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한 사람처럼「죄송합니다만, 하나만 더 대답해 주십시오.」 나는 계속해폴란드인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그들도 사식을먹고 있고 나도 차를 마실 뿐인데, 그들은 마치 이 차를 부러위하듯 바라보니 이게 무슨 의미죠?」「그것은 차 때문이 아닙니다.」 폴란드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그들과 닮지 않았다는 것과 귀족이라는 것 때문에 당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여러 사람이 당신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해요. 그들은 당신을 경멸하고 모욕하고 싶어 안달이지요.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좋지 않은 일을 여기서 보게 될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들 모두에게 정말로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관계 속에서 다른누구보다도 힘이 들지요. 여기에 익숙해지려면, 많은 일에냉정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자주 여기서 사식을 먹으면서도, 그리고 몇몇은 늘상 차를 마시면서도, 당신이 차를 마시거나 사식을 먹는다면, 당신은 아직도몇 차례나 더 욕설과 좋지 않은 일에 부딪혀야 할 것입니다.
자기들은 되지만 당신은 안 된다는 것이죠.
이런 말을 하고 나서 그는 일어나 식탁에서 물러났다. 몇분 후에 그의 말은 적중했다....... - P66

돈이라면 누구도 죄수를 혐오스러워하지않으며, 호송병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사전에 이런 일을 알려고 접근한다. 그런 호송병들은 대개 스스로가 감옥의 후보가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여정은 거의 언제나 비밀로 남게 된다. 그러한 일들은하주 드물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덧붙여야 하겠다. 이런 일을하려면 너무나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여성 찬미자들은 전혀위험하지 않은 다른 수단에 매달리게 된다. - P79

응? 당신네들은 정말 감옥에 차를 마시러 온 모양이지? 차를마시러 왔어? 어서 말을 해봐. 이것들을 그냥.....!」그러나 우리들이 입을 다물고 자기를 상대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그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에 몸을떨었다. 그의 옆 한구석에는 죄수들의 점심과 저녁을 위해썰어 놓은 빵 전부를 담아 두는 커다란 쟁반(나무판으로 만든)이 놓여 있었다. 그 쟁반은 감옥 안의 죄수들 반수 이상을위해 빵을 담아둘 수 있을 정도로 컸지만 지금은 비어 있는상태였다.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우리들의 머리위에서 휘둘러 댔다. 까딱했다간 우리 머리를 박살낼 것 같았다. 살인 혹은 살인의 음모는 지극히 불쾌한 일로 감옥 전체를 위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리 되면 심문과수색과 가혹함이 강화되기 시작할 것이므로 죄수들은 전력을 기울여 대개 이러한 극단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자제하려고 애쓰는데,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모두가 잠잠해져서는 관망만 하고 있었다. 우리를 옹호해 주려는 단한 마디 말조차 없었다! 아무도 가진에게 한 마디도 외치지않았다! 그 정도로 다른 죄수들의 마음에는 우리에 대한 증오가거셌던 것이다! 우리의 이 위험스러운 상황이 그들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은 무사히 끝났다. 그가쟁반으로 내리치려 할 때, 누군가가 출입구에서 소리를 쳤던것이다.
「가진 술을 도둑맞았다!
그는 쟁반을 마룻바닥에 내던지고, 미친 사람처럼 취사장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래, 하느님이 구해 주셨어!」 죄수들은 저희들끼리 말을주고받았다. 그 뒤 오랫동안 죄수들은 이 이야기를 꺼내곤했다. - P86

