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은 숲 속에서의 짧은 여정을 묘사한다. ‘나‘는 왜 숲속까지 차를 몰고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저것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 모호함 속에서 내가 차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차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따위의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의심을 이어나간다. 모호함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명료해지기를 거부한다. 아무도 ‘나‘의 물음에 정확히 답해주지 않는다. 눈 내리는 숲 속에서의 여정은 순간 자체로 존재한다. 의미를 갖기를 거부한다. 욘 포세는 장면과 장면의 끄트머리를 겹쳐서 반으로 접는다. 그 다음 장면도, 그 다음 장면도. 겹쳐진 부분이 점점 작아지면서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의 드라이브가 목적지를 갖지 않았던 것처럼 이야기도 종착지를 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빛의 터널이거나 그에 준하는 꿈, 환상이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https://tobe.aladin.co.kr/n/228934
안갯 속 다리를 걷는 S의 발걸음은 너무나 구병모 작가님의 것이라서 읽고 있는데도 그리울 정도다.특유의 느릿하고 올드하면서도 이 시대를 저벅저벅 관통하는 문체가.....˝이야기란 어때야 하는가.족적을 따라가 그것의 주인을 찾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오늘날 소설의 위치를 천천히,날카로운 손톱 끝으로 더듬어 보는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이것은 단지 내가 보기에 그러했다는 ‘이야기‘.그리고 이것도 하나의 ‘이야기‘.줄타기를 하는 거리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가 경험하는 것, 나머지인 것, 모든 나머지 것, 그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매일 일어나고 날마다 되돌아오는 것, 흔한 것, 일상적인 것, 뻔한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 보통-이하의 것, 잡음 같은 것, 익숙한 것.(...)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인류학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