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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전2권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미래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어 내려가다 지난 봄 끼워 놓았던 꽃잎을 발견했다.
붉은색 튤립은 아주 칙칙한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이 오렌지 픽시 꽃잎은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오렌지 빛을 여태까지 간직하고 있다.
학창시절 길거리에 떨어진 단풍잎을 고이 말려 보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익히 이 즐거움과 가슴 두근거림을 알 것이다.
이 책'소유'는 내가 우연히 마른 꽃잎으로 지나간 시간의 추억을 떠 올리는것 처럼 아주 우연히 발견 하게 된 유명작가의 사적인 편지로 인해 시작되어진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계관시인인 '랜돌프 헨리 애쉬'를 연구중인 '롤랜드 미첼'은 어느 날 런던 도서관에서 한 번도 열람되지 않은 애쉬의 책을 보게 된다.
그 책에는 작가 자신의 육필로 된 여러 잡다한 기록들이 있었고 그 중에 누군가에게 보내는 연서로 추정되는 편지 2통이 들어있다.
경애하는 여인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엄밀히 말하면 각기 다른 2통이 아니라 먼저 쓰고 다시 고쳐 쓴듯한 편지 한 통의 편지이다.
때는 1986년,롤랜드의 나이 29세.
현재의 그는 촉망받는 학자도 아니고 지하 셋방에서 여자 친구가 타이핑을 해서 받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엄격한 교수밑에서 의기소침하고 주눅 들어 있던 그는 학구적인 호기심으로 인해 이 편지를 감히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몰래 훔쳐 나온다.
아내를 사랑하는 연시를 많이 남긴 애쉬가 분명 다른 여인을 사랑했던 것이라 믿고 그 편지에 써있는 1858년 6월의 조찬 모임에서 애쉬의 마음을 앗아간 미지의 여인이 '크리스타벨 라모트'라는사실을 알게 되고 라모트의 전문가인 '모드 베일리' 박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롤랜드와 모드는 신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학문적 동지라는 결속으로 함께 기나긴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여러 시인들과 작품들이 나오고 이 애쉬라는 시인이 실존인물이었던가?하는 의문도 들고 롤랜드와 모드,그리고 애쉬와 라모트를 통해 사랑이란 과연 소유인지,무소유인지를 생각하게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A.S바이어트의 섬세하고도 정밀한 묘사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서 느꼈던 지적 환희 만큼 이 작품 역시 오랫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는 만족감이 든다.
문장 속의 단어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묘사가 탁월하다.
상하 2권을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을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라모트와 애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작품속 공통점으로 나타난 단서는 그들이 함게 여행을 떠났었다는것을 말해 주고
레즈비언이었던 라모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데,
애쉬부부에게는 사랑과 신뢰는 있었으나 자식은 없었다는데,
라모트가 심령술 강회에 자주 참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처음 발견했던 그 편지의 결말은 애쉬부부의 무덤 속 마지막 편지로 완성이 된다.
애쉬가 병중일 때 라모트로부터 애쉬 부인에게 2통의 편지가 배달 된다.
한 통은 애쉬에게 보내는 편지이고 나머지 한 통은 애쉬에게 그 편지를 전할지 ,전하지 않을지를 결정권을 애쉬부인에게 일임하는 편지이다.
편지의 수신인은 남편이니 남편것인가? 애쉬부인에게 전권을 부여했으니 애쉬 부인것인가?
애쉬 부인은 이 편지가 괜시리 남편의 병세를 악화시킬까 봐서 전하지 않기로 한다.
애쉬는 다른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것들은 다 불태워 없애라는 유언을 남기고 애쉬 부인은 그 전하지 않은 편지를 상자에 넣어 남편과 함께 묻어 준다.
그 시대 교양있는 부인네들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남편의 고백으로 불륜을 알게 되고도 평생을 헌신했으며 불륜의 상대가 보내 온 편지는 남편의 사후에라도 뜯어 볼 수 있었을텐데 자기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은 남편에게 보내다니...
상대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사랑을 소유하지 않으려 한 그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까?
그 사랑은 실패한 사랑일까?
낭만적인 편지교류로 시작해서 매 순간을 진실로 사랑했던 연인들.
그들의 비밀스런 사랑을 찾아가며 새로운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는 또 다른 연인들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무엇이든 쉽게 취하고 사랑은 변하고 움직이니까 역시 책임과 신뢰가 희박한 우리 시대의 빠른 시각으로는 인내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나 역시도 아이들을 소유하고 있지나 않은지,
남편을 지나치게 옭아매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너무 많은것을 내 소유라고 끌어 안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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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많.다.
내가 욕심내서 갖고 있는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