술 도둑에 관한 소식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 일부러 꾸민 것인지 그 뒤에도 나는 그것을 알 수없었다.
저녁 무렵.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아직 옥사의 빗장은 채워지지 않고 있을 때, 나는 울타리 부근을 거닐고 있었다. 무거운 슬픔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의 감옥 생활을통틀어 보아도 그와 같은 슬픔은 그 이후에 결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유폐의 첫날은 감옥이든, 독방이든, 유형지든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힘들게 보내게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감옥 생활을 하던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줄곧 나를 성가시게 따라다니던 생각 하나가 그날도 다른 어느 것보다 더욱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것은 일부분이라도 지금의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생각이다. 그것은 동일한 범죄에 대한 형벌의 불공평성에 관한 것이다. 사실, 한 가지 범죄를 대략적으로라도 다른 범죄와 비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사람과 다른 사람이 각각 살인을 했다고 한다면, 두 가지 사건 모두 상황이 참작된다. 그렇지만 한 사건과 다른 사건에거의 동일한 형벌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범죄에 어떠한 차이가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아주 하찮은 것, 양파 하나 때문에 사람을 참살한다. 갑자기 한길로 나가 지나가던 농부 한 명을 참살했지만, 그에게는 불과 한 개의 양파밖에 없는 것이다. <이봐 영감! 당신이 나보고 전리품을 구하라고 내보내서 농부를 죽였지만, 양파 한 개밖에 찾질 못했잖나.> <바보 같은 놈! 양파 한 개에 1꼬뻬이까야! 1백 명이면 양파가 1백 개고, 그러면 1루블이잖아!> 이것은 감옥의전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음탕한 폭군으로부터 약혼녀와 누이와 딸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하여 살인을 한다. 한 사람은 방랑을 하던 중 수색 부대에 포위되어 자기의 자유와 - P87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또는 드물지만 굶어 죽지 않으려고들을 죽인다. 자기 손에 묻은 따뜻한 피를 느끼고 그들의 공살인을 한다. 다른 사람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려고 어린아이포와 자기의 칼 밑에서 떠는 그들의 비둘기 같은 마지막 전홀을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듯별의별 사람들이 다 같은 감옥에 갇힌다. 사실 선고된 형기예는 변수가 있지만, 이러한 변수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변수는 오히려 같은 종류의 범죄에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특징적인 것이 많은 만큼 변수도 많은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화해시키고 없애 버리는 것은, 마치 원과 같은면적의 정방형 사각형을 구하려고 하듯 해결될 수 없는 과제를 상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차이점, 가장 최후의 형벌 속에 있는 차이점을 보도록 하자...... 감옥에서 마치 양초처럼 녹아내리고 쇠약해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는 감옥에 들어오기 전까지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인생이 있으며, 이렇게 용맹스러운 동료들의 유쾌한 클럽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감옥에는이러한 사람들도 들어온다. 예를 들면, 깨끗한 양심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교양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자기 마음의아픔 때문에, 그는 어떤 형벌을 받기도 전에 고통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가장 무서운 법률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판결한다. 하지만 이러한사람과 나란히,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결코 한 번도 되새겨 보지 않고서 자신의 일생을 전부 감옥에서 보내는사람도 있다. 심지어 그는 자기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옥 생활보다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훨씬 못한 자유로운 세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감옥에 들어오기 위하여 일부 - P89

러 죄를 저지르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한 사람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멸시의 극한을 겪으며 결코 한 번도 배불리 먹은 적도 없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의 주인을 위해 일을해야만 한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집에서보다 일하기가 쉽고,
빵도 그가 결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을 만큼 마음껏 먹는다. 축일마다 쇠고기를 먹으며, 적선도 받을 수 있고, 몇 푼이나마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떠한 집단인가? 교활하고, 약삭빠르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존경스러운 경탄의 시선으로 자기의 동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는 결코 한 번도 그러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사람들의 집단을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사회로 간주하게 된다. 과연,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한 형벌이 주어져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들고 무엇 하겠는가! 북소리가 울린다.
감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 P89

