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은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매력적인 야회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피예르는 서툴렀다. 뚱뚱하고 키가 보통 사람보다 크고 어깨가 넓고 큼직하고 붉은 손을 가진 그는 객실에 들어오는 것도 서툴렀지만 나가는 것은 더 서툴렀는데, 말하자면 나갈 때 뭔가 특별히 재치 있는 말을 할 줄 몰랐다. 게다가 그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일어설 때도 자기모자 대신 깃털 장식이 달린 장군의 삼각모를 들고는 장군이 돌려달라고 말할 때까지 깃털 장식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을 놓고있던 것도, 객실에서 서툴게 이야기하던 것도 모두 선량하고 소박하고겸손한 그의 표정이 완전히 메워주고 있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그에게로 돌아서서 기독교도다운 온후한 표정을 짓고 오늘밤 그의 무례를용서한다는 듯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또 뵈어요. 하지만 친애하는 므시외 피에르, 그때까지 당신이 의견을 바꾸었으면 해요.‘ 그녀의 말에 그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가볍게 절하고 또다시 모든사람에게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는 ‘의견은 의견일 뿐, 당신도 보고 계시듯 전 이처럼 선량하고 훌륭한 젊은이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나 파블로브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49
"뭐 때문이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또한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 P55
그들은 새로 꾸며진 우아하고 화사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냅킨에서부터 은그릇, 도자기, 크리스털 식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에 젊은부부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한 신선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녁식사 도중 안드레이 공작은 팔꿈치를 세워 턱을 괴더니, 이전부터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돌연 털어버려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피에르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경질적이면서도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절대, 절대 결혼 같은 건 하지 말게. 여보게, 이게 내가 자네에게 주는 충고야.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리고 자네가 선택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그 여자의 참모습을 명백하게 볼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절대로 하지 말게. 안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는 꼴이 되고 말 테니까. 결혼은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이가 됐을 때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자네에게 있는 훌륭하고 숭고한 것들을 망쳐버리게되고, 모두 보잘것없는 일에 소모되고 말 거야. 그래, 그래, 그래! 그렇게 놀란 얼굴로 볼 것 없네. 자네가 만약 자신의 앞날에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면, 걸음을 뗄 때마다 느끼게 될 거야.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문이 닫히고, 사교계의 객실, 거기서 궁정의 하인이며 천치 같은 작자들과 똑같은 마룻바닥 위에 서는 일만 남게 될 거라는 걸 말이야………… 정말!..." 그는 세차게 손을 내저었다. - P60
피에르는안경을 벗었고, 그러자 얼굴의 느낌이 바뀌어 한층 더 선랑함이 드러났다. 그는 놀란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내 아내는 안드레이 공작은 말을 이었다. "훌륭한 여자야. 내 명예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함께 살 수 있는 흔치 않은 여자 중 하나지. 아아. 하지만 별수없어. 나는 독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치르겠어! 이런 말은 자네에게 처음 하네. 나는 자네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안드레이 공작은 안나 파블로브나의 집에서 안락의자에 팔다리를 쭉 펴고 앉아 실눈을 뜨고 이 사이로 프랑스어를 밀어내던 그 볼콘스키와는 닮은 데가 거의 없었다. 그의 마른 얼굴의 근육이 가닥가닥 신경질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생명의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던 두 눈은 이제 밝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평소활기 없어 보였던 만큼 흥분한 그의 모습은 더 정력적으로 보이는 것같았다. "자네는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못할 거야." 그는 계속했다. "이건 인생 전체에 대한 이야기야. 자네는 보나파르트와 그의 공적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는 피에르가 보나파르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보나파르트 이야기를 하지만, 보나파르트도 일을 하고 한 걸음씩 자기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는 자유로웠어,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리고 그는 그 목적을 달성했어. 그런데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 마치 차꼬를 찬 죄수처럼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지. 그러면 자기 내부에 있던 희망이자힘이었던 모든 것이 그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후회 때문에 자책하게 되는 거야. 객실, 가십, 무도회, 허영, 보잘것없는 일이런 것들 - P61
