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욕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전쟁은 사람을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하고
가난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그리고 그 무엇도 꿈꾸지 못하게 만든다.
‘태양은 노랗게 떠오른다’는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되는 때, 나이지리아와 비아프라 간의 내전을 그리고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석유매장국이자 수출국이다. 거기에다가 그들이 만든 영화산업 시장을 놀리우드라고 불릴 정도로- 현재 세계 영화 시장을 보면 미국의 할리우드, 인도의 발리우드 나이지리아의 놀리우드를 세계 3대 영화시장이라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놀리우드는 가장 큰 영화시장 중 하나이다.- 굉장히 큰 영화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은 결국 그네들 안의 형제들의 피와 살을 밟고 올라 온 흉터뿐인 훈장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하긴 그게 어디 나이지리아뿐일까? 제국주의의 논리에 의해 우리나라는 물론 피지배 세력에 속한 모든 국가들이 그리고 부족들이 겪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살고 싶은 그 소망을 모르는 척 하는 주변 국가 속에서 독립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갈망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우물을 파는듯한 열명과 닮아있었을 것이다. 형제와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밖에 없었던 그 날들의 참상. 언젠가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를 본 적이 있다. 자로 잰 듯한 국경선을 보며, 그것이 마치 갈기갈기 찢겨나간 시체를 어거지로 이어 꼬맨 듯 한 느낌이 든 것은 과연 나뿐일까? 인류가 가장 먼저 나타난 생명의 땅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그 참혹함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비아프라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내전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고, 그들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그들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고 울부짖는 지식인이 있음을 알지 못했고, 그들의 그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무지에 대해서도 나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케두’라는 인사말이 익숙해질 무렵, 이보족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고 그 안에서 야기된 인간의 잔혹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두의 잘못이었다. 식민지 세력이었던 영국과 손을 잡은 이보족-물론, 소수였지만.-. 그들은 그 대가로 짧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나 나이지리아가 태어나게 될 때에도 계속 된 가난은 비이보족의 이보족에 대한 분노감을 야기하고 결국 이보족은 단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 마치 ‘홀로코스터’처럼 그리고 미국의 정복정책 때 인디언들이 살해된 것처럼 그렇게 무참히 살해된다. 그들에게 남겨진 삶의 이유는 모조리 짓밟히고 만 채, 그렇게 목이 잘려나가고 배가 갈리면서 이유 없이 상실과 광기 속에 죽어 나가야했다.
처음, 그들의 싸움의 중심에는 영국이 있었다. 식민지 건설로 인한 약탈에 가까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자국의 국민의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영국인들. 그렇게 나이지리아는 점점 궁핍해져갔고, 그것은 그들의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었다. 융통성 없고 미신적인 어머니였지만,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하고 있어도 그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고, 단지 거리에 나가는 것도 물품을 사는 것도 아는 사람과 서신을 주고받는 것도 목숨을 담보로 조심히 이루어져야 했다. 누군가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군인으로 끌려 가 자국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고 목숨을 바쳐야 했다. 그렇게 누구에도 자유도 없던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비아프라의 이야기는 세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일꾼으로 고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영어와 지식을 배워 작가가 되는 으그우, 영국에서 유학한 지식인 올란나, 그리고 영국인 리처드다. 이 셋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살아가는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었으나, 인간관계가 얽히면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질투하고 배신을 하고 화해를 하며 갈등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전쟁의 참혹함이었다. 올란나는 자신의 연인인 오데니그보를 용서할 수 있었고, 리처드는 카이네네를 끝까지 사랑할 수 밖에 없었으며 으그우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진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들의 짧은 투쟁은 매우 쉽게 마무리 된다. 비아프라가 다시 나이지리아와 합쳐지게 된 것이다. 허망하고 어딘가에 풀 수 없는 거친 메마름에 그들은 어찌할 줄 모른다. 그들 스스로가 서로를 용서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용서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덮고 그들이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좀 더 나은 식량이나 좀 더 좋은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온기였다. 그 무기력함 속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사람들은 좀 더 힘을 내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무거운 결심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텁텁하고 까슬한 입안을 혀로 적시며 가뭄 든 옆 사람의 손을 잡는다.
욕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전쟁은 사람을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하고
가난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그리고 그 무엇도 꿈꾸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내 옆의 사람을 보며 미래를 꿈꾸고
그 소망을 나를 달리게 한다.
오늘이 너무 힘겹고 답답하고 가여울지라도
내일은 다시 해가 떠오른다.
태양은 그 언젠가 처럼 노랗게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