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만화경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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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만화경’ 김유정
2019~2021년에 쓴 단편을 수록한 책! 10개의 오묘하고 몽환적 이야기, 읽고 나니 한바탕 판타지 모험을 하고 온 기분이다. 다양한 세계관이 탄탄하게 펼쳐져 있어 작가의 상상력의 깊이와 존재에 대한 통찰력이 깊음이 느껴진다. 그 깊음이 문장 하나하나에 진득하게 드러나 있어 어떤 이야기는 마음 시리게, 어떤 이야기는 환상 모험을 하듯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탁월한 흐름에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장미흔’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인간들 틈에 섞여 있어야 하는 흡혈귀 이야기. 코로나 감염 사태와 맞물려 너와 나의 관계, 그럼에도 삶이 지속되어야만 하는 이유 등을 곱씹게 한다. ‘나무왕관’은 피리 부는 사나이 동화 느낌으로 한 편의 잔혹한 그림 동화를 보는 듯하다. 독으로 바싹 타고 있는 입술을 가진 저주 받은 마을을 나무왕관이 집어 삼킨다. 오래전에 신들이 결정한 약속이 전해진 것이다.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로 매력적인 동화소설이다.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무리 기술 문명이 발달해 우주 시대가 오더라도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며 부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그러기에 사람들은 일말의 희망 가닥을 붙잡고자 타로점, 부적 등 미신에 기댄다. 운명처럼 만난 젠과 호림은 오염되고 파괴되어 인간이 살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된 지구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p.73 우주선이 못 가는 곳 없는 이런 시절이라 더 그렇다는 걸. 대체 어디서 왔는지 정체도 모를 것들이 많이 돌거든요.
p.82 그들이 시작된 자리에 보란 듯 당당하게 존재하고 싶었다. 힘닿는 한 있고 싶은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니까.
p.94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사람이 여전히 사람을 사랑한다는 미신을.
지구로 돌아가기까지 과정, 지구에 도착했을 때 예견되는 삶은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미신이 되어 버린 우주 시대이지만 젠과 호림은 증명해낸다. 사랑이 그들을 구원할 것임을.
‘만세 엘리자베스’는 주인공 주은이 자신의 로봇 청소기인 엘리자베스와 몸이 바뀐 이야기!
p.159 더 나아가 상대가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찬물을 덮어쓴 듯 몸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p.165 자신은 사회의 부품에서 더 나아가 이제 우주의 부품이 되었다고.
인간의 정체성이 하나의 부품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임을 입증해야 하는 세상이 오게 되면 너무나 서늘할 것 같다.
‘용의 만화경’! 우리가 알고 있는 설화 속의 용이 아니다. 정보와 에너지체에서 태어나 그 자체가 되어 가는 용! 어쩜 이런 상상력을~~감탄만 나온다. 인간이 발견하고 만들고 상상하고 구축한 것들과 인간 밖의 커다란 생태계, 세상의 모든 걸을 흡수하기 위해 백 년이나 대학교에 머물며 만화경을 보듯 희뿌연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김용’씨.
p.251 어차피 일어날 전쟁의 징조를 알리고 막으려 애쓴다. 수천 수만 번을 무의미하게, 그래도 혹시나 가능할지 모를 억만 분의 일의 세상을 위해.
p.267 몇백만 년 이어질 기나긴 수면을 준비하는 지구에서는 여전히 끝없는 질병과 궁핍에 생명들이 말라 가고 있었다. 남기고 온 이들을 위해 길을 열려면 아주 오래도록 미아처럼 헤매고 실패하는 여정이 되리라.
세상을 구해야만 하는 운명으로 이어져 온 에너지체 용! 전설의 용에게도 우리 민중들이 바라던 것이 희망이었으니, 그 희망을 잇기 위해 용은 우주로 날아간다. 그렇게 지구의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불멸의 삶을 살며 고군분투한 김용 씨에게 고마움만 뒤따른다.
그 밖에도 동물과 인간의 관계, 마법사, 동성애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작가의 역량이 빛나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단편들이 다들 완성도가 높으니 쉬면서 읽지 못하고 쭉 읽게 되는 책! 이 쪽 문을 열고 다른 쪽 문을 열면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펼쳐져 있으니.. 자꾸만 후속작이 기다려질 것 같다.

#용의만화경#김유정#황금가지#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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