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꾸제트
질 파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하늘을 죽이고 싶었다

어느 시인의 형이상학적 표현처럼 들리는 이 말은 9살 소년 꾸제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무척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모든 원망을 하늘에다 퍼붓는 엄마를 구하기 위한 어린아이의 바람이었다. 허황되고 쓸쓸하고 슬픈 바람이다.

 

언제나 낡은 안락의자에 푹 파묻혀서 한 손엔 리모컨, 다른 손엔 맥주캔을 들고 있는, 맥주와 텔레비전에 쩔어있는 엄마는 꾸제트에게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고 툭하면 쥐어박거나 따귀를 때린다. 영계와 도망간 남편을 향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불만을 꾸제트에게 퍼붓는다. 상처로 인한 원망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어린왕자가 만난 술주정뱅이처럼 원망과 불만에 빠진 자신을 제대로 대할 수없어 맥주를 달고 사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자신을 쥐어박은 것과 하늘에 대고 투덜거리는 것이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꾸제트는 하늘을 향해 총을 쏜다. 하늘을 죽이면 엄마가 맛있는 야채죽도 끓여주고 자기와 놀아주기도 하고 맥주와 텔레비전에서 벗어 날 것 같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총을 쏜 이유가 분명했다.

 

꾸제트 쏜 총을 뺏으러다 나자빠진 엄마에게 꾸제트는 많이 아파요?’요 하고 묻는다. 이 말이 너무도 어이없고 천진하게 들리지만 꾸제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점점 깊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랑이 속에 결국 총이 발사되고 엄마는 죽는다.

 

엄마를 죽인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졌지만 꾸제트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배가 고파 빵을 먹고 엄마를 피해 다락방으로 피한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다.

 

엄마의 사건을 담당한 경찰 레이몽과의 첫만남도 꾸제트의 다락방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레이몽은 불안해 하는 꾸제트에게 아주 다정하게 사건의 경위를 묻는다. 꾸제트는 하늘이 엄마를 망쳐나 하늘을 죽이고 싶어 권총을 쏘았다고 말한다. 권총이 저절로 발사되어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꾸제트는 복받치는 눈물을 쏟아낸다.

 

레이몽은 꾸제트를 감화원으로 보낸다. 레이몽과 함께 있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지만 꾸제트는 레이몽을 의지하게 되고 그런 꾸제트의 마음을 레이몽이 알아채고 매주 일요일에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감화원에는 세상에 있는 각양각색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함께 지낸다. 꾸제트와 함께 방을 쓰게된 시몽은 감화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정통해 있고, 아빠가 감옥에 간 아흐메드는 매일 침대에 오줌을 싼다. 꾸제트는 시몽은 세겨루기를 하지만 둘은 금방 단짝이 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시몽을 우러러 본다. 이밖에 사전놀이를 하는 앙투안형제, 늘 코를 파는 베아트리스, 늘 아프다며 자신을 알아달라고 징징대는 쥐쥐브, 머리로 얼굴을 다 가리는 알리스 등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감화원 아이들이 마음을 로 마음을 터가는 아이들이 말하는 부모들의 모습과 세상 어른들의 모습을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모로서 책임을 온데 간데 없고 폭력과 알콜중독, 매춘, 범죄, 심지어 시몽의 엄마 아버지는 모두 마약중독자다. ‘싫은 부모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시몽은 고아가 무엇이냐고 묻는 꾸제트에게 고아는 아무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가 고아라고 한다.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 같은 부모지만 시몽은 그런 부모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꾸제트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감화원에서는 로지가 우리 모두를 사랑해 주니까 우리는 고아가 아니라고 한다.

 

꾸제트에게서 자신은 안중에 없고 맥주를 마셔대며 텔레비전만 보는 엄마는 부모가 아니라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꾸제트와 시몽의 대화는 부모에 대한 의미를 다시 고찰하게 한다.

 

이런저런 일로 아니 개인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겠지만 배우자가 바람이 나 떠났거나 세상을 달리하는 일을 겪는 어른들의 모습은 참으로 어른답지 못하다. 사랑스럼 꾸제트와 단짝인 카미유를 입양하는 레이몽도 아내를 잃고 긴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아들 빅토를 돌보지 않고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오로지 소파에 눌러앉아 술만 마셨다. 아이들에게 신처럼 굴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에 좌절하고 자신을 놓아버리고 자식에 대한 책임을 던져버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부모가 아이들 을 잘 보살피는 것은 물론 나의 상처를 잘 극복하는 지혜와 방법이 중요하다.

 

아내를 잃고 자신도 잃을뻔한 레이몽이지만 꾸제트를 만나면서 어쩌면 진정한 어른으로 진정한 아빠로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레이몽이 꾸제트에게 보여주는 애정은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닦달하거나 무관심하지도 않으며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요구하는 것들 중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마음과 행동이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꾸제트의 마음에 봄을 가져다 준 까미유, 더 이상 하늘을 죽일 필요가 없게 한 까미유는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세상은 놀이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극복한다. 아이들이 가진 상처는 다양한 형태의 버릇들을 만들어 놓았고 아이들은 쉽게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 싸우고 이해하며 감화원 복지사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 지독한 버릇들을 극복하지만 또다시 꾸제트와 까미유의 입양소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무서운지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아이들이 가급적 상처를 입지 않고 혹 상처가 생기더라고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상처를 입고 고통속에 있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이게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에게 입힌 상처가 얼마나 끔직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꾸제트처럼 친부모가 아니어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준다면 누구나 부모가 되고 가정이 될 수 있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음을 저자 질 파리는 내이름은 꾸제트를 통해 조용히 설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