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세계 - 시공을 넘어 공명하는 영혼의 행방
에노모토 마사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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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다리던 애니메이션 방송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당시의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상상력과 감정을 풍부하게 자극하는 중요한 매체였습니다. ' 도라에몽' , ' 포켓몬스터 ', ' 세일러문 ', ' 드래곤볼 '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들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했고, 그 속에서 우리는 꿈과 희망을 키웠습니다. 이제 성인이 된 우리는 그 시절의 애니메이션을 다시 돌아보며 추억 이상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특히 좋아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인 신카이마코토의 세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에니메이션을 참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에노모토 마사키의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였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감성과 깊이 공명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작품들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서정시와 같습니다. 그의 서사는 느릿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며, 특히 계절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아련함, 그리움, 외로움, 설렘,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들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그려냅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내레이션은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길잡이가 되어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듭니다. 물론, 때로는 이러한 감정의 과잉이 스토리라인의 개연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애잔한 내레이션은 그 자체로 저의 기억속에 하나의 예술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잘 익은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향을 내뿜는 정서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관객의 마음속에 잠재된 아련한 기억과 감정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신카이 감독님의 작품들이 대부분 일상을 주제로 삼고 현실생활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나 <날씨의 아이>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세계에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 소녀와 같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경험을 마주하며 성장통을 겪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품의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지만, 동시에 관객에게 슬픔을 안기기도 합니다. 특히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호불호로 나뉠 수 있지만, 저는 이러한 비극성이야 말로 현실 감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 항상 행복으로만 채워질 수 없듯이, 그의 작품은 현실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신카이 감독님의 작품에서 눈, 비, 벚꽃 등이 흩날리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 개념인 '모노노아 와레’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모노노아와레'는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통해 느끼는 덧없음과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 하는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언어의 정원>,<초속 5센티미터>, 날씨의 아이> 등에서 이러한 자연 현상은 인물들의 내면 풍경과 맞 닿아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흩날리는 벚꽃잎, 떨어지는 빗방울, 쌓이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인물들의 쓸쓸함, 적막함, 외로움,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슬프기 때문에 더욱 애잔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감정들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감독님은 이러한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찰나의 정서와 회한을 담아내며, 비 개인 저녁 강물에 비친 조명이나 창문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줄기 같은 세밀한 묘사를 통해 관객이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도록 이끕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은 '빛의 작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빛과 그 효과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묘사를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 속 배경은 한 폭의 인상파 회화를 보는 듯하며, 특히 모네의 화풍과 닮았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쉽게 스쳐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들을 지극히 섬세하게 그려내고, 사물과 그것을 비추는 빛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서정적인 느낌을 극대화합니다. 한 작품당 1만 장 이상의 사진을 촬영하며 배경을 묘사한다는 사실은 그의 완벽주의와 예술적 열정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초속 5센티미터>는 신카이 감독님의 감수성이 폭발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흩날리는 벚꽃의 순수함, 눈이 내리는 표현, 그리 고 속도감 있는 장면들은 각기 다른 디테일로 관객의 시각적 감각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은 <언어의 정원>에서 더욱 실제 같은 배경으로 발전하여, 나무의 아른거림, 창문에 맺힌 빗방울, 비 온 뒤의 골목 냄새, 청량한 바람 같은 오감을 자극하는 표 현들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깊이 끌어들입니다. 어쩌면 너무 섬세해서 미쳐버린 듯한 그의 작화는 우리를 현실을 넘어선 다른 세계 로 데려가는 마법과도 같습니다.

신카이 감독님은 또한 작품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관객과의 소통이 제작의 근본적인 동기임 이야기합니다. 그는 각본 회의에서 프로듀서와 스태프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최초의 관객과 소통하는 일로 여깁니다. 대중과의 교감을 통 해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진정한 이야기꾼임을 보여줍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영감을 받아 소녀의 성장 스토리를 그려내고, 스즈메가 다양한 여성들과 만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것 또한,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작품들은 느릿하면서도 서정적인 서사, 현실적인 감성 을 담은 인물들, 그리고 자연과 빛을 활용한 압도적인 영상미가 어우러져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관객의 내면에 깊이 잠재된 그리움과 아련함을 일깨우며 삶의 덧없음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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