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1잘 산다는 건 곧 잘 싸우는 것이다. 타인과의 입장 차이와 갈등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인 이상 그렇다.p.115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p.270 난 10대 때부터 요리사 수업의 길에 들어섰지만, 마지메 씨를 만나서 비로소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마지메 씨가 ‘기억이란 말이다’라고 하더군요. 향이나 맛이나 소리를 계기로 오래된 기억이 깨어날 때가 있잖아요, 그건 말하자면 모호한 채 잠들어 있던 것을 언어화하는 거라고 해요. 맛있는 요리를 먹었을 때 어떻게 맛을 언어화하여 기억해 둘 수 있을까. 요리사에게 중요한 능력이란 그런 거란 걸 사전 만들기에 몰두한 마지메 씨를 보고 깨달았답니다.
p.117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p.110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