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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기담 : 매운맛 여름기담
백민석 외 지음 / 읻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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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읻다 #읻다서포터즈 #넘나리 #도서제공

📖 백민석, 한은형, 성혜령, 성해나, 『여름기담: 매운맛』 (230908~230908)

❝ 별점: ★★★★
❝ 한줄평: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
❝ 키워드: #자연 #사람 #기억 #흡수 #악몽 #불청객 #기계 #확률
❝ 추천: 매운맛 공포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

📝 (23/09/08)

백민석, 「나는 나무다」

👻 소설 속 한 문장: 사람들은 너무 많은 진실은 원치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진실만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모두 말해줄 수 있었다. 나는 나이테를 오백 개나 품은 나무다. 내가 모든 것을 봤고, 모든 것을 증언해 줄 수 있다. (p.35)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소설 속 사람들은 끔찍하게 무서운 존재다. 사람들은 숲에서 다른 이들 앞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그곳에 묻어두면 영원히 잊힐 것이라고 여긴다. 또 조경 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무자비한 방식으로 나무들을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한다.

그러나 나무인 ‘나’는 죽은 자들의 피와 살을 뿌리를 통해 자신의 온몸으로 흡수하고 나이테에 새긴다. 형제자매, 이웃 나무들이 사라져도 자신만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킨다. 쉽게 죽지 않아 오래도록 고통받는 나무. 500년이라는 긴 세월 속 온갖 끔찍한 것을 보고 들은 산 증인. 그러나 그런 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끔찍한 일을 저지르러 숲에 올 것이고, 나무는 온몸으로 그 진실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

한은형, 「절담」

👻 소설 속 한 문장: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흡수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 (p.80-81)

진짜 이야기란 ‘전율하게 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 글을 다 읽은 후 엄청난 전율까지는 아니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

유심 스님은 과연 만나는 사람들의 장점만 흡수한 걸까? 다른 사람을 닮는 것도 아닌, 흡수한다는 것. 20년 전의 유심 스님과 지금의 유심 스님은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 걸까? 도대체 유심 스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 상자’를 화자는 과연 열었을까, 열지 않았을까?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였다.

———······———······———

성혜령, 「마구간에서 하룻밤」

👻 소설 속 한 문장: 문진은 집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맞서려면, 자꾸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p.125)

문진이 마주하게 된 악몽 같은 상황의 연속은 정말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문진에게 사기를 치고 꿔 간 돈도 갚지 않았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나 문진의 집에서 제 집처럼 움직이는 순연, 25년 만에 나타나 채무 이행 계약서를 들이미는 노부부. 모두가 원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집주인 문진은 불청객으로 느껴질 정도다. 선잠에서 깨어났는데도 떠나지 않은 불청객들. 이게 진짜 공포가 아니면 뭐가 공포일까?

———······———······———

성해나, 「아미고」

👻 소설 속 한 문장:
앞면? 뒷면?
묻는 듯 그것은 고요히 미소 짓는다. 내가 아닌 내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멈칫하다 액셀에 올린 발을 천천히 뗀다. (p.150)

야키마 H1은 로봇에게 친구라는 뜻의 ‘아미고(amigo)‘를 붙여주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죠의 동료들과는 달리 가식 없이 솔직하게 그를 불편해했던 죠가 좋았던 걸까? ‘운명이 너무도 쉽게 저 온기 없는 손바닥 안에서 이리저리 뒤집히는 것 같다’는 죠의 말처럼, 야키마 H1은 자신의 마지막조차 알고 있었던 걸까? 미래의 언젠가는 우리 모두 너무도 쉽게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런 상황에 무감하고 무관심한 이들. 그들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의 말이 매우 섬뜩했다. 챗GPT의 예언이라니, 그리고 심지어 어느 정도 들어맞는 일들이 일어나다니!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불쑥 예언들이 떠오를 때면 엄청난 공포심이 들 것 같다.