는데, 거기에는 마치 나의 고통을 즐기려고 한다든지 내모든 불행의 크기가 실제로는 어떤 쾌락을 의식하는 것과 같다.
고 보는, 말하자면 일부러 나의 상처를 자극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자괴 어린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때때로 이 방구석에 연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제일 두렵게 만들고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미 인간이란 이상스러울 정도로어떤 것에 익숙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앞으로의 일일 뿐,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적대적이며 무서울 뿐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의 새로운 감옥살이의 동료들이 나를 바라볼 때면 내보이는그 맹렬한 호기심, 갑자기 서로 합심해서 나와 같은 귀족 출신의 풋내기를 대하는 그들의 무자비한 가혹함, 때로는 증오에 가까울 정도의 난폭함, 이 모든 것들은 한시라도 빨리 나의 모든 불행을 단숨에 깨닫고 맛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모든 죄수들처럼 어서 그들과 동일한 궤도에 들어가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 나 스스로가 먼저 일을 원했을 만큼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물론 그때 나는 많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도 의문을 품어 볼수가 없었다. 적대적인 것들 가운데도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로이 사흘 동안 만났던 공손하고 상냥한 몇 명의 사람들은잠시 동안이나마 나를 무척이나 격려해 주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아낌 아끼미치가 내게 공손하고 상냥했다. 감옥의 나머지 음침하고 증오에 찬 얼굴들 가운데에서도 나는 몇몇의 선랑하고 쾌활한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지만, 나쁜 사람들 가운데도 좋은사람들은 있는 법이지.> 나는 그렇게 서둘러 내 스스로를 위 - P115

내가 이미 위에서 이에 관해 말했지만, 돈은 감옥에서 가공스러운 의미와 힘을 가지고 있다. 단호히 말할 수 있는데,
감옥에서는 돈을 조금이라도 가진 죄수가 돈이 하나도 없는죄수보다 열 배나 고통을 덜 받는다.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 P132

도 관리들처럼 모두 관급품을 배급받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일 죄수들이 자기 돈을 가지고 있을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한다면그들은 미쳐 버리거나 혹은 파리처럼 죽어 버릴 수도 있으며(모든 것이 배급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혹은 들어보지도못한 나쁜 짓에 마침내는 빠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사람은 우수 때문에, 아니면 어떤 사람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형을 받고 없어지기 위해서, 혹은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전문적인 표현이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피땀을 흘려 몇 푼을 벌거나 혹은 가끔 절도나 사기를 동반한 비상한교활함을 발휘해 돈을 벌려고 마음먹은 죄수가 있다면, 그래서 그가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어린아이들처럼 무의미하게그 돈들을 낭비해 버렸다고 해도, 비록 언뜻 보기에는 그렇게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그가 돈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죄수들은 경련을일으키고 이성이 흐려질 만큼 돈을 갈망하고 있으므로, 만일그들이 방탕할 때 실제로 돈을 나무 조각 내버리듯이 던져 버린다면, 돈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하여던져 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죄수들에게 돈 이상의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 혹은 자유에 관한 어떤 꿈 같은것이다. 하지만 죄수들은 그 이상의 것을 꿈꾼다. 이것에 관해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한마디하고 싶은 것이 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20년의 형을 받은 죄수가 아주 조용하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신이 도•우셔서 형기만 끝나면, 그때는ㆍㆍㆍㆍㆍㆍ> <죄수>라는 단어는 자유가 없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돈을 쓰면서 죄수는 벌써<자기의 자유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어떠한 낙인이나 족쇄가 있다고 해도, 그에게 신의 세계를 가로막고 마치 우리 속 - P133

