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마태복음 2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부터 IVP를 통해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 주석이 하나둘씩 출간되고 있습니다(저자는 주석이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일반대중과 괴리되어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 시리즈에 의도적으로 주석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실제로 이 시리즈는 강해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톰 라이트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가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읽기를 풍성하게 하는데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천년 기독교신학의 역사 속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탁월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대작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그것을 여러 대중서적을 통해 일반독자의 눈높이로 흥미롭게 풀어내는 감각을 보면 아마 대부분 제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이 주석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저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책을 읽고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기대 이상입니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방대한 결과물이 충실히 반영된 주석입니다.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로 엮여진 수천페이지 분량의 연구가 주석 한 줄 한 줄에 알알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방대한 내용들을 대중적인 언어로 이처럼 노련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연구 3탐구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입니다('3탐구'라는 용어도 그가 제안한 것이지요). 
역사적 예수 연구의 2탐구는 비유대적인 예수상을 주로 제안하였는데, 상이성의 원칙을 극단적으로 적용할 경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상이성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예수에 대한 전승이 유대교 전승이나 초기기독교회의 전승과 상이성을 보일 때 더욱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유사성을 보일 경우에는 유대교나 교회의 생각이 덧입혀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유대적인 예수와 기독교적인 예수를 배제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그리고 굳이 왜 그래야 할까요?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고 예수님을 통해 기독교가 생겨났는데 오히려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3탐구는 유대인으로서의 예수에 주목하며 예수
운동을 1세기 유대교의 맥락 위에 위치시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3탐구는 필연적으로 신구약 중간사, 신약성서 배경사,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를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1세기 이스라엘에서 예수 사건이 가졌던 의미를 깊이 이해하면서 복음서를 읽기 위해서는 이 3탐구 계열의 학자들의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긍정하는 가운데,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장 완성도 높고 설득력 있는 전체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 학자가 톰 라이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풍성한 배경사와 본문에 대한 해석들은 쉬운 말로 풀어쓰고는 있지만 오랜기간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깊은 내공에서 뽑아낸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본문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고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높은 학문적 성취와 대중적 명성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의 예수 연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유대적 배경에 집착하여 인위적인 일관성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결과 예수 이해가 협소해졌다는 비판이 있습니다(저는 이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연구에 있어서 그의 소위 '새 관점'은 존 파이퍼를 필두로 복음주의권의 맹폭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였던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이만큼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을 논증해내어 논의의 흐름을 되돌린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학문적 영역에 남겨두는데 만족하지 않고, 신학과 삶의 현장을 실제적으로 통합해내고자 줄기차게 노력하는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것이 제가 톰 라이트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저 역시 톰 라이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해야만 그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복음서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현재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된 상태입니다). 그 시리즈를 통해 저자가 이 책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해석들이 연원하고 있는 방대하고 탄탄한 학문적 기초와 논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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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마태복음 1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부터 IVP를 통해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 주석이 하나둘씩 출간되고 있습니다(저자는 주석이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일반대중과 괴리되어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 시리즈에 의도적으로 주석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실제로 이 시리즈는 강해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톰 라이트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가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읽기를 풍성하게 하는데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천년 기독교신학의 역사 속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탁월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대작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그것을 여러 대중서적을 통해 일반독자의 눈높이로 흥미롭게 풀어내는 감각을 보면 아마 대부분 제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이 주석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저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책을 읽고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기대 이상입니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방대한 결과물이 충실히 반영된 주석입니다.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로 엮여진 수천페이지 분량의 연구가 주석 한 줄 한 줄에 알알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방대한 내용들을 대중적인 언어로 이처럼 노련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연구 3탐구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입니다('3탐구'라는 용어도 그가 제안한 것이지요). 
