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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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내가 좋아하는 이기호 작가님의 추천사가 있어 빨리 보고 싶었던 책! 가제본은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2장까지만 담겨 있다. ‘나’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주인공인 ‘나’가 ‘세계’ 그 자체라는 설정 자체가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갑자기 생긴 수레바퀴가 우리의 삶을 재단한다는 흥미롭지만 잔혹한 설정과 다양한 방면을 아우르는 작가의 지적, 과학적 논리의 탁월함이다.
선과 악이 충돌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이념, 정치, 경제, 윤리, 종교, 전지구적 불평등과 환경 문제 등까지 다방면으로 미묘한 지점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의 예리함과 치열함을 맛볼 수 있다.
80억 명의 삶으로 성큼 다가온 수레바퀴. 만질 수도 없고 과학으로도 검증할 수 없는 원판은 인간의 정수리에서 50센티가량 떠올라 있으며,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적색 영역이 많을수록 죽어서 지옥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 두 영역의 비율은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한다. 그나마 고맙게도 결과뿐만 아니라 정황과 동기를 감안하여 변하고 개인의 전적인 자유보다는 복지와 분배를 앞세운다.
그렇지만 역력히 노출되어 있는 수레바퀴의 청색 영역과 적색 영역의 수치를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인위적으로 나의 행동이 측정되는 상황에서 그 행동이 얼마만큼의 정의를 가지고 드러낸 행동인지 어떻게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누구나 생각해 볼 일이다.
운명에서 운(運)의 한자에는 수레, 수레바퀴의 뜻 ‘車’가 들어 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수레바퀴처럼 유동적이므로 예측 불가하지만, 이는 어쩌면 삶의 키는 우리가 어떻게 쥐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그 키의 주체가 외적인 것이라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p.26 질문의 초점이 ‘누구를 믿느냐’보다 ‘어떻게 처신하느냐’로 옮겨 간 순간부터 철학과 종교의 위치가 뒤집어졌다.
p.83 분명히 수레바퀴는 물질적인 욕망을 부풀리기만 하던 시대를 심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80억 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협상을 진행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겠지만, 애초에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만, 돈은 어떻게든 결론을 내준다는 것은 엄청난 강점이다.

이런 수레바퀴의 출현은 진짜 바퀴의 발명만큼이나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 수레바퀴의 정확한 규칙을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틈새를 비집고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가 나타났다. 인성 마케팅의 역풍, 청색 비중이 가장 중요시되는 분야가 형사소송이라는 불합리한 상황, 수레바퀴 추척 관리 애플리케이션 등장까지, 어쩌면 세계를 심판하기 위해 나타났던 수레바퀴조차 이용해 여전히 자신의 욕심을 불리는 사람들... 작가는 저변에 깔린 자본주의의 만행을 낱낱이 까발리는데 통쾌하기까지 하다. 페이크 르포 형식이지만 지적인 논리가 가득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세계를 바라보는 상식과 안목이 부쩍 커져 있을 것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나머지 4장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필력도 자못 기대된다. 세계의 부조리를 또 어떤 식으로 잘근잘근 씹어 소화시켰을지 빨리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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