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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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팬데믹 시대였던 2020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 코로나로 소외계층의 취약성은 더 여실히 드러났고 모두가 날서있는 자칫하면 서로를 벨 수 있는 간극의 시기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통찰력 있게 보여준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누군가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일은 나의 민낯을 직접 보는 불편함을 줄여주는 대리만족과 자기 성찰이 있으니깐.
공방을 운영하며 딸 은채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주부 ‘이나리’, 같은 동네 서하 엄마 수미와 아이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생각했지만 딸 서하를 키우는 양육 태도는 물론 수미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 환멸이 올라올 때가 많다. 아이들 줌 수업 도중 수미의 절제되지 못한 자기 파탄의 모습이 공개되어 버리는데...수미와 나리의 팽팽하며 아슬아슬한 감정 줄타기 같은 심리전, 세밀하고 농밀한 인물의 심리 묘사가 인중까지 땀나게 한다.

p.123 나리샘한텐 일초 수심이 있어요.
p.124 공황장애는 단절이 일어날 때 나타납니다. 내 안의 미해결된 감정과 단절될 때, 내가 나한테 벽을 쳐버릴 때, 몸으로 그게 나타나는 거예요.아마도 나리는 수미 너보다는 내가 더 바르게 살고 있다는 우위를 선점한 자만심이 깔려 있었던 걸까. 이런 자신의 모습에 30년의 잠복기를 거쳐 묵힌 역겨움이 발병한다. 나리의 일초 수심의 원인! 아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묵혀 버렸던 기억이 순간순간 수심으로 올라 왔던 거겠지.
여안에 살던 시절, 사과 농사를 짓던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이웃 만조 아줌마의 사랑으로 어린 시절이 여물어 가던...행복으로만 가득한 시간인 줄 알았는데 나리의 실수로 만조 아줌마의 삶이 금이 가 버렸다.

나리는 수미와 만조 아줌마의 사과밭을 찾아간다. 아니 수미를 꼭 데려가고 싶었다. 나의 역겨움의 실체를 까발려 나도 너와 같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p.253 내가 만조 아줌마를 곤경에 빠뜨린 뒤의 시간들을 어떻게든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만조 아줌마는 내가 여안을 떠나던 날도 아니고 내가 만조 아줌마와 함께 다니던 날도 아닌, 내가 아이를 낳은 날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었다.
만조 아줌마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흐트러뜨린 나리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잘 살길 축복하는 마음으로 살고 계셨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사회에서 소외된 딴산 마을 사람들과 연대하며 사과밭을 일구고 삶도 새롭게 일궈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p.282 만조 아줌마는 말했다. 이나리와 이나리 엄마한테 동시에 가지고 있던 어떤 연민에 대해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담고 있던 이나리라는 여자아이의 눈빛에 대해서, 쓰이고 또 쓰이던 마음에 대해서.
우리가 마주한다는 것은 단지 눈을 마주치는 것 이상의 눈빛 너머의 것을 읽는 것이리라.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워하여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 눈빛 너머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자세히 정성스레 읽어봐 주는 마음씀이 마주함의 진정한 의미라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만이 아닌 점점 각박해져 가는 사회에 만조 아줌마의 이런 마음은 너무 귀하고 귀하게 우리 모두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만조 아줌마의 사과밭에 온 뒤로 나리는 수미와 처음으로 제대로 눈을 마주친다. 서로가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자각한 순간 이해의 폭은 넓어진다.
외면했던 서로의 상처를 안쓰럽게 바라봐주고 그랬구나 그냥 수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 관계는 성숙하다.
사과를 닮은 만조 아줌마의 건강한 생명력 덕분에 나리도 수미도 상처를 회복할 것이다. 사과가 맛있게 영글어 가듯 마주한 우리 마음도 달콤하게 농익어 가길....농익은 달콤함이 끈적끈적해져 서로의 상처에 연고가 되길 바라본다.


#마주#최은미#창비#서평단#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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