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요, 우리는 여기 잠시 앉아 있을 거예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카튜샤는 무슨 벅찬 일이라도 있었던 듯 가슴 가득히 모은 숨을 토해내고는 약간 사시인 온순하고 아가씨다운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의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남녀의 사랑에는 정점에 다다르는 한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에는 의식도, 이성도, 관능도 존재하지 않는다. 네흘류도프에게는 이날 예수부활대축일의 밤이 그런 순간이었다. 지금도 카튜샤를 떠올리면, 이날 밤의 그 순간이 그동안 봐왔던 그녀의 이런저런 이미지들을모두 덮어버릴 정도였다. 반짝반짝 윤나는 검은 머리, 가는 허리와 그리 높지 않은 가슴을 소담하게 감싼 주름 잡힌 흰옷, 발그스름한 볼, 밤에 잠을 설친 듯 사시가 좀더 눈에 띄는, 부드럽고 촉촉한 까만 눈, 그리고 그녀의 용모에는 두 가지 특징이 더 있었다. 순결하고 정결한 사랑, 그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과모든 것에 대한 사랑,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뿐만 아니라 그녀가 입맞춤한 거지에게도 향하는 사랑이었다.
그는 그녀 안에 그런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건 그날 밤과 그날 아침에 자기 안에서도 자각했고 그 사랑 안에서 그녀와 자신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모든 것이 그날 밤 품은 그 감정에서 멈췄더라면! ‘그래, 그 모든끔찍한 일은 예수부활대축일 그 밤 이후에 일어났다!‘ 그는 배심원실창가에 앉아 생각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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