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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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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녹턴
 
 
 
 바로 전에 리뷰를 했던, ‘남아 있는 나날’이 나라는 개인적인 사람에 대한 통찰이 주로 이루어졌다면, ‘녹턴’은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회상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어떠한 일이 있을 때, 특히 힘든 일이 닥쳐 오면 그 일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나는 ‘왜 나에게만 이러한 시련이 주어지나,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며 굉장히 부정적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뭐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내가 더 배워나가야 할 것들을 끄집어 내려고 노력하면서 많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는 하지만, 하여튼 그랬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삶이 너무나도 힘에 겨워서 나는 물론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싫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그것에 꼭 나에게만 특별히 어렵게 다가오는 것일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의 삶은 생각보다 비슷비슷하게 흘러간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맞기 때문에 내가 겪은 일이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일은 맞다. 하지만, 그 일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때론 보편적인 갈등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일인 것이다. 참, 재미난 일이랄까.
  
 
 녹턴을 보면, 나 자신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남아 있는 나날’보다 더 감성적이며 쉽게 다가오면서 좀 더 완성된 느낌인 이 ‘녹턴’. 가슴이 먹먹하다기 보다는 굉장히 혼잡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의 희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잔잔한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녹턴’의 미학이다. 사실, 아직 무언가 내 삶을 논하기에는 어린 감이 없지 않은 나이이기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본 것이 내가 만약 지금 이 책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가 되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더랬다. 그런데, 쉽게 어떠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굉장히 슬프고 추억을 회상하는 아련함과 그러면서도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행복을 기억하며 빙그레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저 멀리 들려오는 조용한 음악소리. ‘녹턴’ 자체가 음악과 음악인을 중심으로 한 삶을 그리다 보니 나 역시 감화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어떠한 기억을 추억할 때, 우리는 꼭 음악을 함께 회상하며 그 일을 생각하곤 한다. 그것이 물소리이든 바람소리이든 풍경소리이든, 그것은 곧 자연의 음악이 아니던가! 그리고 살아가면서 정말 인상 깊게 들었던 곡 하나하나가 바로 회상의 근거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존 레논의 ‘Imagine’ 이라는 곡이 참으로 인상 깊었었다. 학창 시절 단 한 번 들었던 곡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굉장히 힘든 일이 있거나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보게 될 때, 이 노래를 생각하면서 나의 이상을 찾아가면서 용기를 얻곤 한다. 음악. 음악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무언가를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마법의 소리다. 누군가는 별로라고 말하는 것도 나에게는 좋기도 한 굉장히 주관적인,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각자의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음악. 그 음악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그리고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다시 본래 내용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녹턴이란 책은 참 인간이란 존재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말했었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고 지금 말하려는 인간이 살아가는 길에 대한 것도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 나는 그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겪었던 일이 있는 지라,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 때문에 이혼을 선택해야 했던 한물간 크루너 가수 토니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혼을 전제로 대스타가 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해야 했던 섹소포니스트 스티브 역시 어느 정도는 공간이 갔다. 특히 토니의 이야기, 사랑했기 때문에 아내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시간이 담아있는 미련할 정도로 정직한 세레나데는 내 마음을 움직이고도 남았다. 사실, 이렇게 해서 그의 아내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쭉 부부로 남았다면 이러한 감정을 맛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를 알면서도 그 결과가 얼마나 자신에게 힘들고 두렵고 아픈지를 알면서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어리석을 정도로 처절한 삶에 대한 찬사에 나는 그렇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지 그렇게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모습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충분히 희극적인 요소를 넣으면서 또 인간이 얼마나 재미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그려주는 것이 ‘녹턴’이라고 생각된다. 때때로 사람들이 너무나도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다.-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굉장히 짧은 삶을 살면서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것도, 어떠한 욕망에 휘둘려져서 나를 찾지 못하고 그렇게 남들이 좋다는 것에만 죽도록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 지 그 의미를 찾지 않는 이들을 보게 되면서 그렇게 사람이라는 존재에 회의적이면서도 슬프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나 역시도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말이다. 끝이 있어 아름다울 수 있는 것, 필멸하기에 더욱더 존재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가에 대한 이상적인 생각을 꿈꾸면서 그렇게 인간을 다시 보고 다시 느끼고 다시 그리게 되었다.
  