———······———······———

이 이야기들을 다 읽고 난 후,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네 편의 다채로운 공포 이야기로 늦여름 무더위가 싹 가시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

+ 책 커버를 벗기면 나오는 귀여운 고양이에 심쿵했다 🐈

+ 순한맛과 매운맛으로 기담을 나눠서 출시한 것도, 표지도 완전 기발한 아이디어 같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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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 1
정보라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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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읻다 #읻다서포터즈 #넘나리 #도서제공

📖 정보라, 『호』 (230909~230910)

❝ 별점: ★★★★☆
❝ 한줄평: 결말을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란
❝ 키워드: #구미호 #사람 #사랑 #인연 #이승 #저승 #꿈 #약속 #대가 #기억
❝ 추천: 삶을 통째로 뒤흔들 정도로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찾고 있는 사람

🌙 첫 문장: 늦은 밤이었다. (p.9)

📝 (23/09/11)

인연(因緣).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혹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최기준은 어쩌다가 황지은과, 황지은은 어쩌다가 최기준과 인연이 닿아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지은이 사람이 아닌 존재인 것, 그리고 기준이 사람인 것은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사랑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기준은 지은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한다. ‘평생 다른 사람들한테 지은의 얘기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자신의 100퍼센트를 줄 것’. 지은은 과거의 경험으로 이 약속이 헛된 것임을 알고,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퍼센트 전부를 준다는 기준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지은은 다시 한번 속아 본다.

그러나 구미호로부터 기준을 지키려는 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뇌출혈로 쓰러진 할머니를 지키려는 기준의 사랑은 안타깝게도 기준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인 지은에 대한 기억을 앗아가 버린다. 기준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지은은 몇 번이나 모습을 바꾸어 기준 앞에 나타난다. 사랑하는 이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것. 이게 과연 단순히 사람을 홀리는 걸까? 이걸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준은 지은에게 했던 두 가지 약속 모두 지키지 못한다. 헛된 약속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사탕발림에 속고자 했던 지은은 또다시 약속을 저버리고 만 기준을 향한 마지막 고백을 남긴 후 사라진다.

🖋️ "이젠 끝이야."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 사람이 되고 싶었어. 해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걸, 나도 해보고 싶었어, 그 사람이 당신이라서." (p.198)

사람에게는 긴 세월이 구미호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이고, 사람은 너무 빨리 늙고 죽기 때문에 사람을 향한 지은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생 안에서 남은 날들 동안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 사실 글의 대부분이 사람인 기준을 중심으로, 혹은 기준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지은의 과거 이야기나 지은이 기준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 등이 정말 궁금해졌다. 어쩌면 신비스러운 존재고, 마술처럼 아름다운 지은의 캐릭터 유지를 위해서 그녀의 이야기는 물음표로 남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구미호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예전 드라마인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여자주인공 구미호가 떠오르기도 했다.

마지막, 학원의 괴짜 여자 선생님은 돌고 돌아 다시 기준의 곁을 맴도는 지은일까? 기준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 인연이란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주어진 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p.207)

우리 모두가 주어진 생을 살아가며, 인연을 만날 수 있기를,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 뜨겁고, 진하고, 향기로우며, 기묘하게 달짝지근한, 익숙한 맛의 커피는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해졌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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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초록 천막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1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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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에세 #세계문학 #브릭스북클럽 #도서제공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2』 (230822~230907)

❝ 별점: ★★★★★
❝ 한줄평: 죽음으로 시작해 또 다른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 속 운명의 흐름으로 엮인 인물들의 빛나는 삶
❝ 키워드: #운명 #우정 #사랑 #예술 #역사 #삶 #죽음 #이별 #양심 #생존
❝ 추천: 역사 속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일리야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p.7)

❝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정은 운명이 하는 거야. ❞

📝 (23/09/07) 스탈린의 죽음으로 시작해 시인 브로드스키의 죽음까지, 이 책은 죽음으로 시작해 또 다른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 죽음들 사이에는 운명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엮인 인물들의 빛나는 삶이 있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이 둘을 엮는 단어, ‘운명’. 올가, 타마라, 갈랴의 우정, 일리야, 미하, 사냐의 우정. 그리고 그들의 사랑. 삶과 죽음 사이에 이들은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며 만남과 이별, 기쁨과 행복,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정은 운명이 하는 거야.’라는 안나 알렉산드로브나의 말처럼,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운명이 결정한 대로 흘러가버린다.

