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있던 경기병이 신음하며 난간에 쓰러졌다. 로스토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에게 달려갔다. 누군가가 또 "들것!" 하고 외쳤다. 네사람이 그 경기병을 안아 올렸다. "ooo...... ・내버려둬. 제발" 하고 부상자가 외쳤으나, 그들은 일단 그를 들것에 실었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고개를 돌려 뭔가를 찾는 것처럼 먼 경치며 도나우 강물이며 하늘이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푸르고 고요하고 깊은가! 저물어가는 태양은 얼마나 밝고장엄한가! 저멀리 도나우 강물은 얼마나 부드럽고 반짝이며 빛나는가! •멀리 도나우 강 뒤쪽에 푸르게 보이는 산들, 수녀원, 신비로운 골짜기. 우듬지까지 안개가 낀 소나무 숲은 더한층 훌륭했다..... 저곳은 고요하고 행복에 가득차 있다...... ‘내가 저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나 한 사람과 저 태양 속에는 그지없는 행복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음과 고통과 공포, 그리고 이 모호함, 분주함....... 저기, 또 뭐라고 소리치고, 모두 또다시 뒤쪽 어딘가•로 달려간다. 나도 그들과 함께 달려간다. 아아, 바로 저것이 저것이•지금 내 머리 위와 내 주위에 있는 저것이 그렇다. 죽음이다.………… 눈깜짝하는 순간에 나는 저 태양도, 저 강물도, 저 골짜기도 볼 수 없게될 것이다....... 때마침 태양은 구름 뒤로 숨었고, 로스토프 앞쪽에 또다른 것이나타났다. 그러자 죽음과 들것에 대한 두려움도, 태양과 생명에 대한사랑도, 모든 것이 하나의 병적인 불안한 인상으로 녹아들었다. 290 - P290
리를 누워서 떡 먹기 같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그의 눈은 경멸하듯이 가늘어졌다. 그는 유달리 천천히 육군대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탁자 앞에 앉아 처음 일이 분 동안은 그에게눈길조차 주지 않는 육군대신을 보았을 때 그 감정은 더 강해졌다. 육군대신은 양쪽 살쩍이 희끗희끗한 대머리를 두 자루의 촛불 사이에 숙이고 연필로 표시해가며 서류를 읽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들렸을 때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읽었다. "이걸 가져가서 건네주게." 육군대신은 시종무관에게 서류를 주면서 역시 급사에게는 눈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지금 육군대신의 머리를 차지한 모든 일 가운데서쿠투조프군의 동정은 가장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며, 그가 이것을 러시아 급사에게 느끼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내게는 아무래도 좋다‘ 하고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육군대신은 나머지 서류를 끌어당겨 가장자리들을 맞춘 뒤에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는 총명해 보이고, 머리 모양이 독특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 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 총명하고 단호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분명 습관인 듯 의식적으로 변했다. 잇달아 찾아드는 많은 청원자를 만나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멍하고 위선적인, 그러면서도 그 위선을 숨기려 하지 않는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 "쿠투조프 원수에게서 왔습니까?" 그는 물었다. "분명히 좋은 소식이겠죠? 모르티에군과 충돌이 있었다고요? 이겼습니까? 이제 이길 때도 됐죠!" 그는 자기 앞으로 온 급보를 침울한 얼굴로 읽기 시작했다. - P297
・아직젊지만 더이상 풋내기 외교관이 아닌, 열여섯 살 때부터 근무를 시작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빌리빈은 외교계에서 촉망받고 있었다.. 해파리와 코펜하겐을 거쳐 지금은 빈에서 상당한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수상과 빈 주재 러시아 공사도 그를 알고, 높이 평가했다. 일류 외교관이 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지 않거나 프랑스어로 회화를 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자격만을 갖추려 하는 대부분의 외교관과는 달리, 그는 일을 좋아하고 또 일하는 방법을 아는 유능한 외교관 중 하나였다. 그래서 원래는 게으른데도 이따금 책상머리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있었다. 그는 어떤 내용의 일이건 한결같이 잘해냈다.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였다. 그는 외교상의 문제가 무엇인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요령 있고 정확하게, 세련된 문장으로 회람장과 각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서 그는큰 만족을 찾고 있었다. 이런 문서 작성 업무 외에도 상류사회 사람들과 교제하고 재치 있게 담화하는 솜씨로도 인정받고 있었다. 빌리빈은 일을 사랑하듯 담화도 좋아했는데, 그것은 담화가 품위 있고 기지가 넘칠 때에 한했다. 사교계에서도 그는 언제나 훌륭한 말을•할 기회를 노리지만,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않았다. 빌•리빈의 담화는 언제나 기발하고 기지가 넘치고, 보편적인 흥미를 끄는완성된 명구로 가득했다. 그런 명구들은 보잘것없는 사교계 인사들도쉽게 외워서 객실에서 객실로 옮기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그것은 빌리빈의 머릿속 연구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 P300
