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화 / 조두진 지나간 역사의 비극은 단지 몇 줄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른 먼지 폴폴 날리는 메마르고 희미한 과거의 시공간이 뿐이다. 그곳에다 물을 대고 꽃을 피우는 건 오직 상상력만이 해낼 수 있다. 작가의 무한하고 경계 없는 상상력은 그곳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를 창조해내고, 그 안에서 실핏줄까지 끄집어낸다. 이 책은 임란 당시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붙들려간 안철영과 그의 아내 유이화의 삶을 독특한 프리즘을 통해 실감나게 비춰보인다. 작가의 한겨레 문학상 당선작인 <도모유키>가 조선 땅에서의 '왜군의 수난기'라면, <유이화>는 일본 땅에서의 '조선인 수난기'인 셈이다. 얼추 짝이 맞다. 왜군이 진주성을 공략하러 몰려오고 조선 선비 안철영은 안절부절못한다. 어린 아들이 열병에 걸려 있고 의원은 피난 가고 없다. 아이를 지키자니 백성 된 자로서의 도리가 아니고 참전하자니 아픈 아이와 아내가 걸린다. 아내는 아이가 정신이라도 차리면 떠나라고 남편을 잡는다. 그러나 남편은 이런 말을 남기며 기어이 떠난다. "위로는 군왕과 아래로는 부모님이 계시는 나라요. 나라가 이 지경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마당에 아이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기 위해 화급을 다투는 일을 미룬다는 것은 장부의 도리가 아니오. 나는 그렇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소." 진주성은 무너진다. 철영은 포로로 잡히고 그의 아내도 잡힌다. 철영은 먼발치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지만, 결국 아내는 왜국의 농노로 팔려가 버린다. 철영은 높은 문장과 글 솜씨 덕에 일본 무장의 아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발탁되었고, 아내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왜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세월이 지나, 아무리 찾으러 다녀도 없던 아내가 어느 날 우연히 일본인의 처가 되어 나타난다. 아이도 이미 둘이나 달려 있다. 철영의 아이는 자신이 떠난 지 사흘만에 죽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기막힌 운명에 그들은 통곡한다. 이윽고 철영이 말한다. "당신의 허물을 용서하겠소. 나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당신이 마지못해 겪어야 했던 일과 도리 없이 선택해야 했던 일을 입에 올리지 않겠소. 난세였소. 난세의 일을 잊고 이제 새로 태어난 것이라고 믿으며 살고 싶소." 아내는 대번에 "허물이라고 하셨습니까?"라고 날카롭게 받는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면 일본인 남편과 아이들도 모조리 죽이겠다고 말한다. 아내는 차라리 다 죽여달라고 한다. 죽었으면 죽었지 다시 아이를 버리지 않겠다 한다. 그러면서, 아픈 자식을 버리고 떠난 당신은 나라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철영은 할 말을 잊는다. 이 책에서 '철영'은 그 당시 '시대정신'을 집약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忠이라는 대의명분이야말로 처자식의 안위보다 먼저이던 시대. 그러나 그 충을 심지처럼 받들던 조선 선비도 아내를 찾기 위해 일본의 사무라이라는 칭호까지도 받는 걸 보면 그 강건한 이데올로기도 인간의 한계상황에선 얼마나 어이없이 무너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도 말한다. 조선선비들의 그러한 절개는 '미숙아의 그리움' 같은 것이라고. 그것이 현실에선 얼마나 허약한지를.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의 힘은 막강하다. 지금은 충과 효 대신 '돈'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물론 그것 또한 얼마나 맹목적이며 모순적이며 허술한지 지금은 모른다. 그 가운데 있을 때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밝혀질 때쯤이면 우리들의 현재적 삶 또한 무미건조한 역사책 속의 두어줄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까뮈가 말했다던가.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누면 나는 어머니 편에 서게 될 것이다."라고. 어느 시대든 개인과 공동체. 혹은 안과 밖, 그것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것을 알맞게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이 대변하고 있듯이 조선 시대에 꽃피웠던 유교는 나라를 위해 개인을, 밖을 위해 안을 과도하게 희생시킨 시대였다. 작가는 그것을 '삐딱하게' 표현한다. 삐딱함은 작가의 전략이다. 그래서 조정 대신들과 나랏님 등 소위 '윗분'들의 무능을 싸잡아 희화화하고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