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
레이죠 히로코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별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동화같은 이별은 불가능 하지만 한번 즘은 바라보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염세의 대표 철학자들이 극찬한 지혜라함은, 가히누구에게도 가슴에 품어야할 지혜이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의 이면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도서협찬 #도서제공 #태국소설 #세계문학 #고전소설



한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와 착 달라붙은 첫날의 일들과 여러 감정은 내 기억에서 잊힐 날 없이 살아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은 내 마음에 들어와 아로새겨진 숙녀의 첫 옷차림이었다.

(...)

 갸름하고 도톰한 입술은 윗부분에 빨간 삼각형 두 개가, 또 하나가 아랫부분에 놓여 있었는데, 두 입술을 다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전까지 조그만 턱 위에 놓여 있던 아름답게 단장한 그 입술보다 더 아름다운 입술을 본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2019년 가족여행으로 처음 태국에 방문했다. 깜깜한 밤에 더 빛났던 도시와 친절하고 조심스러웠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림의 이면>은 주인공 놉펀이 한 그림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그림은 놉펀과 까라띠여사의 비밀스러운 순간을 담아낸다. 사랑의 색채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놉펀과 까라띠여사의 그것은 낮은 채도의 고요한 연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조심스러웠다. 그보다 좀 더 플라토닉한, 접점 하나를 중심으로 점점멀어져 가는 두 평행선처럼 느껴졌다.


 놉펀은 일본 릿쿄대학에서 유학중인 태국 젊은이이다. 놉펀의 아버지와 친구인 아티깐버디 공과 그의 아내 까라띠 여사는 허니문으로 일본을 방문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부의 여행을 돕고, 까라띠 여사의 외출을 동행하며 놉펀은 까라띠 여사의 아름다움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한다.



/

 <그림의 이면>은 여성과 남성 간 사회적 지위의 한계, 잔잔한 연정 이야기를 유려한 문체로 표현한다. 태국인인 두 남녀가 일본이라는 낯선 국가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 사랑이 파도라면 둘의 파고와 파저는 겹친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또한 까라띠 여사가 겪어야했던 어떤 비극(혼기에 밀려 나이가 많은 남성과 결혼)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가족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놉펀과의 연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림의 이면>의 놉펀이 불이라면 까라띠 여사는 물이었다. 발화점에 도달하면 불타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불같은 놉펀,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지만 결국 모든 사물을 가라앉히고 겸허하게 만드는 물같은 까라띠 여사.

 까라띠 여사도 한 때는 꿈을 꿨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연정을 마음에 품고 다정한 눈길로 상대를 바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데려 온걸까. 이제 그녀에게 주어진 의무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과 가족을 걱정시키지 않는 일이다. 그 시절 여성에게 삶을 개척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까라띠 여사가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

만일 우리가 벚꽃으로 태어난 게 아니더라도 다른 꽃으로 태어난 것을 배척하지 말지어다.
우리의 종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바라라.
후지산은 하나지만 다르 모든 산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무라이가 못 되었다면 사무라이의 심복이 되어라.
우리는 모두가 선장이 될 수는 없다. 선원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함께 갈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도로가 될 수 없다면 인도가 되어라.
이 세상에는 우리 각자를 위한 자리와 일이 있다.
만일 태양이 못 된다면 별이 되어라. 만일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여자로 태어난 것에 야속해하지 마라.
무엇이 됐건 간에 한 가지가 되어라. 무엇이 되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건 간에 가장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


 - 무엇이 됐건 간에 한 가지가 되어라. 무엇이 되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건 간에 가장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
 야속해 하지 말것, 주어진 삶에 만족할 것, 비단 까라띠 여사의 입장뿐만은 아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놉펀 또한 본국에 두고 온 약혼녀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학문을 마치면 혼인을 할 예정이다. 그런 놉펀이 가슴앓이했던 대상인  까라띠 여사, 그녀는 놉펀의 마음을 이해했을까? 그녀 또한 어떤 동정을 느꼈을지도.


/

나는 일상적인 감정으로 그녀의 편지를 읽었다. 물론 그녀가 내 누이인 것처럼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항상 매우 값진 조언과 격려의 말을 해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같이 뜨거웠던 감정은 다 타버렸다. 시간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부터 모두 가져가 버렸다.
 나는 까라띠 여사가 그 편지 속에 어떤 심오한 감정을 숨겼음을 전혀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못했다. 인생의 세심함과 은밀함이란, 그 당시에 알기에는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까라띠 여사에 대한 연정은 그녀가 귀국하며 조금씩 저물어간다. 놉펀의 마음은 결국 다 타버린 재가 되버린다. 스스로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었다고 확신하며 이제는 친구이자 누이로 까라띠 여사를 바라본다. 그러나 놉펀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놉펀의 가슴 어딘가에는 까라띠 여사의 붉은 두 삼각형이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


 <그림의 이면>은 원색과 금빛이 어우러진 태국의 사원이 떠오름과 동시에 운무가 가득한 일본의 강산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처음 <그림의 이면>을 수령했을 때, 생소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의 이면>은 예술작품이었다. 문학이면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단촐하지만 강렬한 이야기, 그 안에서 우리는 재가 되버린 그 시절의 사랑을 떠올린다.