에 갇힌 짐승처럼 둘러싸는 저주스러운 감옥의 울타리가 있다고 해도, 그는 술을 즉 엄중히 금지된 향락을 얻을 수 있고여자를 얻을 수도 있으며, 때때로(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그가 어기는 법률과 규율을 못 본 체해 줄 수 있는 가까운 간수나 상이 군인, 하사관을 매수할 수도 있다. 그는 장사를 넘어 그들 앞에서 우쭐대기까지 하는데, 죄수들은 뽐내는 것을•무척이나 좋아해서, 즉 동료들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며 <한순•간만이라도, 보기보다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이 많은 자유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도 확신하고싶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방탕할 수도 망나니 짓을 할 수도, 누군가를 파멸시킬 정도로 화나게 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자기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즉 그런 것은 돈이 없는 자들은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확신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죄수들에게서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때도 거드름과 오만과 그리고 헛된 망상이기는 하지만 자기개성의 우습기만 한 외적인 허세에 경도되는 일반적인 경향을 찾아볼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주연(酒)에는•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인생의 ㅇ떤 환영과 자유에 대한 요원한 환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넘겨주지 못할까? 어떤 백만 장자가 올가미가 자기의 목을 조르는 마당에한숨의 공기를 위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놓지 않을까?
몇 년 동안이나 온순하고 얌전하게 지내고, 칭찬할 만한•유도 없이, 마치 마귀에라도 씌인 듯이, 농담을 해대고 방탕해지고 망나니 짓을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형사적인 범죄•까지 저지른다면, 혹은 상관에게 노골적으로 불손한 짓을 한•품행으로 죄수들의 대표가 되기도 한 어떤 죄수가 별안간  - P134

다든지, 사람을 죽이고 강간 등을 저지른다든지 하면 간수들도 놀라고 만다. 그를 보기만 해도 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저지르리라고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그 사람의 이러한 돌발적인 폭발의 모든 이유는, 한 개성의 우울하고 경련과도 같은 표명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본능적인 우수이자갑작스레 나타나 증오와 광분과 이성의 혼미와 발작과 경련에까지 도달하고 마는, 자기의 억눌린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산 채로 관 속에 들어가 묻힌 사람은,
그 속에서 깨어나 뚜껑을 두드리고, 뚜껑을 열려고 애를 쓸것이다. 비록 그의 모든 노력은 헛된 일이라는 것을 그의 이성이 납득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성이 아니라 경련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죄수에게서 거의 모든 자의적인 개성의 표명은 죄로 간주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고려하기로 하자. 그러한 경우 표명이 작건 크건 간에그것은 자연히 매한가지이다. 방탕을 하는 것은 무작정 방탕하게 노는 것이고, 모험을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심지어는 살인 같은 모험까지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시작하는길만이 있다. 사람은 일단 한번 취하고 나면 결코 자제를 할수 없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되었건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 편이 좋다. 모든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다. 그러나 어떻게 이처럼 할 수 있는 것인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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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사람들은모두 제각기 전날의 취기로 인해 나타나는 중독과 같은 음산하고 고통스러운, 자기만의 이야기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대개는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별로 이야기하는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흘러가 버린 일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 중에서, 내기를 할수도 있을 정도로, 결코 한 번도 양심의 질책을 받아 본 적이없고 생각조차 잠긴 적이 없는 유쾌한 살인범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고, 거의 늘상말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통 자기 인생에 관해 말하는사람은 드물었고, 그래서 호기심 역시 유행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습관이 되지 못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무료함 때문에 말을 하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은 냉담하고 음울하게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다른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읽고 쓸수 있는 사람이라고!> 가끔 그들은 이렇게 어떤 이상스러운자기 만족감 속에서 말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한강도가(유형 생활 중에도 이따금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어떻게자기가 다섯 살 난 어린아이를 참살했으며, 처음에 어떻게장난감을 가지고 꼬드겼고, 어딘가의 빈 헛간으로 끌고 가거기서 어떻게 죽였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그의농담에 웃고 있던 옥사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한 사람이 그러듯 이구동성으로 고함을 치자 이 강도도 입을 다물고 말았는데, 전 옥사가 소리치기 시작한 것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그런 이야기>는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용납되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강도는, <비유적인 의미>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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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깃들자 우리는 모두 밤새도록 빗장이 걸리는 옥사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우리의 옥사로 돌아오는 일은 내겐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다. 옥사는 유지로 만든 양초가 희미하게 비추고 있고, 숨막힐 듯한 무거운 냄새로 가득 찬, 길고 좁고 후텁지근한 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내가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평상위에 나의 몫이란 세 장의 판자뿐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나의 모든 공간이었다. 이 방 안의 평상에만도 30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겨울에는 일찍 빗장을 지르는 까닭에 모두들 잠들 때까지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웃음, 욕설, 쇠사슬소리, 악취와 그을음, 삭발한 머리들과 낙인 찍힌 얼굴들, 남루한 의복, 이 모든 것이 욕설과 혹평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렇다. 인간은 불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 P22