 
 어느 책이든 결국에는 인간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러면서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 책은 그리 없을 거라 생각된다. ‘녹턴’은 매우 성숙한 책이다. 아마도 매 년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이고 내가 처해 있는 어떠한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제각각 다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찾아내고, 나만의 특별한 삶 속에서 우리 모두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녹턴’이다. 이 책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고자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자 나의 인생이고, 주관적은 의미이자 우리 모두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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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남아 있는 나날
  
 
 
  
 솔직하게 밝히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생의 끝과 시작을 한번에 맛본 듯한 감정을 맛보았다. 심장이 쥐어뜯기는 허무함과 그런데도 억지로라도 내 삶의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인생의 여정이 그려졌다. 그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삶의 이유에 대해 이 짧은 생을 살면서도 끝없이 되묻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고 나 자신의 의미와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여행이 이 안에서 그려졌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좋은 집사의 모습, 완성된 집사의 모습, 존경 받을 만한 집사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강조하는 스티븐스. 처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그가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직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감화되어 집사란 직업을 통해 그가 얼마나 충직하고 방황하지 않은 인생에 대해 알 수 있다. 그가 일하고 그의 모든 것을 바친 달링턴 홀.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달링턴 홀의 주인이었던 달링턴 경이 나치의 추종자임이 밝혀지면서 스티븐스의 심정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지극히 목회적인 영국의 자연 속에서 포드 차와 양복을 걸치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의 잃어버린 사랑이었던 켄턴 양을 찾아나서는 길에서 스티븐스 그는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그러나 모시던 주인이 누구인지가 밝혀지면서부터 왠지 모를 서글픔과 허무감이 나 자신을 감싸고 돈다. 여행 도중 달링턴 홀과 관련하여 달링턴 경에 관한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 앞에 스티븐스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에 대하여, 자신이 충직하게 모시는 주인에 대한 신뢰와 명분을 스스로 저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 누가 감히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젊었던 때 달링턴 경을 모시던 스티븐스에게 그것은 그의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를 지탱하는 것, 그를 가장 그답게 하는 것 말이다. 시간이 지나 그의 모든 것들이 진실로 인하여 부정되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신념마저 그 자신이 저버리는 순간 그러면서도 나는 잘 했다고 말하는 그 때가 가장 아련한 슬픔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자신이 옳았다며 살아왔던 인생, 아버지의 죽음도 사랑하는 사람을 애써 마음 속에 가라앉히고 살아간 인생 속에서 결국 그는 조금씩 깨닫고 만다.
  
 
 그 자신은 귀족으로 착각되어도 부정하지 않고 명문의 집사로서 살아왔지만 켄턴 양과의 대화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인생에서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서 그는 과거에 사로잡혔던 자신의 모습을 그제서야 직시하게 된다.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책의 제목, 그것은 바로 여행에서 돌아온 스티븐스의 남아있는 나날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아닐까?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구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들보다 약하고 그 생 역시 그리 길지 않은 인간에게 있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때로는 숙명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때로는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그 것은 하나씩 고쳐나가면 될 것.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나의 남아있는 나날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떠한 것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직 남아있는 희망 속에서 나의 소망을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
  
 
 과거에 사로잡힌 삶. 이렇게 말하면 막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삶은 길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고. 옳지 않은 것에 대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은 좋다. 그것은 나의 미래에 대하여 충분한 양분이 되어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과거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시간이 어디에 있을까? 얼어붙은 대지의 거미줄처럼 얽혀드는 과거를 떨쳐내지 못한 삶. 그것은 트라우마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성격의 것이다. 트라우마가 상처와 관련되어 있다면 과거의 미련은 트라우마 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잡고만 있는 것, 항상 반성하는 것이지만 그런 일이 부지기수다. 좀 더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고 싶은데도 나 스스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야 하나.
  
 
 먼 미래에서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내 인생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스스로가 판단하게 될 때, 나는 내가 잘 살아왔다고 충분히 꽤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까? 스티븐스의 삶을 내가 엿보았을 때 느낀 그 애잔함과 삶에 대한 허무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나의 삶을 엿볼 때 어떻게 느낄까? 내가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내가 지금 거짓된 삶을 살아왔다면 그것을 깰 용기를 가지고 좀 더 나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살아가야겠다는 것,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다.
 
 
 시간은 흐르고 가랑비에 옷 젖은 줄 모르듯 스티븐스의 삶이 나를 조금씩 적셔 나간다.
 그 애잔함에 관하여 나의 삶의 관하여, 나의 남아있는 나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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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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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욕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전쟁은 사람을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하고

가난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그리고 그 무엇도 꿈꾸지 못하게 만든다.


