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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평점 :
이 소설은 미래의 어느 시점, 사람들이 늙어가는 장기를 하나하나 임플란트로 교체할 수 있게 된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론적으로는 영생이 가능한 미래. 물론, 장기 구독료 누진세로 천문학적인 장수세가 붙는다. 건강하게 영생을 누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현실. 이 책의 주인공인 유온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장 임플러트 구독료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몇일을 고급스러운 라이브 재즈바에서 울며 하소연을 할 때 유온에게 다가온 한 사람. 그는 유온에게 우는 모습이 예쁘다며 ‘가애’라는 직업을 추천한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유혹해서 연인이 된 다음에, 그 사람이 죽으면 유산을 받는 직업. 유온은 로맨스 스캠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는 당장에 돈을 벌기 위해서 ‘가애’. 외롭게 죽을 사람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장기를 임플란트로 교체할 수 있다는 근미래, 교체하던 방식과 다르게 장기 구독료로 바뀌어서 천문학적인 세금이 붙는 현실성, 그리고 예정된 죽음과 함께하는 ‘가애’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길 때쯤에 만나게 되는 오래된 오랜지처럼 건조한 표정의 성아. 유온은 성아의 접근방식을 보며 그녀 역시 ‘가애’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만나면 시간 낭비에 불과한 사이이지만, 성아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유온. 사랑보다 생존이 먼저가 된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의심 없이 사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영원한저녁의 연인들 추천한다.
@rabbithole_book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속구절
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p.11~12
그녀는 우리가 함께 갔던 장소들에 관하여 계속 이야기했다. 마치 내가 버디를 쓰지 않는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잊어버린 모든 추억을 상기시켜주려는 것처럼. 나는 미소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그녀가 마음껏 말하게 두었다. -p.24
우리는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조용히 죽었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마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 -p.29
결과적으로는 ‘아프고 오래 사는 것보다는 조금 일찍 죽더라도 아프지 않은 게 낫지 않느냐’내지는 ‘어차피 병원비가 없어서 죽는 거나 장기 구독료를 못 내서 죽는 것이나 똑같다’하는 분위기가 주류가 되었다. 물론 양쪽 다 밑바탕에는 구독료 폭탄을 맞는 건 그 개인이 제대로 살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p.55
-하지만 아이를 싫어한다면서 왜 보육원 봉사를 왔죠?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싫어하니까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서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인 채로 끝나지 않고. / 그렇게 말하는 성아의 표정은 어쩐지 오래된 오렌지처럼 건조해 보였다.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