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자서전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지음, 양은모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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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한 나는 무엇엔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음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쓰고, 시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소설을 쓰고, 소설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철학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음악이 모든 장르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예술의 최고 경지는 음악이고 누구나 음악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올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선정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국어시간에 배운 문학의 장르에서 노랫말을 시로 포함시키지 않았던 분명한 기억때문인 같다. 시가 노랫말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오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거꾸로 노랫말이 문학으로 인정받는 것은 무척 생경하다.

 

후속 기사는 이미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 후보에 몇 번 오른 적이 있고,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그의 가사가 문학 시간에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었다. 밥 딜런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노래하는지 그리고 그의 가사가 함의하고 있는 것들을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문학의 넓은 영역을 이해하는데 있어 유효해 보인다.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원제CHRONICLES: Volume1) ”이 그와 그가 쓴 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이 자서전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문학작품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뉴욕에 대한 그의 세세한 설명과 스케치는 여행서 못지 않고, 그가 만난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평은 인물론에 뒤지지 않는다. 곳곳에서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과 가슴에 정착하는 그의 사유들을 찾을 수 있다.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오로지 주인공 밥 딜런의 눈으로 당시의 세계와 뉴욕, 그리고 당시의 음악과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진다.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자기 음악에 대한 분명한 주제를 잊지 않고 있다.

 

밥 딜런은 세상을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찰나의 사물로 보지 않았다. 세상을 깊이 있게 관찰했다. 그리고 언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는 당연한 과정이다.

 

우리는 삶보다 위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고 자신이 보았던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해야 하고 고유의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

옛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그 안에는 대단한 절실함이 들어 있다.

 

어휘는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어휘의 결합이 모두 소진될 수 있었다. 어휘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단계에서 서정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들 나름의 의미를 지녔다. 그 뜻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지혜롭고 시적인 단어들이 마치 나 자신의 것처럼 아무런 의견도 없이 그 곡들을 줄줄이 노래했다.

 

딜런은 찾고 있던 가사를 정확히 쓸 수 없어 뉴욕 공공도서관을 다니면서 원칙을 찾았고 그곳에서 간파한 혐오스런 진실들이 자신이 쓸 가사의 원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것들을 머리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잔뜩 밀어 넣었다고 했다.

 

딜런은 이 자서전에서 수도 없이 반복한다. 나는 세상에 대해 느낀 것을 정의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었다고. 그러나 나는 아직 내가 되고 싶은 시인 음악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는 가수들의 음악을 듣고 세상을 관찰하며 시를 쓴다. 그의 가사가 함의 하는 것들이 깊이를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나는 아직 내가 되고 싶은 시인 음악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한 나는 무엇엔가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밥 딜런은 자신을 시대의 양심, 시대의 대변자라고 부르는 언론을 향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웃는다. 그는 아내와 아이가 생기면서 난 그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의 모습과 세상에 비춰지는 왜곡된 모습에 분노한다. 평범한 남편,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중으로부터 가족과 자신의 가정생활을 지키려는 고민도 언급되어 눈길을 끈다. 나중에는 가정을 지키고 자신의 이러한 이미지를 없애려고 음악의 방향을 전환하기도 한다.

 

내가 한 일이라곤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 것뿐이었다.

목동에 가까웠다.

 

나는 실제로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슴푸레한 안개를 응시하며 지적인 몽롱함 속에 떠도는 노래를 작곡하는

포크 뮤지션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이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놓고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정황으로 봐도 틀리지 않을 듯 싶다.

 

밥 딜런은 너무나 많은 음악가들을 만났고 너무도 많은 책들과 철학자를 만났다. 처음 이 책을 펼치면 끊임없이 나열되는 이름들로 어지럽기까지 한다. 그가 얼마나 방대한 지식과 사고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 방증한다. 그는 그들을 흘러가는 인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쓸 수 있도록 훈련했다.

 

음악을 만드는 협업과정에서 그의 고뇌와 가족에 대한 사랑, 자신을 속이지 않은 생활, 뉴욕 초기의 삶을 표현하는 그의 관조적 태도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한다. 우디 거스리를 듣고 충격을 받은 딜런, 그의 음악을 반복했던 딜런, 그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위해 모든 것을 열어둔 사람이었다.

 

그의 말들을 메모한 것이 워드로 10페이지에 달하니, 보다 개인적이고 깊이 있는 그의 내면은 직접 책을 통해 개별적으로 접근해 보길 권한다. 이 자서전은 게다가 연대순으로 쓰고 있지 않아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나의 경우 흐름을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1장은 4장에서 반복하고 있고, 어린시절 잠깐의 이야기는 3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일독 후 다시 읽거나 경우에 따라 4장을 읽고 1장을 읽으면 흐름을 이해하는데 무한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밥 딜런의 자서전을 일독만 하는 것은 많은 후회를 남길 수 있다. 포크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도 차분히 접해 볼 필요도 있다. 읽을수록 느끼고 얻을 것이 많아지는 자서전이다. 그리고 한림원의 선택에 찬성하게 될 것이다.

 

  

메모)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가야 할 먼 길을 출발한 것이다.

 

다음 발행본에서는 그의 노랫말을 좀더 많이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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