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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국가 - 무능한 국가와 그 희생자들
게리 하우겐 외 지음, 최요한 옮김 / 옐로브릭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은 국제인권단체인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의 대표이자, 국내엔 <정의를 위한 용기>라는 책으로 알려진 게리 하우겐입니다. 크리스처니티투데이는 게리 하우겐을 우리 시대의 아브라함 카이퍼로 소개했다고도 합니다.
이 책은 극빈국, 개도국의 힘없는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폭력이 얼마나 참혹하며 빈번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 국민들을 그러한 잔인한 폭력으로부터 전혀 보호해줄 수 없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또 하나의 가해자이기도 한, 철저히 무능하고 부패한 그 나라들의 형사사법체계를 고발합니다.
성폭행, 살인, 인신매매, 채무노예, 토지수탈 등등 이 책이 알려주는 세계 곳곳의 폭력의 실상은 믿을 수 없이 참혹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혹시나 편견이 생길까 하여 나라 이름은 일부러 생략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등하교길에 수많은 여학생들이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빈번한지 여학생들이 학교가기를 두려워해서, 이 나라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이 나라에 이렇게까지 성폭행이 만연한 이유는 성범죄기소율과 유죄판결비율이 너무나 낮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성폭력이 만연한 가장 큰 요인은 가해자들은 자신이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국제구호기관들이 이 나라 교육제도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성폭력이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 나라 여성들의 교육수준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돈이 있으면 강간,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한 여아가 성폭행 후 살해되어 길거리에 버려졌습니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찾아간 한 저택에서 여아의 피묻은 옷이 발견되었고 역시 여아의 피가 묻은 매트리스도 발견되었습니다. 여아를 부검한 결과 그 저택 주인 아들의 체액이 발견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 용의자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러나 저택 주인이 경찰을 매수하자 이후 상황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피해자의 피묻은 옷이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또한 경찰은 체액 샘플을 (의도적으로) 분실한 후 재검을 합니다. 그리고 기존 결과를 뒤엎고 시신에서 용의자의 체액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합니다. 경찰이 압수했던 피묻은 매트리스는 피묻은 부분만 괴상망측하게 잘려나간 반쪽자리 매트리스가 되어있습니다. 매수된 경찰이 모든 증거를 차례로 제거한 후, 결국 용의자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혐의는 다른 힘없고 무고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워졌습니다.
또 다른 나라의 경우, 법조인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재판진행속도는 믿을 수 없이 느린데 국가는 '판결선고 전 구금'을 남발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고작 경범죄를 저지르고도 재판을 기다리며 몇 년씩 구금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서류라도 분실되는 날에는 그가 좁은 감옥에서 몇 년을 썩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잊혀지므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할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서류분실로 인해 6년간 재판없이 구금되어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가 예로 든 이 이야기들은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읽기가 쉽지는 않은 책입니다.)
수많은 국제기관과 NGO들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나라들에서 활동합니다. 이들의 활동은 극빈국의 교육, 위생, 의료, 교통, 통신, 금융 등 물적, 인적 인프라를 형성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과, 빈곤을 겪는 사람들을 향해 직접적인 구호활동을 펴는 것, 크게 이 둘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그와 같은 활동들이 가치있는 일이지만, 이들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범죄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공공사법제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그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Locust effect" 즉, 메뚜기 효과입니다. 공공사법제도가 무너진 국가에서의 일상의 폭력은 마치 한 해동안 열심히 지은 농사를 하루아침에 먹어치우는 메뚜기 떼와 같아서, 공공사법제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입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많은 책들이 있을 경우 그 중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 저에게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다른 책들과 비슷한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두드러지게 잘 쓴 책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책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어야 한다’가 그것입니다.
빈곤의 문제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이 책은 극빈국과 개도국의 빈곤의 문제를 종식시키려면 그 나라의 형사사법제도를 바로잡는데에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는 다소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메시지의 희소성과 차별성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내용이 새로울 뿐만 아니라 매우 잘 쓴 책이기도 합니다.
‘실태 고발’은 솔직하고 적나라하며, ‘원인 진단’은 예리합니다. 이미 변화가 일어난 좋은 예를 포함하고 있는 ‘대안 제시’는 구체적이며 설득력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의 ‘참여를 촉구’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의 생각과 실천을 변화시키는 책을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좋은 모범을 보는 듯 했습니다.
법조계, 국제정치, NGO운동 관심자, 그리고 세계빈곤을 종식시키는데 기도와 실천으로 동참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열렬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