‘태양은 노랗게 떠오른다’는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되는 때, 나이지리아와 비아프라 간의 내전을 그리고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석유매장국이자 수출국이다. 거기에다가 그들이 만든 영화산업 시장을 놀리우드라고 불릴 정도로- 현재 세계 영화 시장을 보면 미국의 할리우드, 인도의 발리우드 나이지리아의 놀리우드를 세계 3대 영화시장이라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놀리우드는 가장 큰 영화시장 중 하나이다.- 굉장히 큰 영화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은 결국 그네들 안의 형제들의 피와 살을 밟고 올라 온 흉터뿐인 훈장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하긴 그게 어디 나이지리아뿐일까? 제국주의의 논리에 의해 우리나라는 물론 피지배 세력에 속한 모든 국가들이 그리고 부족들이 겪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살고 싶은 그 소망을 모르는 척 하는 주변 국가 속에서 독립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갈망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우물을 파는듯한 열명과 닮아있었을 것이다. 형제와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밖에 없었던 그 날들의 참상. 언젠가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를 본 적이 있다. 자로 잰 듯한 국경선을 보며, 그것이 마치 갈기갈기 찢겨나간 시체를 어거지로 이어 꼬맨 듯 한 느낌이 든 것은 과연 나뿐일까? 인류가 가장 먼저 나타난 생명의 땅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그 참혹함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비아프라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내전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고, 그들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그들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고 울부짖는 지식인이 있음을 알지 못했고, 그들의 그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무지에 대해서도 나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케두’라는 인사말이 익숙해질 무렵, 이보족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고 그 안에서 야기된 인간의 잔혹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두의 잘못이었다. 식민지 세력이었던 영국과 손을 잡은 이보족-물론, 소수였지만.-. 그들은 그 대가로 짧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나 나이지리아가 태어나게 될 때에도 계속 된 가난은 비이보족의 이보족에 대한 분노감을 야기하고 결국 이보족은 단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 마치 ‘홀로코스터’처럼 그리고 미국의 정복정책 때 인디언들이 살해된 것처럼 그렇게 무참히 살해된다. 그들에게 남겨진 삶의 이유는 모조리 짓밟히고 만 채, 그렇게 목이 잘려나가고 배가 갈리면서 이유 없이 상실과 광기 속에 죽어 나가야했다.


처음, 그들의 싸움의 중심에는 영국이 있었다. 식민지 건설로 인한 약탈에 가까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자국의 국민의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영국인들. 그렇게 나이지리아는 점점 궁핍해져갔고, 그것은 그들의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었다. 융통성 없고 미신적인 어머니였지만,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하고 있어도 그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고, 단지 거리에 나가는 것도 물품을 사는 것도 아는 사람과 서신을 주고받는 것도 목숨을 담보로 조심히 이루어져야 했다. 누군가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군인으로 끌려 가 자국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고 목숨을 바쳐야 했다. 그렇게 누구에도 자유도 없던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비아프라의 이야기는 세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일꾼으로 고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영어와 지식을 배워 작가가 되는 으그우, 영국에서 유학한 지식인 올란나, 그리고 영국인 리처드다. 이 셋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살아가는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었으나, 인간관계가 얽히면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질투하고 배신을 하고 화해를 하며 갈등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전쟁의 참혹함이었다. 올란나는 자신의 연인인 오데니그보를 용서할 수 있었고, 리처드는 카이네네를 끝까지 사랑할 수 밖에 없었으며 으그우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진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들의 짧은 투쟁은 매우 쉽게 마무리 된다. 비아프라가 다시 나이지리아와 합쳐지게 된 것이다. 허망하고 어딘가에 풀 수 없는 거친 메마름에 그들은 어찌할 줄 모른다. 그들 스스로가 서로를 용서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용서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덮고 그들이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좀 더 나은 식량이나 좀 더 좋은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온기였다. 그 무기력함 속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사람들은 좀 더 힘을 내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무거운 결심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텁텁하고 까슬한 입안을 혀로 적시며 가뭄 든 옆 사람의 손을 잡는다.


욕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전쟁은 사람을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하고

가난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그리고 그 무엇도 꿈꾸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내 옆의 사람을 보며 미래를 꿈꾸고

그 소망을 나를 달리게 한다.


오늘이 너무 힘겹고 답답하고 가여울지라도

내일은 다시 해가 떠오른다.

태양은 그 언젠가 처럼 노랗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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