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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때는 참 사회 문제에 대해서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몇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탄광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직업에 대한 르포... 그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1936년, 서른셋의 청년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지대로 향했을 때, 그는 자신의 중산층적 편견과 선입견을 짊어진 채 그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탄광 속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그의 모든 관념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렇게 1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오웰이 묘사한 탄광 속 풍경은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적 조건 속에서도 생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생존 자체가 얼마나 영웅적인 행위인지를 보여준다. 네 발로 기어가야 하는 좁은 갱도, 숨이 막히는 열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천장 아래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오웰의 진정한 발견은 탄광의 물리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뿌리 깊게 박힌 계급 의식이었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교육받은 그는 노동자들과 진정한 연대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인정해야 했다.오웰이 지적한 '냄새'의 문제는 계급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차별의 도구다. 상류층이 하층민을 향해 느끼는 혐오감의 근저에는 바로 이 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 기택에게서 맡는다고 말하는 '그 냄새'와 일치한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 냄새, 반지하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의 냄새'라고 불리는 그 모든 것들. 오웰이 1930년대에 지적한 이 문제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오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혐오감이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학습되고 강화되는 것임을 간파했다. 중산층인 자신도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 품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오웰이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계급 차별을 없애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중산층인 자신이 계급 차별 철페를 외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자신의 관념과 취향, 심지어 몸동작까지도 계급 차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 절망은 변화의 어려움에서,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동시에 오웰은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직접적인 설득이나 계몽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택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동물농장>, <1984>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오웰의 사회주의는 이상주의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 부족과 이론적 독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노동계급과 전혀 접촉해본 적 없는 상류층 사회주의자들이 보이는 위선과 무지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오웰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이 아니라 바로 이 두 가지 가치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하면서 오웰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의외로 실용적이다. 그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분법적 구분 대신 '약탈자'와 '피약탈자'라는 보다 구체적인 구분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들 간의 연대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웰이 1930년대 영국에서 목격한 계급 갈등의 양상은 2025년 한국 사회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명품, 아파트, 자동차, 교육, 문화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계급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줄 서기와 라인타기로 표현되는 권력에의 아부와 기회주의. 특히 주목할 점은 진정한 기득권층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상대적으로 하위 계층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구조다.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는 반면, 정작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진짜 기득권 층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오웰이 지적한 바로 그 문제다.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엉뚱한 대상을 향하도록 조작되고, 진정한 변화의 동력은 분산되고 소모된다. 결국 기존 질서는 더욱 공고해지고, 피착취자들은 서로 싸우며 지쳐간다.책을 읽고 나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고 변화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오웰이 90년 전에 지적한 문제들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과연 인간 사회에 진보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발견한다. 오웰 자신이 보여준 것처럼,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 사회적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라는 오웰의 구호는 단순해 보이지만, 바로 그 단순함에서 힘을 얻는다.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보다는 이 기본적인 가치들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연대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