본 서적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월 28일

대문 옆에 크로커스 꽃 한 무더기가 핀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상투적이지 않고 매력적인 표현을 찾고 싶어서 "독일 정원의 엘리자베스"가 되었다고 상상하려는 찰나, 요리사가 불쑥 다가와서 하는 말, 생선 장수가 왔는데 대구와 해덕대구만 있네요. 해덕 대구 냄새가 신선하지 않은 것 같은데 대구만 들일까요?

자주 깨닫는 사실이지만 사는 게 그렇지, 뭐.

86쪽


2014년 1월, 영국 멘체스터에서 사온 20대의 첫번째 다이어리가 생각난다. 두꺼운 연보라색 펠트지로 뒤덮인 꽃무늬 자수의 무지 노트, 그것은 결혼하기 전까지 작성했던 일기이자 배설구였다. 가끔 생각나서 들춰본 일기장에는 왜 이때는 이렇게까지 생각했지? 하던 시절의 부끄럼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는 대단한 작품이다. 나는 10년도 되지 않은 과거를 보며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저자 E.M.델라필드는 그 과거를 무려 100년이나 보존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수중에서 샅샅이 읽혀지는 중이다. 이 얼마나 용기있는 작품인가.

화자는 기혼 여성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는 종종 클럽활동에 참여하며 때로는 본인의 행실에 의문을 품는,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여성이다. 아니, 되려 상류층 여인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클럽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여인이 되어있다. 일기 형식으로 된 여타 작품과는 달리 아주 자세하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했는지 그리고 자그만한 삽화로 그려두기까지 해서 생생하기가 보통이 아니다.



메모 : 프랑스 사람들은 너무 자주 터무니없는 감상주의에 빠지는듯

주어만 바꾸면 내가 쓴 일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디테일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십자가와 열쇠'여관의 S 부인에게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바버라 블렌킨솝의 약혼자라는 남자가 그곳에 묵고 있는데 노부인이 만나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남자는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지만 굉장히 점잖은 신사라고 한다. 그러더니 내게 묻는다. 아기가 생겨도 히말라야에 가는 게 괜찮을까요? 한참 이런저러 얘기를 주고받은 뒤에야 이 모든 게 남의 사생활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다. 어쨌든 뒤에서 쑥덕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125쪽

타인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느껴지는 자괴감, 어쨌든 뒤에서 쑥덕이는건 바람직 하지 않다. 100년이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다 해놓고서 아차 하는 맘이 드는 것은 다르지 않구나. 가끔 이렇게 사는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비난하고 있는데... 이런 고민은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를 읽다보니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감상주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 사는 모냥 다 비슷한데, 나라고 다를 바 있을까? 이상하게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는 근래 읽은 작품 중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점토판 속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도대체 왜 학교를 안가고 빈둥거리고 있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어디서 많이 본 레퍼토리 같다. 2020년대에서도 들을 법한 고대 점토판 속 어록을 보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 사는 일이 별 일 아니라는 사실이 웃기면서 동시에 위안이 된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는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아도 된다고?'와 '1930년대 사람이 느끼는 것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별반 다를 것이 없네'가 공존하는 작품이다.또한 페미니즘 작품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이래 1930년대 한 기혼여성의 삶을 그려내며 현실적인 여성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기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대단했다. 아, 오늘부터 일기를 쓰면 2122년에 누군가 내 일기를 읽고 공감할 수 있을까?

그건 후대만이 답할 수 있을 듯.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상대를 길들이고 복종시켰다고 믿는 그녀 역시, 이 남자의 삶은 지하 동굴 같아서 치욕과 고통, 차마 고백할 수 없는 행위들을 숨기고 있다는 걸 짐작했음이 틀림없었다.

(중략)

하지만 그는 거기 있었고 매 순간 자신이 연기해야 할 차례가 돌아올 것임을 이해했다. 대사를 받아치고, 명백하고도 어느 인물의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이다.