역사적 예수 연구의 2탐구는 비유대적인 예수상을 주로 제안하였는데, 상이성의 원칙을 극단적으로 적용할 경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상이성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예수에 대한 전승이 유대교 전승이나 초기기독교회의 전승과 상이성을 보일 때 더욱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유사성을 보일 경우에는 유대교나 교회의 생각이 덧입혀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유대적인 예수와 기독교적인 예수를 배제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그리고 굳이 왜 그래야 할까요?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고 예수님을 통해 기독교가 생겨났는데 오히려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3탐구는 유대인으로서의 예수에 주목하며 예수 운동을 1세기 유대교의 맥락 위에 위치시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3탐구는 필연적으로 신구약 중간사, 신약성서 배경사,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를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1세기 이스라엘에서 예수 사건이 가졌던 의미를 깊이 이해하면서 복음서를 읽기 위해서는 이 3탐구 계열의 학자들의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긍정하는 가운데,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장 완성도 높고 설득력 있는 전체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 학자가 톰 라이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풍성한 배경사와 본문에 대한 해석들은 쉬운 말로 풀어쓰고는 있지만 오랜기간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깊은 내공에서 뽑아낸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본문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고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높은 학문적 성취와 대중적 명성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의 예수 연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유대적 배경에 집착하여 인위적인 일관성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결과 예수 이해가 협소해졌다는 비판이 있습니다(저는 이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연구에 있어서 그의 소위 '새 관점'은 존 파이퍼를 필두로 복음주의권의 맹폭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였던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이만큼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을 논증해내어 논의의 흐름을 되돌린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학문적 영역에 남겨두는데 만족하지 않고, 신학과 삶의 현장을 실제적으로 통합해내고자 줄기차게 노력하는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것이 제가 톰 라이트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저 역시 톰 라이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해야만 그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복음서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현재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된 상태입니다). 그 시리즈를 통해 저자가 이 책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해석들이 연원하고 있는 방대하고 탄탄한 학문적 기초와 논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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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마가복음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부터 IVP를 통해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 주석이 하나둘씩 출간되고 있습니다(저자는 주석이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일반대중과 괴리되어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 시리즈에 의도적으로 주석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실제로 이 시리즈는 강해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톰 라이트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가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읽기를 풍성하게 하는데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천년 기독교신학의 역사 속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탁월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대작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그것을 여러 대중서적을 통해 일반독자의 눈높이로 흥미롭게 풀어내는 감각을 보면 아마 대부분 내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이 주석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저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시리즈를 보며 군침을 흘리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이었습니다. 엊그제 드디어 첫 책으로 <마가복음>을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기대 이상입니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방대한 결과물이 충실히 반영된 주석입니다.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로 엮여진 수천페이지 분량의 연구가 주석 한 줄 한 줄에 알알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방대한 내용들을 대중적인 언어로 이처럼 노련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연구 3탐구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입니다('3탐구'라는 용어도 그가 제안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2탐구는 비유대적인 예수상을 주로 제안하였는데, 상이성의 원칙을 극단적으로 적용할 경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상이성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예수에 대한 전승이 유대교 전승이나 초기기독교회의 전승과 상이성을 보일 때 더욱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유사성을 보일 경우에는 유대교나 교회의 생각이 덧입혀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유대적인 예수와 기독교적인 예수를 배제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그리고 굳이 왜 그래야 할까요?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고 예수님을 통해 기독교가 생겨났는데 오히려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3탐구는 유대인으로서의 예수에 주목하며 예수 운동을 1세기 유대교의 맥락 위에 위치시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3탐구는 필연적으로 신구약 중간사, 신약성서 배경사,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를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1세기 이스라엘에서 예수 사건이 가졌던 의미를 깊이 이해하면서 복음서를 읽기 위해서는 이 3탐구 계열의 학자들의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긍정하는 가운데,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장 완성도 높고 설득력 있는 전체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 학자가 톰 라이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풍성한 배경사와 본문에 대한 해석들은 쉬운 말로 풀어쓰고는 있지만 오랜기간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깊은 내공에서 뽑아낸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마가복음 본문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고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높은 학문적 성취와 대중적 명성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의 예수 연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유대적 배경에 집착하여 인위적인 일관성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결과 예수 이해가 협소해졌다는 비판이 있습니다(저는 이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연구에 있어서 그의 소위 '새 관점'은 존 파이퍼를 필두로 복음주의권의 맹폭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였던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이만큼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을 논증해내어 논의의 흐름을 되돌린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학문적 영역에 남겨두는데 만족하지 않고, 신학과 삶의 현장을 실제적으로 통합해내고자 줄기차게 노력하는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것이 제가 톰 라이트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저 역시 톰 라이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해야만 그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복음서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현재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된 상태입니다). 