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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이 책을 펼치고서 나는 가수 이적이라는 저자의 설명을 무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런 선입견이 이 책의 순수한 내면을 보지 못하게하는 장애물로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책을 펼치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활자를 먹는 그림책'을 읽고나서 나는 앞으로 나올 많은 단편들이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느꼈고 점점 그 기대가 증폭되어 가다가 '지문사냥꾼'에서 그 절정을 맞보았다.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뛰어나고 기발한 상상력이 각 단편들에 진하게 스며들어 있으며. 박진감 있는 영상적인 묘사로 머리 속에 극장을 들여 놓은 것같은 현장감을 준다.
어느 음혈인의 일부 선조들이 저질른 강제 흡혈로 인해 그들을 '흡혈귀'로 보는 오명을 씻고자 호소하는 이메일 속에는 음혈하는 방법 세 가지가 공개되는데 정말 그럴사하다.
이구소제(귀파기)사 자격증을 획득한 제불찰씨 이야기는 '지문사냥꾼' 다음으로 감명 깊은 이야기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심리적으로 작아지는 제불찰씨가 육체도 따라 점점 작아지면서 귀 속에 아예 들어가서 귀파기를 할 수 있기에 이르는데 이 때부터 그는 특화된 서비스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한 고객이 어릴 적에 자기에게 큰 상처를 준 친구임을 알면서 원한을 풀지만 결국 허무한 죽음을 그 자신도 맞게 되고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간다.
사랑 받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따돌림을 받으며 쫓겨다니는 L(지문사냥꾼)은 그를 거두어준 감찰관에 강한 충성심을 느끼게 되고 그 이유로 그의 명이라면 어떤 잔인한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이행한다. 그런던 중 감찰관의 배신을 알게 되고 그는 그와 함께 죽음을 택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저자의 상상력이 극도로 분출되어 녹아 있다. '단둘이 있을 때는 친절하게 빵을 잘라주던 녀석도 친구들과 썩이면 그에게 침을 b기 일쑤였다.' 이 부분이 계속해서 머리에 멤도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가수 이적은 이렇게 몽상적 소설가로 나를 찾아 왔고 다시금 그의 글을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한 번도 내가 가보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체험케 해 준 그에게 감사를 느끼며...
- 책을 좋아하는 사람 '헤리'
그녀는 이미 책 속에 빠져 있고, 책은 우리를 봉인해 버렸다. 서투른 장난은 때를 놓쳤고, 억지로 몸을 움직이면 그녀가 유리처럼 깨져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언제까지 여기 서 있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언제쯤 책 읽기를 그치고 뒤돌아 나를 찾게 될까. 한낮의 태양은 잔혹하게 내리쬐고, 그녀의 독서는 영원히 계속된다.
- 본문 중 '독서삼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