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완성검사의 정서적·역동적 해석
이흥표 지음 / 깊은우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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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완성검사를 이렇게나 깊이 풀어 쓰다니 놀랍다. 언어에 대한 미세한 감각, 모두들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단어 하나 하나에 내려앉아 이토록 오래 곱씹기 위해서는 얼마나 깊이 사랑해야 할까. 임상과 상담을 공부하는 이들께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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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 - Dandelion
어른아이 노래 / 파스텔뮤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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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의 1집 곡 중에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1집 수록곡은?" 
 내 기억으론 '비틀비틀'과 '상실'이 각각 1,2위를 했던 것 같다.  
  
이제 어른아이의 2집을 들으며 상상해본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2집 수록곡은?" 
 
순위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공감은 보편의 미덕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 
어른아이의 음악은 들을수록 귀에 닿지 않던 새로운 느낌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이 앨범을 처음 틀고 첫 곡 '애너벨 리' 앞부분의 서늘한 파도소리, 난 처음 그것이 비틀비틀의 빗소리인 줄 알았다. 모든 이들이 인정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 곡은, 정말 좋다.(그래서 난 투표를 한다면 주저않고 첫 곡에 표를 던지겠다.)
 
'민들레'의 노랫말 -사라지는 게 두려워, 잊혀지는 게 두려워- 
아이든, 어른이든, 어떤 형식이로든, 이건 매우 솔직한 느낌이다. 이번 앨범의 테마는 단델리온, 그녀의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민들레 홀씨들. 피해 갈 수 없고 누구나 나름대로 견딜 수 밖에 없는 치명적 유한성을 어른아이가 대면하는 방식.  
 
'아주 아주 슬픈 꿈'은 듣기 전에 가사를 먼저 읽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밴드를 해 본 사람이면 그런 꿈 누구나 한 번쯤 꿔 본 적이 있지 않을까. 무대위에서 망연자실 허둥거리는. 누군가 좋아해 본 사람이면 그런 꿈 꿔 보지 않았을까.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버림받음.  
  
'서성이네'는 의외였다. 앨범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한 어른아이의 황보라가 부르는 재즈풍의 가요랄까. 나에겐 무척 색다른 느낌이다. 
 
'You'는 가사를 마지막까지 새겨듣지 않으면 슬픈 이별노래라고 생각할 거다. 
-이제는 웃으려 네게 달려가-는 노래를 이렇게 가슴 아픈 멜로디에 담고, '아주 아주 슬픈 꿈'에 대한 노래는 그렇게 가볍고 경쾌하게 부르다니. 노래의 역설. 
 
 
어른아이의 2집 [Dandelion]은 네이버 6월 2주, 이 주의 국내 앨범에 선정되었다. 
선정위원들의 말을 옮기는 대신 황보라의 소감을 옮겨본다. 
 
<이번엔 그냥 텅 빈 그대로, 주워담지 못한 마음 그대로 조금 천천히 흐르고 싶었을 뿐이고, "지금 내 상태랑 똑같아서 나한테는 참 정직한 앨범이다."라고 나는 말할 수 있겠네요.> 
 
'행복에게', 'Fool', '어쩔 수 없다고 내게 말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내게 말하지 마!', 'You', 'I wanna b'... 
내가 모르던 그녀의 사랑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떠올려본다.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면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랑이, 그 파도가 마지막 트랙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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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
안미선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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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나서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반응은 거의 반반이다. 그럴 줄 모르고 애 낳았냐와 너 혼자만 애 낳고 사냐 우는소리 하지 마라가 두가지. 구질구질하고 갑갑한 게 싫어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앞의 반응이고, 베테랑 아줌마들과 엄마세대, 남자들이 주로 뒤의 반응이다.     

생후 4주 된 아기와 둘만 남게 됐을 때, 내가 엄마를 부르듯이 애도 나를 엄마라 부르고, 내가 엄마한테 이것저것 바라던 걸 애도 나한테 기대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홀몸이었을 땐 부른 배를 하고 뒤뚱거리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꼼짝할 수가 없다. 카페게시판에 들어가 눈팅하거나 댓글 하나 달기도 버겁다. 애가 자는 동안 나도 씻고, 부엌일을 하고, 눈 좀 붙이지 않으면 몸이 버텨내질 못한다. 시간없고, 기동력없는 애 엄마는 이제 어떤 일에든 열외가 된다. 술자리는 물론이고 모임도 언감생심, 창살없는 감옥이라는 소리가 농담처럼 안 들린다.

나도 평생 '나'로 살 줄 알았다. 어떤 학교를 다니든,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내 정체성은 내 손 안에 단단히 쥐고 살 줄 알았다. 길에서 아줌마들을 보면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도 남편과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줌마들은 처음부터 아줌마였을 것 같은, 나랑은 전혀 다른 존재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아줌마다.

알라딘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읽고 싶은 책도 줄줄이 적어놓고,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또 한달이 훌쩍 달아난다. 집에서 하루종일 갓난쟁이랑 있으면 온통 제 시간일거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책 속의 글들은 짧다. 길게 쓸 시간도, 긴 글 읽을 시간도 '엄마 노릇, 아줌마 노릇'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없다. 하지만, 짧은 글들이 계속 떠올려지는 건 엄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었던 내가 엄마가 되고, 아줌마가 되는 '낯선 시간'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우산일 수도 있고, 같이 비를 맞으며 걸어 줄 사람일 수도 있다. 알파맘이 되라고 조언하는 책이나 훌륭한 부모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나도 열심히 구해 읽는다. 하지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답답하고 화나는 심정 그대로를 드러내는 책을 읽으니 어두운 건 감추고 밝고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라고 알게 모르게 시달려 온 내 마음도 위로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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