리를 속이려 하고 있고, 프랑스와 단독으로 접촉해서 강화 계획, 비밀강화 초안을 만들고 있어요." "설마 그럴리가!"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그건 너무 추악합니다." **" ‘때가 되면 알게 되겠죠."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다는 듯이 빌리빈은 다시 이맛살을 펴면서 말했다.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 깨끗한 속옷을 입고, 따뜻하게 덥힌 향기 좋은베개와 깃털 이불에 몸을 누이자, 안드레이 공작은 이번에 자기가 승전보를 가지고 온 전투 같은 것은 까마득히 먼 일같이 생각되었다. 프로이센의 동맹, 오스트리아의 배반, 보나파르트의 새로운 승리, 그리고접견식, 열병, 프란츠 황제의 인견 같은 것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눈을 감자 귓전에 포성과 총성, 포차 바퀴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울리고, 또다시 산 위에서 실처럼 열을 지은 소총수들이 내려오고, 프랑스군이 사격을 하고, 그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고, 슈미트와 나란히말을 달리고, 탄환이 주위에서 즐거운 듯이 소리를 내고, 그는 어릴•때부터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크나큰 삶의 희열을 느꼈다. 그는 눈을 떴다...... ‘그렇다, 이건 모두 있었던 일이다!......‘ 그는 행복하게, 아이처럼자신에게 미소지으며 중얼거리고는 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P307
"나는 당신의 친구로서 진심으로 말하는 겁니다. 냉정하게 판단해요. 당신은 지금 여기에 남아 있어도 되는데 대체 어디로, 왜 가려는거죠?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그는 왼쪽관자놀이 위에 주름을 잡았다). 당신이 부대에 닿기도 전에 강화가 체결되거나, 쿠투조프 전군의 패배와 오욕. 빌리빈은 상대방의 딜레마가 이미 다툴 여지 없는 것임을 느끼고 주름을 폈다. "나는 그런 걸 판단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냉정하게 말하고, 속으로는 ‘나는 아군을 구출하기 위해 간다‘고 생각했다. "친구여, 당신은 영웅입니다." 빌리빈은 말했다. - P320
그는 왼손을 뻗어 바그라티온을 끌어당기더니 반지를 낀 오른손을 들어 자못 익숙한 손짓으로 그에게 성호를 긋고 부은 한쪽 뺨을 내밀었지만, 바그라티온은 뺨이 아닌 목덜미에 키스했다. "자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쿠투조프는 되풀이하고 포장마차쪽으로 다가갔다. "나와 같이 타세." 그는 볼콘스키에게 말했다. "각하. 저는 여기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부디 바그라티온 공작 부대에 남아 있게 해주십시오." "타라니까." 쿠투조프는 말하더니, 볼콘스키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덧붙였다. "내게도 훌륭한 장교가 필요해, 내게도 필요하네." 둘은 마차를 타고 몇 분 동안 말없이 달렸다. "앞으로도 많은 일이 남아 있어." 볼콘스키의 마음을 다 헤아린 듯이 그는 노인다운 통찰력 있는 표정을 띠면서 말했다. "만약 내일 저부대에서 십분의 일이라도 귀환한다면,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겠네." 쿠투조프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쿠투조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반 아르신 남짓떨어진 곳에서 그의 눈에 띈 것은, 이즈마일 전투에서 총알이 머리를•관통했을 때 입은 상처가 깨끗이 닦인 관자놀이의 주름과 텅 빈 한쪽눈이었다. ‘그렇다, 그라면 사람들의 죽음에 이토록 침착하게 말할 권리가 있다!‘ 볼콘스키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저를 그 부대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그는말했다. - P328
쿠투조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벌써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잊어버린 듯 생각에 잠겨 앉아 있었다. 오 분쯤 지나 마차의 부드러운반동에 경쾌하게 흔들리면서 쿠투조프는 안드레이 공작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얼굴에는 흥분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미묘한냉소를 띠면서, 프란츠 황제를 알현한 소상한 이야기며 크렙스 전투에•대한 궁정의 반향이며 두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부인들에 관한 소식을안드레이 공작에게 물었다. - P329
나. 이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진격하여 러시아군을 섬멸하라...... 귀하는 러시아군의 수송차와 대포를 노획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황제의 부관은 사기한에 지나지 않는다・・・・・・ 전권을 갖지않은 장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 역시 그것을 갖지 않은 자다.…………오스트리아군은 빈의 다리에서 귀하에게 기만당했지만, 지금은 귀하가 황제의 부관에게 기만당하고 있다. 나폴레옹보나파르트의 부관은 뮈라에게 보내는 이 위협적인 편지를 들고 전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보나파르트는 이제 휘하 장군들을 신뢰할 수없었으므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인 고기를 놓칠세라 전군을 거느리고 전장으로 향했지만, 바그라티온 부대의 4천 명은 즐겁게모닥불에 둘러앉아 젖은 것을 말리기도 하고, 불을 쬐기도 하고, 사흘판에 비로소 죽을 쑤기도 했다. 이 부대의 어느 누구도 눈앞에 닥쳐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 P333
"보나파르트가 아냐, 황제 폐하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는화를 내며 소리쳤다. "제기랄, 너희 황제 폐하 같은 게 다 뭔데!" 돌로호프는 러시아어로 거칠게 군인들이 쓰는 욕을 퍼붓고는 총을메고 떠나버렸다. "갑시다. 이반 루키치." 그는 중대장에게 말했다. "저게 바로 흐랑스어라는 거로군." 산병선의 병사들이 지껄여댔다. "자, 이번에는 네 차례야, 시도로프!" 시도로프는 윙크를 하더니 프랑스 병사 쪽을 향해 무슨 말인지 알수 없는 말을 속사포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카리, 말라, 타파, 사피, 무테르, 카스카." 그는 자기 목소리에 억양을 붙이려고 애쓰면서 지껄였다. "호호, 호! 하, 하, 하 하! 우흐! 우흐!" 자못 건강하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병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더니 산병선을 넘어 프랑스병들에게로 옮아갔는데, 이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총에 장전되어 있•는 탄환을 빼내 폭발시켜버리고 그길로 하루빨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좋은 여전히 장전되어 있었고, 집들과 보루에 설치된 총안은여전히 전방을 노리고 있었으며, 앞차에서 떼어낸 대포는 서로를 향한채 대치하고 있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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