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일과 학업에 피예르는 경탄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에게 공상적 사색(피예르는 특히 이런 경향이 있었다)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피예르를 놀라게 했지만그는 그것 역시 결점이라기보다 강점이라고 느꼈다. 아무리 훌륭하고 친하고 흉허물 없는 관계라 해도 아첨과 찬사라는것은 바퀴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기름처럼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나는 끝난 인간이야."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해서 뭘 하겠나. 그보다 자네 얘기나 하세." 그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스스로를 달래는 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 미소는 곧 피에르의얼굴에도 반영되었다. "그럼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피르는 태평하면서도 명랑한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말했다. "저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전 한낱 사생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하고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이 말을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름도 없고 재산도 없고...... 별수없습니다. 정말.. 그러나 그는 무엇이 정말인가는말하지 않았다. "저는 아직도 자유로운 몸이고, 그래서 좋습니다. 다만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진지하게상의하고 싶었어요." 안드레이 공작은 선량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애에 가득찬 그 부드러운 눈길 속에는 여전히 우월감이 담겨 있었다. "자네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지금 이 사회에서 오직 자네만이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자네는 행복해. 자네가 원하는 길을 선택하게, 어떤 길이든 상관없어. 자네는 어디에 있든 행복할 테니까. 다만 - P63
"아, 사랑하는 벗이여!"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부인은 대꾸했다. "정말 당신에게 그런 걸 알려주고 싶지는 않아요. 한없이 사랑하는 아들만을 데리고 어디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과부로 살아가는 건 너무나힘들고, 그러자니까 무슨 일이든 배우게 됐던 거예요." 그녀는 약간 뽐내듯이 말을 이었다. "소송이 가르쳐주었지요. 만약 이른바 거물이라는 누군가를 만날 필요가 생기면 나는 ‘모 공작부인이 모씨를 만나뵙고자합니다‘라고 편지를 보내고 가요. 삯마차를 불러 타고 두 번이고세 번이고 네 번이고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가죠." "그러면 당신은 누구한테 보렌카의 일을 부탁했나요?" 부인은 물었다. "당신의 아드님은 벌써 근위 장교인데 우리 니콜루시카"는 견습사관으로 출정하잖아요. 누구 하나 힘써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에요. 당신은 누구한테 부탁했나요?" "바실리 공작한테지요. 그분이 굉장히 친절하게 해주셨어요. 두말없이 응낙하고 황제께 상주해주셨죠."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부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했던 모욕은 깡그리 잊고 기쁜 듯이御말했다. - P97
공작영애에 뒤이어 바실리 공작이 나왔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피예르가 앉아 있던 소파까지 다가가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소파에 쓰러졌다. 피르는 그의 얼굴이 창백하고 아래턱은 열병 걸린 사람처럼덜덜 떨리는 것을 보았다. "아아, 여보게!" 그는 피에르의 팔꿈치를 붙잡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피에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진실함과 가냘픔이서려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속이며 많은 죄를 거듭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럴까? 나는 벌써 예순이야, 여보게…………… 참으로, 나는모든 것은 죽음으로써 끝나지. 모든 것은 죽음은 무서운 거야." 그는 울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나온 사람은 안나 미하일로브나였다. 그녀는 조용하고 느린 걸음으로 피예르에게 다가갔다. "피예르!......" 그녀는 말했다. 피예르는 묻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젊은이의 이마에 키스했고, 눈물이 그 이마를 적셨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분은 이제 이 세상분이 아니십니다......" 피예르는안경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갑시다. 내가 데려다줄게요. 맘껏 울어요, 눈물만큼 마음을 가볍게해주는 것도 없으니까." 그녀는 피예르를 어두운 객실로 데려갔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는 것이 피예르는 기뻤다. - P171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런 어려운 책을 읽는것은 공연한 일이 아닐까요. 이해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이미 아무런 이익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세상에는 흔히 사람의 마음에 의혹만 심어놓는 신비주의 서적을 탐독해서 자기의 사상을 어지럽히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기독교의 소박함과는 정반대의 과대망상을 길러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나는 그러한 사람들의 열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이나 복음서를 읽읍시다. 그리고 설령 이런 것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안의신비적인 면에는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인간과 영원한 것 사이에 꿰뚫을 수 없는 장막을 드리우고 있는 육체라는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이상, 우리 같은 불쌍한 죄인들이 어떻게하느님의 두렵고도 신성한 비밀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구세주가이 지상에 우리의 길잡이로서 남겨주신 위대한 계율을 공부하는 것이 한결 낫습니다. 그것을 지키고 실천하도록 노력해봅시다. 우리가 우리의 부족한 마음에 방종을 허용하지 않을수록,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모든 지식을 거부하시는 신의 뜻에 미치는 결과가 된다는것, 그리고 신이 우리에게 감추는 편이 좋다고 여기시는 것에 깊이파고들지 않을수록, 도리어 신은 그 거룩한 예지로 우리에게 그것을보여주신다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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