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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ㅣ 믿음의 글들 240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얼굴을 찾을때까지
-C,S루이스-
신화- 인간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온 거룩한 진리의 미광
[우리가 얼굴을 찾을때까지]는 2세기경 라틴어 시인 아울레이우스가 지은 ‘변신’에 나오는 ‘큐피트와 프시케의 신화’를 토대로 다시 쓴 신화다.
작품의 내용
오루알(이야기주인공)은 이복동생 프쉬케에게 각별한 사랑을 베푼다 프시케가 신과 함께 화려한궁전에 산다고 믿고 있었을때 오루알은 동생의 그 믿음을 흔들어 결국 신이 금지한 일-거룩한 어둠속에만 프시케를 찾아오는 신의 얼굴을 보는일-을 하게끔 만든다 오루알은 자신의 행동이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으나 결국 프시케는 이 배신행위로 배고픔과 목마름 속에서 유배당한다. 훗날 여행을 하는 도중 프시케를 여신으로 섬기는 사원의 사제에게 ‘언니들의 질투가 프시케를 파멸로 몰아넣었다’는 잘못된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잡기 위해서 신들에게 소송을 건네고자 신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신 앞에서 그는 ‘자신은 질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진실을 왜곡하지 말고 바로 잡아달라고’ 그러나 신들에게 항변하는 가운데 오루알은 스스로 깨닫는다 프시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소유하려는 사랑이었으며 그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사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있었던 자신의 스승 여우선생, 경비대장 바르디아를 존중하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롬왕국의 여왕인 자신 자신을 위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오루알은 결국 자신의 잘못된 이기적 사랑을 깨닫고 신 앞에 용서를 구하자, 그녀의 추한 얼굴이 프시케처럼 변하여 자신의 진정한 열굴을 발견하고 프시케와 마찬가지로 신이 되었다.
교훈 (송태현님의 해설 발췌)
1.작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재창조
C.S루이스는 프쉬케를 ‘어떤 면에서 프쉬케는 그리스도와 유사하다 그녀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모든 선한 인간은 그리스도와 유사하는 점에서 그렇다’ 라고 설명했듯이 루이스는 프쉬케를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언니들을 복수하는 여인으로 보지 않고 프쉬케를 변형하여 재창조함으로서 이상적인 인간이란 모든 인간의 모범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2.원형으로서의 인간의 정체성
추녀인 굴룸의 여왕이 되기까지 오루알을 베일을 쓰고 다니면서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타인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도 가리는 것이다. 오루알은 신들을 고소하기 위해서 신들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는다 우리 안에 죄악된 자아의 정체성의 베일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설때에 비로소 우리의 참 자아, 자신의 원형인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실존으로 섰을때 비로소 발견되어 지는 것이다.
3.이성과 신성의 간격 극복
공주들을 가르쳤던 여우선생은 합리론과 유물론및 인본주의적 그리이스 철학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이성에 의존하여 설명한다. 그는 신성한 것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사건도 자연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전형적인 이성주의자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오루알은 프쉬케를 통해 이성을 넘어서는 신성을 발견하고 결국 신성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프쉬케에게 칼과 불을 주면서 얼굴을 숨긴 그 괴물의 얼굴을 보라는 오루알은 이성으로서 프쉬케의 여정과 임무를 방해하고 유혹하는 장애물로 등장한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을 비로소 발견한다 그러므로 루이스는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가 아닌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비와 신성을 받아들이는 종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프쉬케는 이성의 한계를 신성의 신비함으로 이끄는 존재로서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고자 했다.
신학적 주제
이사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의 겉모습, 내면의 본성적인 죄악은 모두 하나님과의 대면을 가리우게 하는 영적 담벼락이며 무한한 간격으로서의 숨겨진 얼굴들이다. 이 죄악의 존재가 바로 우리의 원형적인 얼굴을 찾지 못하고 가리우게 한다. 얼굴을 찾을 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회개요, 용서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이다.
루이스의 세계관
신화를 통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초대하는 거룩한 진리의 미광
비기독교적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비기독교인들의 이질감을 최소화시켜 기독교적 세계로 초대하는 작품이다. 상상의 세계를 통한 현실적인 세계로 이야기를 끌여들여와 진리를 밝혀주는 진리의 미광을 제시하고 있다.
