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
안미선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 낳고 나서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반응은 거의 반반이다. 그럴 줄 모르고 애 낳았냐와 너 혼자만 애 낳고 사냐 우는소리 하지 마라가 두가지. 구질구질하고 갑갑한 게 싫어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앞의 반응이고, 베테랑 아줌마들과 엄마세대, 남자들이 주로 뒤의 반응이다.     

생후 4주 된 아기와 둘만 남게 됐을 때, 내가 엄마를 부르듯이 애도 나를 엄마라 부르고, 내가 엄마한테 이것저것 바라던 걸 애도 나한테 기대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홀몸이었을 땐 부른 배를 하고 뒤뚱거리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꼼짝할 수가 없다. 카페게시판에 들어가 눈팅하거나 댓글 하나 달기도 버겁다. 애가 자는 동안 나도 씻고, 부엌일을 하고, 눈 좀 붙이지 않으면 몸이 버텨내질 못한다. 시간없고, 기동력없는 애 엄마는 이제 어떤 일에든 열외가 된다. 술자리는 물론이고 모임도 언감생심, 창살없는 감옥이라는 소리가 농담처럼 안 들린다.

나도 평생 '나'로 살 줄 알았다. 어떤 학교를 다니든,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내 정체성은 내 손 안에 단단히 쥐고 살 줄 알았다. 길에서 아줌마들을 보면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도 남편과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줌마들은 처음부터 아줌마였을 것 같은, 나랑은 전혀 다른 존재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아줌마다.

알라딘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읽고 싶은 책도 줄줄이 적어놓고,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또 한달이 훌쩍 달아난다. 집에서 하루종일 갓난쟁이랑 있으면 온통 제 시간일거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책 속의 글들은 짧다. 길게 쓸 시간도, 긴 글 읽을 시간도 '엄마 노릇, 아줌마 노릇'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없다. 하지만, 짧은 글들이 계속 떠올려지는 건 엄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었던 내가 엄마가 되고, 아줌마가 되는 '낯선 시간'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우산일 수도 있고, 같이 비를 맞으며 걸어 줄 사람일 수도 있다. 알파맘이 되라고 조언하는 책이나 훌륭한 부모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나도 열심히 구해 읽는다. 하지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답답하고 화나는 심정 그대로를 드러내는 책을 읽으니 어두운 건 감추고 밝고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라고 알게 모르게 시달려 온 내 마음도 위로받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