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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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두고 주일 오후예배도 없어 대예배후 성가대연습만 마무리하고는 바로 오송도서관으로 차를 몰고 가는 길에 30여분 차안에서 음악을 크게 들으며 비오는 도로를 달리는데 차창으로 날리는 빗방울의 촉감이 가을비라 그런가 쓸쓸하면서도 참 기분이 좋았다. 비오는 거리는 한산하고 이대로라면 어디든 멀리 운전해 가고팠지만 내일은 출근이라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도서관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는 세계문학수업 강사쌤이 말씀해주셨던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를 읽어내려갔다.

미국 뉴욕 월가를 배경으로 산업화, 도시화된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주의를 비판한 수작으로 오직 돈으로 환원되버린 인간상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이렇게 살다가 어떻게 끝이 날지 상상하자니 바틀비처럼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허무하게 끝이 나는건 아닐까 싶어 산다는게 갑자기 아무 의미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 바틀비가 변호사의 작업지시를 거부하며 했던 가장 유명한 표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 문학시간에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던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도 중요하다”며 퇴직 후 그렇게 자유하려고 노력하신다는 수강생이신 나이 지긋하신 분의 말씀을 들으며 내게도 할 자유만이 아닌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원치않는 일로 상대방의 요구에 ‘No’라고 언제든 반응했던가 따져보니 내겐 그렇게 미움받을 용기가 언제나 부족했다는 것이다. 배려라는 미덕에 신앙적으로도 나를 낮추어 남에게 맞춰 사는것이 옳다는 도덕적 강요로 스스로를 강제하며 살았던것 같다. 더욱이 여성으로서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빠지기 쉽기도 하다.

이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집어들었다. 다음주는 여류작가의 책들이 텍스트라 먼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빠져들어 읽었고, 정말 다음주 문학시간에는 관련영화 “The hours”를 보기로 했다. 오만과 편견은 워낙 유명해서 각자 보기로 했다. 강사샘이 이야기해주신 여류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대를 뛰어넘는 정체성을 가지고 멋진 글을 썼고 시대에 굴복하지 않으며 도전했던 그녀들의 삶자체가 정말 눈부시다는 생각이 들으며 전에 읽었지만 작가의 삶과 시대상을 이해했으니 다시 제대로 읽을 수 있을듯하다.

긴긴 연휴 책과 영화로 보내려니 쫒기듯 읽던 활자들이 이젠 길게 늘어서있는 기찻길처럼 누워있는 느낌이다. 책속으로, 그 길로 여행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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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위대한 개츠비 - 세계문학전집 007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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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김영하 번역본 ebook으로 구매해 읽고 영화도 보았다. 세번째 읽은셈인데 솔직히 이제야 개츠비와 데이지, 톰, 닉, 윌슨의 내면을 면밀하게 이해되었으니 책이란 나에게 다가오는 시점이 따로 있는듯 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상상속에서 삶을 견디며 그 환상속의 이미지를 지어가며 육체는 물질적인 현실을 살지만 정신과 영혼은 보이지 않는 저마다의 비물질적인 세상속을 살아가는 것 같다. 문학, 예술, 종교, 신앙, 사랑등에 기대어사는 모습이 그렇다. 두세계를 오가며 얼마나 균형을 잘 맞춰 살아가느냐가 온전한 삶을 완성하는 기준이 될것같다.
함께 본 또다른 영화 “Another Year” 메리라는 여자에게 이입되어 그녀의 선택과 삶, 사랑의 방식이 어쩌면 내 모습이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에 정신이 확깼다. 문학과 영화로 또한번 나를 만나는 시간..이런 시간들이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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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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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오늘까지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나 결혼이주여성같은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가나 사회, 공동체가 암암리에 행하는 차별과 고용불안, 혐오 및 재난등이 그들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에 대해 연구하며 조사한 것들을 정확한 데이터와 자료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턴/레지던트들의 과중한 근무환경, 쌍용차 해고노동자 건강연구, 소방공무원의 심각한 인권상황, 한국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연구, 세월호 특조위 책임연구원으로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와 각종 소송들-삼성반도체 직업병, 동성결혼, 트렌스젠더 병역면제, 군형법 위헌 소송등 직접 법정 증언과 전문가로 소견서 제출로 참여한 수 많은 경험들속에서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 그에 따른 사회의 책임이 무엇인지 언론 및 공동체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함께 고민하고 나누며 답을 찾아가고자 질문을 던진다.