주제
골룸의 여왕 오루알도 프쉬케도 모두 그 분(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서야 각자 자신의 참 얼굴(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성경적 해피엔딩이다. 오루알이 프쉬케를 인간이 아닌 여신의 모습으로 발견했을 때,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분’이었다. 오루알은 그 분 때문에 프쉬케도 자신도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프시케조차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한때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죽음이라도 불사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조차 참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다 분 때문이었다. 땅과 별과 해, 전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모든 것은 바로 그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오고 있었다. 가장 두렵고 가장 아름다운 분, 유일한 두려움이요 아름다움이신 분이 오고 있었다.”
오루알이 그 분의 얼굴을 본 것은 그가 죽는 순간이었다. 그 분의 얼굴 앞에서 오루알은 자신이 프쉬케처럼 아름다움으로 변한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섬기는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계22:4)라고 말한 장면처럼 모든 존재는 그 분의 얼굴을 보는 날 우리의 얼굴은(정체성)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원형의 얼굴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대답은 바로 그 분 자신 앞에서이다. 오루알은 자신이 신들에 대한 불공평과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 소송을 했을때, 그 소송의 해답을 비로소 그 분 앞에서 발견한다.
“주여 이제는 당신이 왜 대답지 않으셨는지 압니다 당신 자신이 대답이십니다.
모든 질문은 당신의 얼굴 앞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
평가
루이스는 신화적인 세계를 고대 한 지역의 굴룸나라를 창조하여 현실세계로 새롭게 재창조하였다. 마치 한 가족의 단란하면서도 일상을 통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아기자기하게 펼치며 인간 내면의 본성을 각각의 인물을 통해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가부장적 권한을 상징하는 골룸의 왕 아버지, 그 왕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고자 딸만 낳다가 죽은 우리의 어머니들, 그리고 세 공주들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인간의 죄성을 이기적 사랑을 통해서 보여주는 큰언니 오루알, 둘째, 레디발,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신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고난의 길을 택해 떠난 여신이 된 프쉬케를 통해서 우리는 내 자아의 모습을 각각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신들에게 제의적인 고대세계의 신성화된 사제와의 갈등과 대립은 프쉬케와 큐피트와의 신화적인 내용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루이스는 이 책을 통해서 참된 자기를 발견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오루알의 질문과 여정을 통해서 우리의 대답을 결말에 가서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길은 곧 우리의 원래의 얼굴(원형이자 형상)을 찾는 길이다.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가졌음에도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원형)이 아니다. 우리는 각각 페르조나(얼굴을 가리는 광대의 마스크)를 드러낼 뿐 진정한 자아의 얼굴은 감추고 있다. 각자의 죄악된 내면 속에. 결국 우리의 참 자아, 원형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찾는 길은 오직 세상이나 인간이나 사물이 아닌 그 분 앞에서 있을때이다. 그 분 온 세상과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만이 우리의 참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루이스의 이야기는 성경적이면서도 요한계시록의 결말적인 분위기를 상당히 숨겨놓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타인 앞에서 자신의 참된 얼굴을 보일 수 있을 때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얼굴을 찾을때 라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면서도 여신이 된 프쉬케가 언니 오루알의 의심과 집요한 이기적 사랑을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시켜 10가지의 고난의 행동들을 다 순종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의 의심과 이기적 사랑과 불순종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프쉬케의 고난과 속죄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한 점에서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의 사자의 죽음과 부활은 프쉬케가 여신이 되는 것과 유사하며,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하나님보다도 자기 아들을 더 사랑한 어느 어머니의 이기적인 사랑과 오루알은 같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또한 조심스럽게 비판할 점은 오루알이 프쉬케처럼 ‘너또한 프쉬케가 되리라’는 대목에서 인간의 신성화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간 오루알이 프쉬케처럼 여신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간다면 그것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를 유혹했던 뱀의 유혹의 투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지극히 반기독교적인 결말이다. 오히려 이 말이 인간의 죄성을 벗고 프쉬케의 사랑에 의해서 새롭게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자, 원형의 발견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첫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이 인류를 죄악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처럼, 신처럼, 되리라는 유혹은 현재까지도 사단이 유혹하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
신화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새롭게 재창조하여 오늘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세계로 이끌어 인간의 본질과 미래의 완성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얼굴’이라는 소재로 찾아낸 작가를 보면서 장차 우리의 얼굴을 찾아 서로를 대면할 때, 우리는 모든 문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때까지] -C.S 루이스, 홍성사, 2007년. 김포시립도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