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을 보곤 철렁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봤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 이해한다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은 언제나 충격을 동반한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나 역시 자주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공감한다는 표현을 쓰곤 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착각이었다니.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책장을 넘겼다. 


*


저자인 이길보라 작가는 호떡을 팔러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논픽션 작품들을 통해 세상을 간접 경험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농인 부모를 둔 코다로서 농사회와 청사회를 오가는 경험을 주로 이야기하던 그는 농인 사진가 사이토 하루미치의 책 <서로 다른 기념일>을 읽은 뒤 논픽션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도구'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통해 '가까이 있기에 제대로 보기 어려웠던 농인부모'의 세계를 만나고  딸의 시선이 아닌 부모의 시선에서 그들이 마주했을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하루미치는 청인 자녀 이쓰키를 키우는 농인이다. 자녀와 장을 보러 간 때 이쓰키가 수어로 "음악, 있어!"라고 한다. 그러자 저자는 답한다. "음악이 있구나, 이쓰키에게는. 엄마, 아빠, 음악 없어! 대신 음악을 봐."


그렇다. 청인은 음악을 듣고 농인은 음악을 본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상을 마주 보는 일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당신과 내가 다르기에 기쁘고 즐겁다고 말하는 저자는 서로의 다름을 마주할 때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할 것을 제안한다. '다름'으로 확장될 세계를 기대하며 그 차이를 마주한 순간을 '서로 다른 기념일'로 삼자는 거다. - 7p 


그제야 제목이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타인을 공감한다며 그들의 고통을 안타까운 한계점, 응당 슬퍼해야 하는 일로서만 취급해왔다. 그러나 고통은 그저 '다름'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그들의 세계는 이미 온전하다. 이 사실을 깨닫자 나의 세계 역시 조금은 확장되는 듯했다.


저자는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다양한 논픽션 작품들과 함께 소개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시각이라고 믿으며. 1부 '나를 만든 세계'에서 2부 '나와 우리가 만드는 세계'로 세상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담론은 확장된다. 


1부에서는 노동을 할 수 있는 몸만이 살아가기에 적합하고 시민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다고 기준 매기고 그 외에는 '장애'라 이름 붙인 역사에 대항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크립 캠프 : 장애는 없다>, 다수의 몸을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등이 소개된다. 그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손쉽게 이름 붙여지고 판단되어왔는지를 깨닫는다. 나 역시 그 세계에 속한 채 편안히 살아가며 문제를 외면해왔음에 깊이 반성했다. 이 밖에도 재일조선인, 미등록 이주아동 등 다양한 경계에 선 이들을 조명하며 그들의 삶을 제한하는 낙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지난날을 특히 부끄럽게 반추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었다. 저자는 박종필 감독의 작품 <버스를 타자! :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를 소개하며 그 안에 담긴 장면들을 묘사한다. 거기엔 과거 언젠가의 내 모습이 있었다. 


등굣길에 지하철을 갈아타려는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을 듣곤 아뿔싸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역 밖으로 나가 출근길 인파로 붐비는 버스에 겨우 올라타고 교수님께 시위 때문에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드렸다. 그때 버스 기사와 승객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망쳤다며, 일부러 출퇴근길에 시위하는 장애인들 때문에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가 막심하다며 전장연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잘못 없는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에 동감했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더불어 여러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함은 이해하지만 그 방식이 왜 생계를 위해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하는 이들을 볼모로 삼는 것이어야 할까 싶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힘이 없는 시민들이 아닌 정부와 국회를 향해 소리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권리를 찾기 위해 그들이 벌여온 투쟁의 역사와 탈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권리를 위한 예산 확보의 필요성, 인권침해의 온상인 시설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시설운영자, 장애인의 가족, 국민 4자 간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라는 지적 앞에서 그간의 착각은 깨졌다. 나는 잘못이 없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카르텔 속에서 침묵하고 외면해온 방관자였다. 그들을 이해하는 한편 방식에 아쉬움이 들던 그간의 갈등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이동권 투쟁은 배려하고 피해 보는 입장이 아닌 방조에 동참한 가해자로서 뼈아프게 들으며 이제라도 힘을 실어야 할 목소리였다.


2부에서는 저자가 다른 이들과 연대하며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글방을 통한 연대, 경험을 고백하는 방식의 연대, 삶의 형태를 통한 연대를 통해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서로의 동료, 파트너가 되는 벅찬 순간들이 그려진다.


가족 돌봄 청년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을 일컫는 '영케어러'에 관한 담론이 인상 깊었다. 준비 없이 돌봄 제공자이자 가장이 되어야 했던 청년들.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돌봄 노동으로 소비되는 에너지, 홀로 떠안아야 하는 무거운 짐에 외롭고 불안했을 이 땅의 수많은 영케어러를 떠올렸다.


당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은 영 케어러가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실질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 153p


돌봄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도 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다 우리 곁을 떠난 한 청년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영케어러에 관한 담론이 더욱 크게 형성됐더라면,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과 보호 안에서 그 많은 짐을 혼자 떠안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를 지킬 수 있었을까. 상대의 짐이 나의 짐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가 홀로 무거움을 견디지 않게 나눠서 지고 걸어갈 수는 있다. 돌봄에 대한 담론은 더욱더 커져야 한다.


*


책을 읽으면서 독자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된다. 어떤 책은 한 번에 깊고 넓은 폭으로 세계를 확장하기도 한다. 이 책이 그러했다. 우리는 완전히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며 살고 있지는 않아도 어느 한 부분 이상은 반드시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 지점에서 시작해 점점 더 넓은 영역을 향해 서로를 알아가는 노력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 책을 읽고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