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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의 과학적 원리와 구조 - 한 권으로 끝내는 항공우주과학
데이비드 베이커 지음, 엄성수 옮김 / 하이픈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을 부러워하고, 밤하늘의 별들에게 소망을 빌며,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에 이르러,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중력우물에서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그 열쇠가 바로 로켓이었다. 데이비드 베이커의 <로켓의 과학적 원리와 구조>를 통해 접하게 되는 로켓의 세계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과학적 사고의 승리를 보여주는 파노라마며, 동시에 우리나라가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책의 크기에 놀랐고, 그 내용의 명확함과 풍부한 자료와 사진들에 두번 놀라게 된다. 어린시절 물 로켓을 만들어 날리곤 했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로켓의 작동 원리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그 핵심이다. 연료를 연소시켜 고온고압의 가스를 분사하면, 그 반작용으로 로켓이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이토록 기본적인 물리 법칙이 인류를 우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과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원리는 단순해도 실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속 11.2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정교한 제어 시스템,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소재와 구조 가 필요했다. 로켓 과학은 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종합 예술이었다. 치올콥스키의 로켓 방정식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고다드의 액체 연료 로켓은 실용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폰 브라운의 V-2는 비극적 맥락에서 탄생했지만, 현대 로켓 기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사는 종종 이런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전쟁의 도구로 개발된 기술이 평화로운 탐험의 수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20세기 후반 인류 문명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했을 때,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서둘러 8K72 모델을 개발했지만 9회 발사 중 6회가 실패하며 굴욕을 맛보았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미국은 아틀라스 로켓 시리즈를 통해 점진적으로 기술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새턴 V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3500톤에 가까운 추력을 자랑하는 이 거대한 로켓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안착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턴V를 능가하는 로켓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시의 기술적 성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폭발과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할 때 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 다음 시도에 반영했다. 이런 반복적 개선 과정이야말로 과학 기술 발전의 핵심이다.
2021년 10월 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비록 위성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정확히 안착시키지는 못했지만, 이는 한국 우주 기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 순간이었다. 12년간의 연구 개발 끝에 이룬 성과였고, 한국을 세계 7번째 독자 위성 발사 능력 보유국 대열에 올려놓는 성취였다. 누리호의 의미는 기술적 성공을 넘어, 한국이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위성 발사 서비스, 우주 탐사, 우주 자원 개발 등 미래 우주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선진국들은 이미 재사용 로켓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고, 화성 탐사와 달 기지 건설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21세기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다. 과거 국가 주도의 우주 개발에서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상업적 우주 산업으로 패러다임 이 변화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팰컨9과 스타심,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 버진 갤럭틱의 우주 관광 등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위성 인터넷, 지구 관측, 우주 제조업, 소행성 채굴 등 새로운 우주 사업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우주 경제 규모가 2040년 까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반도체 시장보다 큰 규모다. 한국이 이런 거대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로켓 기술 뿐만 아니라 위성 제조, 우주 전자 부품, 우주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이미 강력한 IT 기술과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우주 산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로켓은 인류의 꿈과 희망을 담은 상징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도구다. 치올콥스키가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지만, 인류는 영원히 요람에 머물 수는 없다"고 말했듯이, 우주로의 진출은 인류 문명 발전의 필연적 단계다. 한국은 이제 그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다. 누리호의 성공은 우리가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 개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 그리고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일관된 정책이 뒷받침될 때, 한국은 우주 경제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로켓의 원리와 로켓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간의 꿈은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었다. 오늘의 불가능이 내일의 당연함이 되는 것이 과학 기술의 힘이다. 한국의 우주 산업도 이런 믿음과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하늘을 향한 인류의 꿈은 계속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우리의 도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