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민음사 모던 클래식 6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핏빛 자오선


세상에 남은 진실된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일 것이다.
코맥 맥카시의 ‘핏빛 자오선’은 이름도 채 나오지 않는 한 소년의 어렸을 때부터 소년에서 청년으로 바뀐 그 시점까지의 일생을 격정적이면서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옳지 않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소년의 일상에서 필요 없는 것이었다. 반인륜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손가락질 할 것도, 왜 그런 길을 걸어야 했는지를 묻는 것도 무의미하다. 단지, 소년은 죽음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책을 읽고 소년이 길을 나서는 여정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그저 거친 황야와 거친 메마름 땀내나는 버석한 인생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소설의 배경이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는(사실상 개척이 아닌, 침범이지만.) 시기였기에 많은 피가 흐르고,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가는 과정을 그릴 것이라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그 막연함이 얼마나 안일하였는지는 이 글을 읽어가면서 서서히 깨달아갔다. 어느 것도 진실된 것 없이 내일의, 아니 당장 오늘 저녁의 자신의 모습이 내가 죽인 인디언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예감과 또 그러면서도 심장이 아직 뛰고 있기에 계속 살아가고 싶은 소년의 모습은 조금씩 시간이 갈수록 하나의 인격체이자 전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영글어 간다. 그 과정은 잔인하지만, 사람이 성인이 되듯,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이며 결국에는 주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공허함과 닮아있다. 
 


시대의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 인간의 존엄? 아니, 책은 그런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키워드라고 읽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핏빛 자오선이 주는 엄숙함에 가까운 전율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결국에 궁극적으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이자 도착지, 죽음이다. 글을 읽으며,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그만큼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그 스스로에게는 가장 특별한 것. 그러면서 어떻게 정의 릴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도 그 심판이 돌아올 것이라는 진실이다. 그 죽음을 가지고, 소년을 말한다. 
 


소년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이기도 하고, 단지 그 때의 한 평범한 인물일 수도 있으며 지금의 나일 수도 있다. 그는 순수이기엔 더럽혀졌고, 순수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어수룩하다. 그렇기에 가장 깨끗하게 진실을 마주보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엇을 마음에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한 번 숨쉬기도 힘들고, 내가 인간으로 취급 받지도 않으며, 나 또한 인간성을 잃었을 때, 우리가 꿈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답은 어디에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목덜미를 스치듯 입맞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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