이 길고 지루한 겨울 밤의 시간 동안에 무엇을 해야 했을까? 그래서 거의 모든 옥사는, 금지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작업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본래 작업과 일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도구들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엄금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것들이 없었다면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러나 너무들 소리 없이 일을 하니까, 간수들은 웬만한 경우가아니면 이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겨 주곤 했다. 죄수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감옥에 오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배워서 뒤에는 훌륭한 장인이 되어 세상에나가곤 했다. 여기엔 장화공도, 단화공도, 재봉사도, 목수도,
열쇠공도, 재단공도, 도금사도 있었다. 이사이 붐쉬쩨인이라는 유대 인도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보석공이면서 동시에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해서, 꼬뻬이까동전 하나라도 더 벌려고 했다. 작업의 주문은 도시에서 얻어 왔다. 돈은 주조된 자유였으며, 그래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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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은 어떤 생각이나 마음 상태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신체의 특정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불안감은 뇌의 편도체의 활성화에 따른 신체적 반응에서 비롯된다. 심장박동의 불규칙한변화, 호흡의 가빠짐, 내장과 근육들의 긴장 등이 발생하고 다양한생리적 변화를 동반하는데, 이러한 신체 변화에 관한 신호를 우리의의식이 특정한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편도체는 위기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알람 시스템과 같다. 위기 상황에서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예를 들어 코르티솔이 분비되고, 이와 함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근육에 에너지가 집중된다. 이러한 신체 변화는 원시시대 생존을 위한 ‘싸움 또는 도주‘ 반응으로, 근육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위기를 극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대인의 경우, 실제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과거의 위기 상황을 회상하고 부정적인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편도체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기 때문에만성적인 불안 상태에 있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여 분노하거나 부정적 미래를 투사하여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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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때문이다.  - P9

서들이 있어요. 이제 당신들 것을 보여주시오. 우선 체포영장을 좀 봅시다." "맙소사!" 감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줄을 모르는군. 지금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리를 쓸데없이 화나게 할 작정이군요." "이 사람 말이 맞아요. 그렇게 믿는 게 좋을 거요." 프란츠가 말했다. 그러고는 손에 든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한참 동안 K를 바라보았다. 뜻하지 않게 프란츠와 서로 쏘아보는 상황이 되었지만 K는 곧 증명서들을 탁 치면서 말했다. "여기 내 신분증명서들이 있어요." "그래서요?" 키 큰 감시인이 바로 소리쳤다. "어린애보다더 고약하게 구는군.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신분증명서니체포영장 같은 문제로 감시인들과 언쟁을 벌인다고 당신의 그 빌어먹을 거대한 소송 사건을 조속히 결말지을 수 있을 것 같소? 우리는 신분증명서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하루 열 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외에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말단 직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신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지만,
그래도 우리를 고용한 상급 관청이 이런 체포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체포 대상자의 신원과 체포사유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소. 거기에는 착오가 있을 수 없지. 나는 말단 부서의 일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바로는, 우리 관청은 주민들에게서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법에 쓰여 있듯이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것이 법이라는 거요. 거기에 무슨 착오가 있겠소?" "난 그런 법은 모릅니다." K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더 불리하군." 감시인이 말했다. "그런 법은 아마 - P1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K는 말을 계속하면서 그들 모두를 향해 몸을 돌렸는데, 사진을 보고 있는 세 사람에게까지 기꺼이 그렇게 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은 그리대단한 사건일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뭔가 고소를 당하기는 했지만, 정말 고소를 당할 만한 경미한 죄도 없다는 사실에서 내리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차적인 것이고, 중요한 건 누가 저를 고소했느냐는 겁니다. 어떤 기관이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거죠? 당신들은 관리인가요? 한 분도 제복을 입지 않았군요. 당신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는 프란츠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제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행복에 가깝군요. 저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해명되고 나면 우리가 서로 아무 유감도 없이 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독관이 성냥갑을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크게 착각하고 있군요."  - P21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썼다. 그러면서 그는 K에게 말했다. "당신은 만사를 참 단순하게 생각하는군! 우리가 이번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아니, 그건 정말 어림없는 일이지.
당신을 절망시키려는 건 아니오. 아니, 왜 절망해야 합니까? 당신은 체포되었을 뿐이오 - P25