양심과 생존. 이 두 키워드를 두고 일리야와 미하의 선택과 결과가 달랐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리야는 ‘요리조리 피해 가고 미끄러져나가고 녹아내리며 자취를 감추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p.264) 사람이었고, 미하는 ‘늘 남을 도울 준비가 돼 있었으며 무한한 연민을 가지고 있었’던 (p.212) 사람이었기에 둘의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 중 어느 선택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결정은 운명이 내렸으며, 그 둘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짐작했던 대로 작가는 '천막'이라는 주제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초록색은 생명, 자연, 조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초록 천막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결국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 마지막 전주곡과 푸가 나단조에 바흐는 이렇게 썼다.
"엔데 구트, 알레스 구트(Ende Gut, Alles Gut)."* (*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좋군."
사냐가 말했다. 그는 바흐의 말을 믿었다. (p.471-472)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는 걸 의미한다.’는 미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는 과연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끝도 좋을 수 있을까? 하나 분명한 사실은,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아파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시간의 횡포 속에서 발을 헛디뎠거나 잘 버텼거나 힘든 삶을 살아낸 증인들, 영웅들, 무고한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을 있게 한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 희생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생존보다 양심을 택했던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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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에피소드

「기사가 있는 집」
✎ 그저 말없이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를 가진다는 것

「도망자」
✎ 삶의 한 조각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침수」
✎ 때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좋은 표」
✎ 흐르고 흘러 만나게 된 두 이복형제

🎼 「불쌍한 토끼」 ⛤⛤⛤
✎ ‘그녀 역시 양심이 생존과 대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한 종의 생물학적 진화는 살아 숨쉬는 양심을 가진 사람들을 씻어내버린다. 결국 가장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 「최전방에서」 ⛤⛤⛤
✎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정은 운명이 하는 거야.”

🎼 「이마고」 ⛤⛤⛤
✎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엔데 구트(Ende gut)」
✎ "엔데 구트, 알레스 구트(Ende Gut, Alles Gut)."*
*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브릭스북클럽 참여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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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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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 이꽃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230813~230831)

❝ 한줄평: ‘눈부시고 찬란한 여름’, 비 온 뒤엔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기 마련이니까
❝ 키워드: #전학 #속마음 #초능력 #저주 #고요 #소음 #여름 #가족 #선택 #용서
❝ 추천: 뜨거운 여름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첫 문장: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엄마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시작됐다. (p.7)

📝 (23/08/31) 번영. ‘번성하고 발전하여 영화롭게 됨’이라는 뜻을 가진 동네. 하지만 이름과는 너무나도 다른 동네에 가게 된 지오의 이야기로 글이 시작된다.

엄마를 지키고 싶어 유도를 시작했지만 엄마의 병 때문에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에게 보내지며 갑작스럽게 번영으로 이사가게 된 아이, 하지오. 그리고 오 년 전 부모님을 잃은 후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되어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왔지만 지오 곁에 있으면 고요함을 되찾는 아이, 유찬.