그 시리즈를 통해 저자가 이 책 <마가복음>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해석들이 연원하고 있는 방대하고 탄탄한 학문적 기초와 논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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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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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지고 있는 명성에 비해 사실상 특별히 새로울 만한 내용은 없었다. 윤리학의 역사는 ‘의무론적 윤리’와 ‘목적론적 윤리’라는 두 축 사이에서의 진자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시 그 두 범주를 사용하여 양 쪽의 가장 대표적인 주장들을 택하여 알기 쉽고 실제적인 예화들을 사용해가며 논점의 차이들을 흥미롭게 부각시켜나간다. 그리고 결론부에 가서 자신의 견해인 ‘공동체주의’를 제시하며 목적론적 윤리의 손을 살짝 들어주는 것으로 책을 끝맺는다. 책을 읽으며,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주장하는 '덕의 윤리, 성품의 윤리'와 저자의 주장 사이의 연관성을 떠올려보게 된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샌델과 하우어워스는 각각 일반윤리와 기독교윤리의 영역에서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가장 주목받는 학자들인 셈인데, 이들은 가까이로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멀리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상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제목으로 인해 정의에 대한 가슴 시원한 답변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내 사견이지만 이 책은 초강대국의 일류대학 강의실에서 나타나는 정의에 대한 담론이 가질만한 예상 가능한 약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저자가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의 한계를 예리하게 짚어내면서 윤리의 영역에 공동체적 가치와 도덕을 복권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그가 좋은 관점을 가진 훌륭한 학자임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논의는 시종일관 제1세계 학자가 가진 관점의 한계 안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하긴 강의의 목적 자체가 정의를 추구하기를 촉구하는 것보다는 정의에 대한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이같은 평가가 다소 야박한 감은 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주제보다는 저자의 탁월한 전달력에 있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보다는 ‘강의란 무엇인가’를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책이라 하겠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샌델의 강의가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가 되었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주제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여서, 읽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을 참고한다면 효과적인 전달과 소통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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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부르그만, 김기철 / 복있는사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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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되자마자 단박에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한국사회가 얼마나 정의에 큰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허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은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정의’가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끝없이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그로인한 제3세계 기아와 질병 문제, 종교와 이념, 빈부 문제로 빚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과 테러, 인류공멸의 가능성까지 예상하게 만드는 심각한 환경파괴 등으로 인해 인류는 점차 진보의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들이 얼마나 불의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뼈져리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 역시 그 가르침과 실천을 통해 정의의 문제에 대해 어떠한 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앞으로 지금보다도 더욱 빠르게 그 영향력과 권위를 잃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의’라는 화두를 고민하며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주목해야 할 구약학자가 있다. 바로 월터 브루거만이다. 브루거만은 현존하는 구약학계의 최고 권위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탁월한 학문적 성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가진 독특한 신학적 강조점으로 교회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학자로서 그의 신학적 입장이 가지는 의의를 설명하자면, 그는 제1세계의 관점에서 주변부 신학으로 치부해버린 해방신학의 강조점을 제1세계 신학의 중심부에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 예언자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저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약자와 소외된 자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 왕권의식으로 상징되는 지배체제에 대항하는 예언자 전통에 대한 강조 등은 우리 시대의 교회가 귀기울여야 할 메시지이며 그 적실성은 앞으로 세대를 거듭해갈수록 더욱 커져갈 것이라 생각한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부르거만의 대표작으로서, 이젠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만한 책이다. 1978년에 발표된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브루거만 특유의 신학적 관심과 강조점들이 이 책 안에 이미 완성도 높게 표현되어 있음에 놀라게 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예언자적 전통’이라는 렌즈를 통해 모세, 예레미야, 제2이사야, 예수를 보는 방식은 내가 이전에 읽었던 여러 책들의 메시지와 오버랩되었는데, 그만큼 이 책이 이후 학자들과 목회자들, 운동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지대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가령, 랍 벨의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를 보면, 책 전체에 흐르는 부르거만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브루거만을 읽어감에 있어서 개인적인 고민은 저자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열렬히 동의하지만, 그의 학문적 방법론과 나의 성경읽기 사이에 나타나는 긴장을 어떻게 해소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예컨대, 그의 중요한 강조점 중 하나인 ‘왕권의식과 예언자전통 간의 충돌’을 제시함에 있어서, 그는 구약 속의 군주제(특히 솔로몬)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솔로몬은 이스라엘 안에 나타난 전제주의적 왕권의식의 상징과 같은 인물로서 바로와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있는 인물이다. 솔로몬시대에 전제정치와 압제가 출현했음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음을 나도 인정하지만 브루거만의 해석은 지나치게 솔로몬과 그의 왕정(그 함의는 다윗왕조로까지 확대됨)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복음주의자로서 나는 성서 안에 나타나는 다양한 전승들(왕, 제사장, 예언자, 민중 등)간의 긴장과 충돌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가 비판적으로 배제되지 않고 건전하게 통합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싶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접촉점을 잃지 않고 소통해가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만약 우리가 브루거만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브루거만처럼 변혁적이고 예언자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정의를 갈망하는 이 시대를 향해 대답할 수 있는 곳으로 교회를 준비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브루거만을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하고 살아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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