102쪽


러시아의 늦은 밤 어두운 기차 안, 시트는 헤져있고 노숙자, 부랑자, 창녀, 군인이 엉켜있다. 터널을 지날 때는 더욱 심연한 어둠이 실내를 감쌀 때면 발자국 소리, 심장소리의 리듬으로 간신히 승객을 구별할 수 있다. 작중 상황과 비슷한 경험에 이입해서 읽기, 오래된 습관이다. 첫 장을 읽고 중국의 기차 안이 생각났다. 여러 모로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본론으로 돌아오면, 화자는 심연을 벗어나 한 남자와 조우한다. 남자의 빵을 포장한 구겨진 악보, 그리고 어느 벽보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는 한 젊은이 알렉세이 베르그.

작 중 "호모 소비에티쿠스"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화자는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경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형체는 존재할까? <어느 삶의 음악>은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대 당시 스탈린은 소비에트 정치 체제로 새로운 인류, 즉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창조할 것임을 선언한다.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말 그대로 체제에 복종하고 충성을 다하는 소비에트 연방 체제 전용 신 인류를 뜻한다. 평범한 음악가 청년 알렉세이 베르그는 정치적 통치 하에 음악가의 삶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호모 소비에티쿠스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베르그 기존의 음악적 삶으로 돌아오기까지 긴 세월을 돌아오게 만든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인 화자의 호모 소비에티쿠스에 대한 태도 변화다.

내가 그들을 깨워 그들 삶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선언할 것이다. 간혹 발생하는 기차의 연착을 제외하고는, 자기들이 사는 나라는 천국이라고 느닷없이 확성기에서 전쟁의 발발을 알리는 냉혹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대도 이 무리는 몸을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쟁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고통과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누추한 이 기차역, 철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이든 죽음이든 삶이든 그 모두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중략)

입 안에서 맴돌지만 그저 피로 때문에 나오지 않는 말. 정신을 가다듬자. 돌이킬 수 없는 이 말이 빛을 발하며 터져나온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18-19쪽

검정 혹은 회색의 투박한 외투를 입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은 스탈린 시대로부터, 전쟁과 궁핍과 말 없는 인고의 세월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는 듯하다. 베르그는 인파 속에 섞여 들어 지하철 쪽으로 발길을 옮기더니 그 입구로 흘러드는 시커먼 무리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긴장된 발걸음에서 변함없이 의연한 결의가 느껴진다. 층계 발치에 내려선 군중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그의 모습은 다음 순간 사라진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경멸의 기운이 밴 목소리가 내 안에서 중얼댄다. 그 소리를 침묵시키기엔 나는 너무 졸리다.

123-124쪽

초반부의 <어느 삶의 음악>의 화자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에 대한 비소를 숨기지 못한다. 화자에 눈에 비친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맹목적인 바보들이다. 피로 때문에 뱉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들을 향해 터져나오는 비웃음을 참지 못한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심지어 강조되어있다.) 그러나 베르그의 이야기를 들은 화자의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향한 태도는 사뭇 다르다. 경멸의 기운이 뱄지만 안에서 중얼댄다. 경멸의 소리를 침묵 시키고 싶지만 수면욕에 져버린 나머지 내면의 소리로 울리는 '호모 소비에티쿠스'. 인고의 세월을 빠져나왔다는 표현은 그들을 향한 경건함 마저 느껴진다.

생존을 위해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삶을 선택한 이들을 누가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작가였고, 피아니스트였으며 평범한 가정의 일원이였다. 후대는 왜 그들이 호모 소비에티쿠스가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또한 호모 소비에티쿠스 이전의 삶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주입된 선전과 생존에 밀접히 관련되었던 강압으로 인한 결과물, 호모 소비에티쿠스만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있으나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어느 삶의 음악>의 작가 안드레이 마킨은 1995년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을 집필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의 데뷔작에서 소련의 짙은 향기가 풍기는 것으로 보아 구소련 체제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La Musique D'une vie, 내용은 감상적인 제목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삶의 음악>은 독재 통치 아래 비극적인 운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청년이 이름을 잃은 나날에 도달할 때까지 함께 했던 음악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멋없이 이야기 하자면, <어느 삶의 음악>은 러시아 작가가 프랑스어로 집필한 러시아 작품이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서 쓰러지는 풀처럼 탄압받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삶의 단편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역사를 그대로 서술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안드레이 마킨의 <어느 삶의 음악>처럼 고통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작품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작가가 프랑스에서 문학 활동을 했다는 것이 독보적인 한수였다. 스탈린 시대의 강인한 영혼을 노래하는 소설, 심지어 여타 러시아 작품에서 만나기 힘든 음유적인 <어느 삶의 음악>.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은 음악이 되어 아름다움으로 존재한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