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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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형상들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기후학적이며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또한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의 우주관과 닮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 그 달콤한 과즙에 묻어 나오는 낯선 것에 대한 경계와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그것을 우리는 백설공주가 선택한 마녀의 사과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 향긋한 풋내에 결국을 입을 맞춘다. 한 입 깨어 물며 달콤함을 음미하며 그 맛을 기억하고 그 다음을 베어 물면 이상하게도 그 때의 기대만큼의 달콤함이 입 안을 메우지 못했을 때, 그 때의 상실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새빨간 유혹 속 그것에 넘어가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그 언젠가 후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하얀 속살과 함께 맛본 후, 그 나중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낯선 것이 다가왔을 때 땅이 무너져 내리듯 통곡하여도 나는 그 유혹에 퐁당 마음을 담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 레오 리벤슈타인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자신의 연인과 함께 하는 아파트로 들어온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그 곳에는 자신의 아내 레마와 객관적으로 똑 같은 여인이 있었지만, 자신의 육감이 말한다. 저 여자는 자신의 레마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녀가 레마가 아닐까? 그와 함께 했던 그 여인이 아닌걸까? 그것에 대한 답은 이렇다. 그녀가 정말 레마가 맞든 아니든 간에 레오와 그 가짜 레마는 계속해서 함께 살 것이고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보고 있을 것이란 거다.


 
 책 안에서는 레오의 클라이언트인 하비가 나오며, 그가 속해 있다고 말하는 왕립기상협회의 일을 들먹이며, 자신이 관찰하고 있는 도시들을 포함한 세계의 기상 현상과 그로 인한 영향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러한 왕립기상협회의 일을 레오 역시 츠비를 통해 하게 되면서 그들은 모두 불안정한 상황과 마주한다. 진짜 레마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레오. 그는 레마의 어머니를 찾아가 그녀의 흔적을 보지만, 그가 생각했던 레마와 그녀의 어머니가 말하는 레마가 다르고, 도대체 진짜 레마는 어디로 갔는지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불안정한 기상 환경만큼, 사람의 마음도 불안정한걸까? 레오와 하비가 겪는 일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 이론에 근거한 사례일 수도 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붕괴시키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이론. 폭풍우가 내리고 깎여진 산처럼 메마르면서도 봄날의 산들바람이 귓가를 스치듯 또한 포근한 사랑. 기억 속의 그녀와 내가 생각하는 그녀, 그리고 서서히 양파 껍데기가 벗겨지듯 하나씩 자신의 숨겨져 있는 속살을 내보이는 그녀. 그들은 같은 사람일 수도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레오가 아파트로 들어와 레마를 가짜 레마로 인식하는 순간, 그 레마는 레오는 유일하고 찬란했던 사랑이 다시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온전한 그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도 불완전 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사랑했던 레마를 찾아 그렇게 미친듯히 헤매고, 광인이 되면서 괴로워하고 자신을 속이고 죽이며 그렇게 레마를 사랑했던 것이겠지.


 
 그러나 말하고 싶다. 그만큼 뒤죽박죽에 여러 색이 섞여서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만큼 엉켜있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앞에 있는 사람을 우정이라 말하고 애정이라 칭하며 사랑이라 속삭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가 어찌되었든 간에 흔들리는 전깃줄 위에서 새들은 노래하고 나는 설레인다. 아침 그리고 황혼이 오고 비가 내리는 새벽녘 그 사람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시간과 나중에 남겨질 고통마저도 감미로울 우주를 기다리는 한 사람의 레오이자 하비이며 레마인 사람이 있다.



 더 늦기 전에, 그리고 더 늦어서라도 그 모든 것을 쪼로록 병에서 떨어지는 붉은빛의 와인의 혀끝에 남겨진 짜릿하고 달콤한 상흔을 모두 담아 함께 놓여진 크라페와 함께 이야기하는 그런 사랑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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