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마치 자신보다 어린 학생을 설득하려는 듯 차분하고 슬프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니. 그러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데아는좋음의 이데아와 관계맺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니. 서울과 베네치아와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의 광장들이 같은 하루에 모두 존재하는 것과 같이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너에게 물었지. 하지만 말이야. 만일 소멸1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
너는 고개를 저었지. 이것 봐.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
네 말을 들은 순간,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그러나 영원히 녹지 않은 채 흩날리는 진눈깨비, 영원히 바닥으로 내려앉지 않는 진눈깨비의 세계는 여전히 어두운 환영처럼 내 눈앞에 펼쳐져있었어.
이것 봐, 라고 너는 다시 달래듯 말했어.
어둠에는 이데아가 없어. 그냥 어둠이야, 마이너스의 어둠. 쉽게•말해서, 0이하의 세계에는 이데아가 없는 거야. 아무리 미약해도•좋으니 빛이 필요해. 미약한 빛이라도 없으면 이데아도 없는거야•정말 모르겠어? 가장 미약한 아름다움, 가장 미약한 숭고함이라도•좋으니, 어떻게든 플러스의 빛이 있어야 하는 거야. 죽음과 소멸의 이데아라니! 너는 지금 동그란 삼각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