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은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았어. 그때 내가 느낀 이상한 절망을 너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여자의 침묵에는 두려운 데가, 어딘가 지독한 데가 있었어. 오래전죽은 삐비의 몸을 하얀 가제수건에 싸려고 들어올렸을 때⋯⋯⋯⋯ 우리가 얼어붙은 숟가락으로 파낸 작은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 P77
세계는 환이고 산다는 건 꿈꾸는 것이다. 라고 그때 문득 중얼거려보았다. 그러나 피가 흐르고 눈물이 솟는다. - P71
잘생긴은하지만 믿을 수 있겠니. 매일 밤 내가 절망하지 않은 채 불을 끈다는 걸. 동이 트기 전에 새로 눈을 떠야 하니까. 더듬더듬 커튼을걷고, 유리창을 열고, 방충망 너머로 어두운 하늘을 봐야 하니까. - P83
오직 상상 속에서 얇은 점퍼를 걸쳐입고 문 밖으로 걸어나갈 테니까. 캄캄한 보도블록들을 한 발 한 발 디디며 나아갈 테니까. 어둠의 피륙이 낱낱의 파르스름한 실이 되어 내 몸을, 이 도시를 휘감는광경을 볼 테니까. 안경을 닦아 쓰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짧은 파란 빛에 얼굴을 담글 테니까. 믿을 수 있겠니. 그 생각만으로 나는가슴이 떨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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