관점을 전환할것을 요구하며 질병이 개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원인이 상당함을 피력하며 한국사회의 건강불평등을 말하는데 공감이 갔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감하며 아픈 사람들이 많은 아픈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순식간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함께 고민하며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작가의 말처럼 지금 현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비를 맞아주는 따뜻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하지 말고 ‘함께’ 있어주는 것.

책 마지막페이지 김승섭 교수의 말이 계속 마음속을 맴돌며 폐부를 후며파고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당부 할게요.
상처 받는 거를 두려워 하지 마세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을 간직 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 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기심을 채우는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 보도록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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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다.
제목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고 내용은 잘 모르는게 ‘고전’이라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는 너무 달라서 많이 놀라고 당황스럽기까지 했고, 내가 이해하는 일반적인 성경속의 ‘좁은문’과 지드가 말하고 싶었던 ‘좁은문’사이에 거리감이 많이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지드가 말하고 싶었던 ‘좁은문’이 더 현실감있게 다가오며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의 문제를 좁은문, 좁은길에 빗대어 다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온전한 선을 추구하고 완벽하게 거룩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구도자같은 유미주의자인 알리사를 보며 그녀가 꿈꾸고 열망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성스러운 한 인간으로 살고자 너무나 애쓰는 모습을 보자니 참으로 대단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을정도의 불가능한 완벽에 대한 집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속여가면서 스스로를 억누르며 자기가 만든 환상의 세상속에 자신을 가두고 헤메다가 결국 죽음에까지 이를 수 밖에 없었던 그녀가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와 무겁게 의식이 내려앉으며 깊은 상념에 빠져버려, 또 다시 책속에 너무 이입되어버린 내 자신을 보며 손사래를 치곤 어서 잠이나 자자며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교회라는 장소, 건물과 성경속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처소라고 말씀하신 대로라면 우리 모두가 교회일텐데 어딜가나 인간들이 사는 곳이면 있을법한 문제들이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너무 만연해있고 그저 교회라는 울타리의 ‘또 다른 세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서 더욱 온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수 밖에 없는 곳이 교회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나자신은 어떠한가 반문해본다. 거룩하고자 하나 그렇지못한 속된것들, 더러운 것들이 얼마나 많는지. 그러하니 남들에게 아름다움과 선함을 기대하는건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는 일임에 분명하다.

책속에서 알리사가 추구했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천국이 아닌 다음에야 세상속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의 타협도 필요하고 인정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고 믿는다. 물론 긴 삶의 여정으로 보자면 성화되어가는 과정이라 여기면서, 현재 지금의 자신을 온전히 볼수 있어야 하겠고, 부족하고 아름답지 못한 부분까지도 끌어안고 환상을 쫓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충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보는 일조차 거부한 그녀가 과연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세인걸까?

지인과 가볍게 대화중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 이유를 말하길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감정도 식고 상대방의 못난 부분도 다 보게 될텐데 그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그렇게 허물어질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대로 하고 결혼은 현실적으로 선택했다고 자신의 실제 경험이기도 하다나. 누구나 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사는것 같다. 나를 돌아볼때 진정으로 사랑이라는걸 해 보았나 싶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심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믿는 사랑은 현실에 기초한 사랑이다. 때론 낭만적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감정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고 현실에 뿌리를 내릴수 있는 견고한 사랑이 더 단단하지 싶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내게도 두 얼굴이 있듯이 상대방도 마찬가지. 한쪽면만 보면 환상만 부풀어 오른다. 그런 신화를 상대방에게 씌우면 얼마나 큰 짐이되겠는가. 미숙한 사랑이다. 이기적인 사랑이다. 양면을 다 보려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만큼 서로 정직하게 보여주어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서로 제대로 보여주는 용기. 또 제대로 보려는 의지적인 용기. 사랑한다면 모두다 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겠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모두다 각자의 사랑을 한다. 서로 사랑한다해도 같은 사랑일 수 없는것 같다. 이 책속에서도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 죽을만큼 사랑하는 것은 맞다. 단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부족해 보였다. 알리사의 그런 예민한 기질을 이해해주고 먼저 다가가서 좀더 과감히 행동하지 못하고 오히려 알리사에게 압도당한듯 끌려다니며 참 소심한 모습으로 당황해하며 늘 자신의 생활속으로 도피하듯 도망치는 그를 보고있자니 알리사만큼 제롬 역시 참 답답했다.

