하나는 밝고 명랑한 이야기만 읽혀도 부족할 판에 과연 슬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굳이 읽혀야 할까?’라는 것이다하지만 문학이 삶과 관련하여 고민을 던져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듯 아동 문학도 마찬가지이다그림책이라도 늘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 스토리나 알록달록한 상상의 세계만 볼 수는 없다때로는 낮고 추운 곳의 삶을 보듬어 볼 줄 알고 슬픔과 외로움의 정서를 통해 아동 자신의 감정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가장 좋은 그림책 역시 아이들에게 고민을 던져주는 그림책이다.

 

  《동강의 아이들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엄마아빠 세대에게 부모란 늘 일을 해서 밖에 나가 있는 존재들이고 유년기의 대부분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부모를 기다리거나 밖에서 친구들과 넘치는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는 일이었다지금의 우리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학교에학원에 치여 다녀서 어른보다 바쁜 요즘 아이들이라지만 아이들에게도 하루는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엄마아빠가 어렸을 때는 일하고 돌아올 부모를 기다렸다면 지금의 아이들에겐 이 지겨운 학교와 학원에서의 시간 모두가 일과가 끝나고 올 자유시간집에서의 시간엄마아빠에게 투정부릴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다세대차이가 이제는 10년 단위도 아니고 2, 3년 단위로 느껴진다는 요즘이지만 아이가 자라나며 느끼는 감정들 생각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부모가 아이에게 대화를 할때도 마찬가지이다웃음의 포인트도 모르면서 뜻 모를 유행어로 아이에게 말을 걸 것이 아니라 나도 느꼈던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감정들고민들부터 접근한다면 매사에 시큰둥한 아이라도 입을 열고 귀를 쫑긋거릴 것이다.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내일을 담은 그림책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엄마 생각


  《동강의 아이들을 보며 내내 떠오르는 것은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이었다일에 지쳐 돌아올 엄마만을 기다리는 도시에서의 찬밥 같은 시간들을 동강의 자연은 따뜻하게 그리고 너무나 다행히도 아이들을 품어준다.이렇다 할 장난감이 없어도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해주는 수없이 많은 바위들맑은 물과 깨끗한 땅이야말로 아이들의 큰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책을 함께 읽는 엄마아빠 입장에서는 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서 좋을지 모르겠다아니라면 교외로 나가 아이와 손잡고 기기묘묘 신기한 바위며 절벽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해도 좋을 것이다동강의 아이들은 교과서에 수록되었었고 국제 여러 대회에서 수상과 더불어 프랑스 일본내로 수출되기도 했다그림책의 뛰어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우리나라의 특정 세대만이 겪는 일특정 사람들만 느꼈던 감정만이 아닌 탓이다.좋은 그림책은 오늘만을 말하지 않는다오래된 시절의 이야기인 동강의 아이들에는 어제가 있고 오늘 그리고 어쩌면 내일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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