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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평점 :
"전하 성을 안에서 열어 조선을 지켜야 합니다." 와 "전하 성을 안에서 굳건히 지켜 조선을 지켜야합니다."의 의견으로 1636년 주화론과 주전론자의 싸움이 남한산성 안에서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전자는 이조판서로 있던 최명길의 말이었고 후자는 예조판서로 있었던 김상헌의 말이었습니다. 둘다 조선을 지키고자하는 마음은 같았으나 그 방법은 극명히 달랐습니다.
일단 1636년 병자호란을 알기 위해서는 1627년에 있었던 정묘호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묘호란은 1619년 강홍립을 대원수로 지정하여 명의 원군요청에 따라 동로군의 일원으로 전쟁을 치렀던 사르후 전투의 이유와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가 옹립된 이유로 청이 남하한 사건입니다. 당시 사르후 전투에서는 좌영장 선천군수 김응하의 분전이 있었고 그 분전은 적군이었던 청군마저 감복하여 장군으로 불렀으나 한국에서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어 안타깝습니다만 이 내용과는 별개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이미 1636년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1627년 청군이 남하했을 당시에는 조선의 방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여 북쪽에서 청군을 방어할 동안 한양에서는 파천할 시간을 벌 수 있었으며 작계대로 강화도로 피난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방민족인 청군은 수전에 매우 취약해 강화도로 진군하지 못하고 형제의 맹약을 맺은체 명과 관계를 단절한다는 목표만 이루고 철군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이 계속해서 명과 교류를 하고 심지어 북벌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1636년 재차 침공을 합니다. 하지만 청군도 이전의 있었던 전투를 샅샅이 분석하고 왜 조선왕을 잡지못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기동전을 벌이게 됩니다. 청군의 선봉대는 백마산성 의주성 등의 북방방어선과의 접촉과 전투를 최대한 피한채 하루 70KM의 속도로 남하했습니다. (이는 몽골 전성기의 진군속도와 맞먹는 속도였으나 몽골군은 평지를 달렸고 청군은 산악지대를 거쳐 남하했다는 면에서 근대 용병체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가히 놀랄 만한 이동속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화도로 파천하기로 결정내린지 하루채 안되어 청군의 선봉대는 조선왕의 퇴로를 차단한 후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측에서도 갑사로 꾸려진 기병대를 속히 파병했으나 결과는 전멸이었습니다. 청군의 선봉대 또한 정예병이었고 각종 전투로 다져진 군대였기에 조선의 정예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였습니다. 결국 조선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파천하기로 하여 근왕군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근왕군은 과거 사르후 전투의 동 서 남 북로군과 같이 각개격파되어 강원도 근왕군은 검단산 전투에서 전멸 경상도 근왕군은 쌍령 전투에서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전라도 근왕군만이 광교산 전투에서 적장을 사살하는 등의 전과를 올려 승리하였지만 후위대가 없었으며 보급이 되지 않아 결국은 퇴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근왕군들이 사라진 마당에 남한산성의 주둔군만으로 어떻게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걸 느낀 인조는 결국은 최명길의 손을 들어 항복에 이릅니다. 하지만 병자호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용병의 미비였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광교산 전투에서 김준룡은 지형의 우월함을 이용했으며 조총부대가 청군의 팔기군을 대적할 수 있다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대승을 이끌어낸 명장입니다. 그만큼 용병술이 어떻게 활용되냐에 따라서 결과는 분명히 달라 질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쌍령전투, 검단산 전투, 그리고 남한산성 주둔군으로 독자 수행한 북문 전투에서는 그런 용병과는 관련없이 무턱대고 그 숫자만 믿거나 단순히 조총으로 적을 섬멸할 수 있다는 근원없는 자신감으로 대적했기에 결국은 역사상 씻을 수 없는 패전으로 기록되었으며 사실 병자호란은 한국 역사서에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기록조차 되지 않고 단순히 홍타이지가 남한산성에 진군했으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하게되었다는 한페이지 정도의 역사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더더욱 각인하여 후대에는 이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도록 해야하지만 결국은 분전과 승리의 역사인 임진왜란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고 사르후 전투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단순히 사건정도로만 축소해서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인조 1636"은 우리에게 패전의 역사란 이런 것이다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