「체실비치에서」라는 책속에서도 서로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갑작스럽게 펼쳐진 상황속에서 상대방을 그저 홀로 내버려둔채 자신만의 세계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그런 안타까움이 이책에서도 느껴졌다.
두 책 모두 주인공들은 결국엔 서로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지만 그저 평생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 사랑이라는것 정말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사랑, 참 쉽지 않음을 문학을 통해 또 한번 깨닫는 지점이었다.

뭐하나 제대로 행동으로 해보지도 못하고 너무 많은 말들과 글(싯구, 편지, 일기)들만 의미심장하면서도 공허하게 난무하다 끝나버린 책 「좁은문」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 참, 사랑에 대한 속 깊은 감정과 생각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앙드레 지드의 세밀한 감성적인 글들이 내면 깊은 곳을 울리게 해주어 읽는 내내 푹 젖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긴 했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길, 혼자서 밖에 걸을 수 없는 좁은길이라는 표현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앞서가며 때론 따라가며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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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부클래식 Boo Classics 1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두행숙 옮김 / 부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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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인문학 책이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집어들었다.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때 범우사에서 나온 얇은 이책을 시내에 나가는 분께 부탁해서 구입해 읽은지 33년만이다. 겨울이 유난히 혹독했던 강원도 산골에 살았던 그 시절, 계몽사 방판아저씨로부터 엄마가 사주신 몇몇 세계 명작동화와 창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등의 접집들이 내 유일한 어린시절 글읽기였고 책이 귀한 때였기에 읽은 책을 되풀이해가며 읽고 또 읽곤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집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참으로 외진 농촌 산골 마을로 대암산 아래자락에 위치해 양구 시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번만 운행하는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그시절 왕복 한시간이 넘게 걸어서 다녔던 국민학교도 오래전 폐교가 되었다고 들었다. 아빠는 직업군인이셨고 엄마는 군사지역 특성상 주말이면 면회온 전국각지의 부모들과 친구, 애인들이 묵을 수 있는 그런 여관을 하셨다. 내 유년시절은 부대 내무반에서 군인아저씨들과 공기놀이하며 지냈던 일, 부대에서 먹었던 맛있었던 카레와 생선튀김, PX에서 아빠가 사다주신 병으로된 베지밀과 아직도 혀밑에 달콤함이 느껴지는 그당시엔 커보였던 크라운 산도,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볏단을 역어 만든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비를 피해 들어갔던 그런 움집같은 곳에 숨어 들었던 일, 방과후면 항상 친구들과 들과 산으로 개울로 헤집고 다니며 모험했던 일상들로 가득 차있다. 그때를 더듬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빛으로 찬란했던 그저 나로 충만히 존재하고 또 존재했던 그것만이 다였던 세계가 떠오른다. 아마 내 평생에 가장 유토피아적인 이상적인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시골에서 대도시로 전학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중2때까지 전원생활을 누렸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내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근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떠나온 후로 아직까지 다시 가보지 못해서인가 꿈속의 장소만 같다.ㅠㅠ

군불을 지핀 방의 아랫목에 배를 깔고 뒹굴거리며 읽었던 책중에 세계전래동화를 가장 즐겨 읽었다. 글을 읽으면 머릿속에선 영상이 쫙 펼쳐진다. 그런 환상의 세계를 공상하며 내가 사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또다른 멋진 세상이 존재하리란 막연한 동경으로 무한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런 시간들을 참 좋아했다. 한창 사춘기를 겪으며 중학교로 넘어가던 시기 좀더 읽기를 넓혀가며 읽은 책들이 괴테의 이 책을 시작으로 워즈워드의 시집, 철학 입문서들, 헤르만 헤세의 책들이었다. 얼마전 <데미안>도 다시 읽었지만 요며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꺼내 읽고 있으니 어릴적에는 정말 온전히 이해하며 읽지 못했구나 싶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읽다 울다를 몇번 반복해가며 읽었다. 베르테르가 죽음을 결심하며 토로하는 글들은 너무 가슴아파와 마음을 절름거리며 읽었다. 1774년에 쓰여진 책이니 200년이 더 된 그시절에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내면적인 일은 이다지도 변함이 없는지..아마도 진실되이 철저히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자들은 같은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시대가 언제이든 그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고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으며 그저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강인하면서도 한편으론 한없이 연약한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얼마전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이 생각나며 좀더 이성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감정에 매몰되어 스스로 파괴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베르테르를 보며 또다시 절감하면서 이성적 인간되기가 내게도 많이 필요한 부분임에 공감한다. 올초 방문했던 목사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조언도 바로 그것이었다. 감정을 좀 절제하라는. 나도 감성적인 인간이기에 그 조언을 가슴에 새기며 아프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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