두 아이 모두 각각 엄마의 병과 부모님의 죽음으로 원래의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렸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바뀐 일상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지오의 곁에 있으면 매 순간 웅얼웅얼 들려왔던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고, 심지어 지오의 속마음은 아예 읽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찬은 같이 가자고, 멀어지지 말라고 자꾸만 지오를 붙잡는다. 지오와 함께 있을 때는 개구리와 뻐꾸기 소리, 매미 울음소리와 선풍기 소리 같은, 아주 평범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찬. 그리고 속마음을 들을 수 없기에 오히려 지오의 표정, 몸짓, 억양 하나까지 자세히 관찰하는 찬. 지오는 편안하다는 말에 약간 실망했지만, 찬에게는 편안함이 곧 지오가 특별하다는 표현 아니었을까. 지오가 아니면 절대로 고요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첫 만남에 찬의 이어폰을 고장낸 후 그를 피해 도망다녔지만, 지오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을 수 없는 찬에게 오히려 마음에 있는 말들을 모두 쏟아 낸다. 지오도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을 마음에만 쌓아두는 게 힘들어 그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찬은 언젠가 자신에게 필요했던 위로를 지오에게 건넨다.

| “더 해. 들어 줄게.”
“······뭐?”
“궁금했었어. 그래서 듣고 싶었어, 네 속마음.“
(...) 나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저 함께 앉아 있어 준다.
언젠가 내가 그랬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래 주길 바랐던 것처럼. (p.60)

찬은 지오가 자신의 아픔도 알아주길 바라며 자신을 걱정해 주길 바라고, 속마음을 들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 지오에게 지금껏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찬도 어렸지만, 새별도 어렸던 그때. 마을 사람들이 없던 일로 덮어두자고 한다 한들 찬에게는 다시는 없던 일이 될 수 없는 상실인데. 마을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찬이 새별을 용서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아이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새별이의 잘못을 감싸줬던 것처럼, 찬의 마음을 보듬어준 어른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후 소중한 게 생겨도 또 잃을까 겁을 내는 찬이 안쓰러웠다.

어린 엄마와 자신을 버렸다고만 생각했던 지오의 아빠의 이야기도 아버지의 죽마고우인 유도 코치님을 통해 풀리게 된다. 유도를 포기할 정도로 지오의 엄마를 소중히 여겼지만, 결국 지오의 엄마도, 유도도 잃은 지오의 아빠. 선택의 순간은 너무나 짧고, 또 그 결과는 언제나 옳지는 않으며,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도 한다.

찬은 소중한 마음을 지오에게 주는 순간 지오도 잃게 될까 두려워 애써 지오를 밀어내지만, 무너질 걸 미리 두려워하던 아이 지오는 관계를 처음부터 튼튼히, 천천히 다시 쌓기로 하고 찬에게 손을 내민다.

| “그럼 지랄이지. 이래라저래라 네 마음대로 하잖아.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내 마음대로 할 거거든? 지금은 가까워질 거고."
이상하다. 가까워지겠다는 말이 위안이 된다. 멀어지지 않겠다는 그 말이 나를 안심하게 만든다. (p.155)

그리고 지오는 지금껏 마을 사람들이 찬에게 숨겨왔던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 “(...) 그러니까 너는 부모님에게서 지켜진 아이가 아니라 모두에 의해서 지켜진, 모두가 살린 아이야.”
(...)
"(...) 그날 온 마을 사람들이 널 지켰던 것처럼 이제 내가 너 지켜 주겠다고. 이 말이 하고 싶었어.” (p.157-158)

'누군가를 지키는 데 필요한 건 자격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 지오도, 찬도, 지오와 찬의 부모님도, 그리고 새별과 주유,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의 마음을 담아 서로를 지키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그 진심이 비록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내가 하는 선택이 항상 옳지는 않더라도, 그 마음까지 옳지 않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속마음을 듣는 사람일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 지오와 찬은 뜨거운 이 여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

책의 제목처럼, 뜨거운 여름날 파란 하늘 아래 한없이 푸르른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펼쳐지는 눈부시게 빛나는 두 청춘의 이야기가 여름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뜨겁고 아릿하다. 아저씨를 아빠라고 처음 불러 본 지오도, 새별을 용서하게 된 찬도, 마음의 평안을 찾은 듯하다. 여름을 싫어하는 찬을 위해 기꺼이 여름을 한 입 먹어주는 지오.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할 모든 계절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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