체포되었을 뿐이오. 그게 전부요. 나는 당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고, 또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며,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헤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은행에 갈 생각이겠죠?"
"은행에요?" K가 물었다. "체포된 거 아니었소?" K는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청한 악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특히 감독관이 자리에서 일어선 뒤부터는 이들로부터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 P25

K는 심리가 열리는 방을 찾기 위해 계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멈취 쳤다. 마당에는 이 첫번째 계단 말고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개나 더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당 저쪽 끝에는 또 다른 마당으로연결되는 것 같은 작은 통로가 하나 있었다. 그는 저들이 방의 위치를좀 더 자세히 일러주지 않은 데 화가 치밀었다. 이는 분명 이상할 정도로 무성의하거나 무관심한 대접인데, 그는 이 점만큼은 확실하게짚고 넘어갈 작정이었다. 마침내 그는 첫번째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법원이 죄에 이끌리는 것이라는 감시인빌렘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그러자 심리가 열리는 방은 K가 우연히택한 계단 쪽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 P52

그건 곤란하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봐요." K가 말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처벌받기를 원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돈을 써가며 이들을 구해내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요. 나야 간단히 이 문을 닫고나가서 더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고 집으로 가버릴 수 있지요.
그렇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난 진심으로 어떻게든 이들을 구해주고 싶소. 이들이 처벌을 받게 되거나 그리 될지도 모른다는걸 예상했더라면, 이들의 이름을 절대 말하지 않았을 거요. 이들에게죄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죄가 있는 건 조직 자체이고, 죄가 있는 사람들은 고위 관리들이지요." "그건 그래요!" 두 감시인이 이렇게 외쳤다.  - P105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해서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자들. 즉 아직 한 명도 감히 지기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고위 관리들에게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응분의 처벌을 내리리라고 맹세했다.  - P108

그는 최근의 골치 아픈 여러 문제들 때문에 에르나를 완전히 잊고 있었고, 심지어 그 아이의 생일까지도 잊어버렸다. 초콜릿 이야기는 순전히 숙부와 숙모 앞에서 그를감싸주기 위해 지어낸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러니그가 이제부터 그 아이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주려고 작정한 극장표만으로는 분명 충분한 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숙사를 찾아가서 열일곱 살짜리 여고생과 담소를 나눈다는 것도 현재형편으로는 어쩐지 부적절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제 뭐라고 할셈이냐?" 숙부가 물었다. 숙부는 편지 덕에 자신의 조급함과 흥분 상태를 잠시 잊어버리고는 편지를 한 번 더 읽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예,
"숙부님." K가 말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고?" 숙부가 소리쳤다. "뭐가 사실이란 말이냐? 그게 도대체 어떻게 사실일 수가 있어? 어떤 소송이지? 설마 형사 소송은 아니겠지?" "형사 소송입니다." K가 대답했다. "그런데 넌 형사 소송이라는 짐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여기 이렇게 조용히 앉아만 있다는 거야?" 숙부의 언성이 점점높아졌다. "제가 조용히 있을수록 결과는 더 좋을 거예요." K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걱정 마세요." "그런 말로 내가 안심할 수있겠어!" 숙부가 소리쳤다. "요제프, 이 녀석 요제프야. 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친지들과 우리 가문의 명성을 생각해봐! 너는 이제껏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수치가 되어서는 안 돼. 너의 그 태도 말이야" 숙부는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K를 바라보았다. "네 태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죄한 피고인으로서 아직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결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봐. - P115

