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 청소년을 위한 ‘전쟁과 평화’ 이야기 생각하는 돌 2
게르트 슈나이더 지음, 이수영 옮김 / 돌베개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저는 그때 일곱 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을 때 무척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들 침착하고 태연했으며 흥분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게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한테 물었죠. 전쟁은 엄청난 재앙 아니에요? 왜 아무도 전쟁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느냐 하는 질문에도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물론 지금은 저도 잘 알아요. 전쟁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잔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빈번하게 출몰하는 전투기들에 곧 익숙해졌고, 학교 시작 전에 깃발 앞에서 행하는 제식과 노래에도 금방 적응했어요. 일상의 걱정거리가 너무 많다 보니까 전쟁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죠. 어차피 우리 또래 아이들한테는 놀이와 운동이 더 중요했고, 독일 소녀 연맹에 함께 있는 것이 중요했죠. 우리가 살았던 크라쿠프 지역에 대포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질 무렵에야 우리는 비로소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베 폰 플레베 79세의 독일 국방군 장교 미망인



 

오늘날 추상화 되어버린 전쟁


 오늘날 '전쟁'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금도 지구 한 편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참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이러한 소식들은 우리에게 공간상의 거리만큼이나 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화면으로 보이는 끔찍한 살상의 기록들로부터 잠시만 고개를 돌리면 다른 무수한 영상 자극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 상황을 걱정하기에는 당장 오늘과 내일을 걱정해야하는 생활의 부단함이 우리 사고의 발목을 잡는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전쟁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느껴진다. 단 한번의 방아쇠로 인간의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살아남더라도 평생 전쟁의 악몽 속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실질적인 고통과 공포를 머릿속에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어떻게 지탄받아야 하는 지는 몸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다 학원이다 공부하기에 바쁜 청소년들이라면, 그들에게 전쟁이란 국어나 역사 시험공부를 하다 본 '맥락'이나 '사건' 혹은 게임 스토리에서 접한 대의를 위하는 영웅적 전쟁이 전부이기 마련이다.

 



승리의 이면, 전쟁의 추악한 민낯 꿰뚫어 보기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는 인류의 시작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되어온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를 청소년 눈높이에 알기 쉽게 전달한다. 총 14개의 목차 구성은 전쟁을 찬성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의 토론을 중심으로 원시의 생존투쟁부터 십자군 전쟁, 2차 세계 대전까지 다양한 전쟁사를 보여준다. 각각의 챕터는 별개의 이야기들이지만 점진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중간 중간 가상의 인물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전쟁의 참상은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공감과 통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어려워할 법한 용어들이나 인물들을 책 내용 안에 메모식으로 삽입하여 교양지식을 쌓는데도 훌륭한 입문서가 되어준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 책이 섣부른 가치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인 게르트 슈나이더가 책의 서문에서 밝히는 전쟁을 다루는 '시선'에 대해 친구들과 나눈 '고민'은 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역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할 생각이야. 단순히 역사적 사건과 그것이 이어난 시기 같은 객관적 사실을 늘어놓기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운명, 전쟁이 일어난 이유들을 더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싶거든."


"전쟁에서는 어느 쪽이든 정당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도 자신들의 테러가 정당하다고 주장하잖아. 다른 경우를 보자면 지금은 다들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던 사람들이 정당한 이유에서 행동한 거라고 생각해. 반면에 나치 정권은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어. 이처럼 무엇을 옳고 그르게 생각하는가는 결국 관점의 문제이고, 세계관의 문제라고 봐."


"그렇다면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쪽의 입장도 제시해야 할 거야. 꼭 필요한 전쟁도 있을테니까. 다들 알다시피 전쟁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잖아.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는 원인도 있을 테고, 그릇되고 허위로 조작된 것도 있을 거야. 가령 전쟁은 단순히 호전성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생존 투쟁의 일환으로 일어나기도 해. ......(중략)...... 전쟁을 무조건 악으로 낙인찍는 건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라고 봐. 전쟁의 배경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전쟁의 위험성과 조작 가능성을 결코 꿰뚫어 보지 못할 테니 말이야"


"자네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네. 하지만 내가 좀 더 중점을 두고 싶은 부분은 전쟁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야. ......(후략)"

 

 저자의 고민에서 보듯 그는 최대한 가치 중립적인 시선에서 전쟁을 발전적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세계 역사(유럽, 독일 전쟁사를 중심으로)를 토대로 인류가 자행해 온 전쟁들이 얼마나 끔찍한 상처들을 남겨왔는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능동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각할 기회를 제시한다. 이러한 열려있는 책의 서술은 자연스럽게 독자를 전쟁의 문제로 끌어들여 그것을 통감하고 비판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도식적인 지식이나 교조적인 윤리 강요가 아닌 열려있는 가치 판단의 장에서 청소년은 인류의 구성원인 한 개인으로서 사회와 역사, 인류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저자의 의도가 분산되는 느낌이 있다. 차라리 독일 전쟁사만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책의 말미에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시발점을 히틀러 한 사람으로 보는 부분에서는 전쟁과 범죄의 책임을 이념이나 캐릭터에게 돌려 회피하는 변명조로 들리기도 한다.

 



전쟁과 평화는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가 전쟁을 이야기함은 결국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함과 같다. 전쟁 결과로 인한 명목뿐인 협약이나 휴전이 아닌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쟁을 이해하고 이야기해야만 한다. 평화에 대한 협의를 방해하는 있는 경제 대국 국민들의 전쟁 무감증, 세계 경제의 위기를 쇼비니즘이나 예외주의로 극복하고자 하는 전쟁 옹호론이 지배하는 오늘날, 세계의 '추상적 전쟁' 이념에서 벗어나 우리는 전쟁의 실체에 가닿아야 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 곧 전쟁을 끝내고 예방하는 길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시작되듯이 평화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전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으면 평화를 이룰 수도 있다. 그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 <폭력에 관한 세비야 선언> 198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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