 조카에 관한 소송이라면기억에 남게 되지요. 그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숙부가 K에게 재차 물었다. "아주 불안해 보이는구나." "법원 사람들과 접촉하신다고요?" K가 물었다. "그래요."
변호사가 대답했다. "어린애 같은 질문을 하고 그러냐." 숙부가 말했다. "같은 활동 분야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와 접촉하겠습니까?" 변호사가 덧붙였다. 그 말은 조금도 반박할 여지가 없어서 K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일하는 곳은 법무부 건물에 있는법원이지 다락방에 있는 법원은 아니겠지요! K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실제로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변호사는 마치 뭔가 당연한 사실을 불필요하게, 그리고 내친김에 설명한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 P129

도 닮았을 리가 없어요. 그분은 거의 난쟁이만 할 정도로 키가 작거든요. 그런데도 그림에서는 저렇게 크게 그리게 한 거예요. 여기 있는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분도 허영심이 엄청 많거든요. 하지만허영심은 나도 많아요. 그래서 내가 당신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다는것이 정말 속상해요." 이 마지막 말에 대해 K는 레니를 껴안아 끌어당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의 어깨에 머리를기댔다. 그리고 그녀가 한 다른 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지위가 어떻게 되죠?" "예심판사예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껴안고 있는 K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장난을 쳤다. "또 겨우 예심판사야." K가 실망해서 말했다. "고위 법관들은 다 숨어 있군. 그래도 저 사람은 옥좌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있네요." "저건 모두 꾸며낸 거예요." 레니가 K의 손 위로 얼굴을 숙이면서 말했다. "실제로는 부엌 의자에 앉아 있는 건데 의자 위에 낡은 모포를 접어 얹어놓은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온통 소송 생각만 해야 하나요?" 그녀가 천천히 덧붙였다. "아니, 아니오." K가 말했다.
"소송에 대해 너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문제일 정도죠." "그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녜요." 레니가 말했다. "당신은 너무 굽히지 않는다고들었어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K가 물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와 닿는 그녀의 몸을 느끼면서 숱이 많고 단단히 땋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그걸 말해주면 너무 많은 것을 발설하게 되는 거예요." 레니가 대답했다. "제발 이름은 묻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있으면 고치시고, 더 이상 그렇게 고집을 세우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고, 결국 자백할 수밖 - P133

에 없어요. 다음번에는 꼭 자백을 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요. 그것이 유일한 기회에요. 그러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도움 없이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그런 도움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직접 도와드릴게요." "당신은 이 법원에 대해, 그리고 거기서 요구되는 사기 관행에 대해 많이 알고 있군요." K는 이렇게 말하고는•너무 세게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그녀를 안아 무릎에 올렸다. "이렇게 해주시니 좋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스커트를 만져서 펴고블라우스도 바로잡으면서 그의 무릎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나서 두 팔을 그의 목에 두르고 뒤로 몸을 젖히더니 한참 동안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만일 내가 자백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를도와줄 수가 없나요?" K가 시험 삼아 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내가 도움을 줄 여자들을 모집하고 있군. 처음에는 뷔로스트너 양, 그다음에는 법원 정리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시중드는 자그마한 아가씨. 그런데 이 아가씨는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마치 내 무릎이 자신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양 앉아 있군! "그럴 수 없어요." 레니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당신을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런데당신은 내 도움 같은 건 전혀 원치 않으며, 관심도 없어요. 당신은 고집이 세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그녀가 물었다. "당신 애인이 있나요?" "없어요." K가 말했다.
"에이,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사실은 있어요." K가말했다. "말로는 없다고 했지만, 실은 사진까지 가지고 다니죠." 그녀가 졸라대는 바람에 그는 엘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가씨는 그의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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